마 24장 14-31절 제자도 (19) 제자의 종말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12-2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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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주님 만날 준비가 되셨는지요?
몇 해 전에 시카고를 갑자기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기시는 교회 장로님, 집사님의 셋째 따님이 첫 딸아이 출산 중에 출혈이 심해서 아이를 낳고 그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참 밝은 성격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시카고 필 하모닉의 장래가 촉망되는 성악가였습니다. 믿음 좋은 부모님에, 많은 친구들에,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랑하는 남편과 갓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젊은 성도의 죽음은 많은 성도님들에게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귀한 당신의 사랑하는 딸을 갑자기 불러가셨을까요?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제 주변의 목사님들도 성도님들도 갑작스럽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우리 Chelwood 교회의 Sherry 장로님의 둘째 아들이 11월 11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딕 위다 장로님의 아버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우리 교회가 속한 Red Mesa 노회의 Church Rock 교회의 Bobby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해 성탄과 새해 인사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건강을 위한 인사가 압도적인 인사였습니다. 팬더믹 시대에 건강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꼭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이라도 우리를 부르신다면, 우리는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만일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마무리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젊은 성악가의 죽음이 갑자기 찾아 온 것처럼, 우리 주변에 코로나로 사고로 원치않게 세상을 떠나도, 우리 모두에게도 언젠가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혀 준비가 안된 죽음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백신이 나와도,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언제든지 주님 만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갑자기 찾아오는 개인의 죽음을 우리는 개인적인 종말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종말은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역사의 마지막인 우주적인 종말도 있습니다. 역사의 마지막, 예수님의 재림, 천년왕국, 부활, 최후의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는 우주의 종말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환경은 개인적인 종말이든, 우주적 종말이든 우리의 종말을 준비하기 참 쉽지 않은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제자도의 마지막 말씀은 제자의 종말로 우리의 개인적인 종말과 우주적인 종말을 다룹니다.
2. 우리의 개인적인 종말인 죽음이 찾아올 때
개인적인 종말은 죽음입니다. 성경을 보면, 죽음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생물학적 죽음(biological death)으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때 일어나는 죽음, 곧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죽음이며 이것은 첫째 사망입니다. 둘째는 영적 죽음(spiritual death)으로서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어 있지만 영혼은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영혼이 죄와 허물로 죽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사는 죄인들이 바로 영적 죽음의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어도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서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셋째는 영원한 죽음(eternal death)입니다. 그것은 육신이 한번 죽었다가 부활한 상태에서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부릅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4-15).
개인적 종말이어도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비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이 죽음이나 죽음 이후의 영원한 죽음보다도 훨씬 나은 상태인 것입니다.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더 무서운 죽음을 향한 첫발이며 무섭고 공포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향하는 관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삶으로 나아가는 통과 의례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감사와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죽음을 기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이 원수일 수 밖에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쁨과 감사의 순간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믿는 성도의 죽음은 어떻게 보실까요? 계 14:13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의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 사도 바울은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참 신앙인의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4장 4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깨 낙원(paradise)에 있으리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래서 죽기까지 예수님을 위해 살수 있고, 끝내는 목숨까지도 용기있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 이후에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은 즉시로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서 살면서 몸의 부활을 기다리는 반면, 비그리스도인들은 지옥에서 그들의 육신의 부활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은 그리스도인이 죽은 후에 경험하는 낙원이 부활한 후에 들어가는 영원한 천국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에는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그리스도인들이 죽은 후에 가는 지옥이 부활 후에 들어갈 영원한 불못과 같은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도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죽은 후에 들어가는 낙원에 예수님이 계신다고 하셨으므로, 그 낙원과 부활한 후에 들어갈 천국은 결국 같은 것으로 보면 좋겠습니다. 다만 환희와 기쁨을 경험하는 정도가 조금 다릅니다. 낙원이든 천국이든 결국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곳이기에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이 들어갈 지옥은 다른 말로 음부(하데스)라고 하며, 부활 후에 들어갈 불못은 게헨나(Gehenna) 즉,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3. 종말의 때와 징조에 대한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개인적인 죽음, 개인적인 종말을 넘어서 오늘 본문 말씀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우리 예수님의 우주적인 종말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3절 본문의 배경입니다. 우리 함께 읽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방문한 성전은 다윗과 솔로몬이 지은 첫번째 성전과, 바벨론 포로 이후에 돌아와서 두번째 지은 스룹바벨 성전에 이어서 세번째 성전으로 헤롯 대왕이 지은 로마 시대에 최고로 아름다운 성전입니다. 헤롯 성전은 기원전 19년부터 착공을 시작하여 외형은 9년만에 완공했고, 성전 내부 공사까지 AD 63년에 완성했으니 무려 80년동안 지은 거대한 성전입니다. 이방인 이두메인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만든 헤롯 성전은 역사가의 고증에 의하면 돌 하나의 크기가 가로 11m, 높이 3.7m, 폭 5.4m의 거대한 성전입니다. 얼나마 큰지 대형 축구 경기장과 응원석 포함해서 모두 12개 정도 합친 규모이며, 사람이 30만명 정도까지 들어갈 수 있는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성전을 행해서 예수님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진다고 말씀합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성전이 왜 무너집니까? 성전의 외형은 정말 아름답지만 성전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 받아야 하는데,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 아닌 강도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성전은 무화과 나무 같은데 무화과 열매는 전혀 없고 잎사귀만 가득한 무화과 나무이기에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성전의 파괴 예언을 들은 제자들이 놀라서 예수님께 3절의 질문을 합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가 있사오리까?” 제자들의 질문의 핵심은 어느 때을 묻는 시간이며, 동시에 그 때 주님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 Sign은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언제 그 아름답고 거대한 헤롯 성전이 파괴되며, 또한 성전이 파괴되면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그 때의 징조는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헤롯 성전이 파괴될 때의 사건은 마지막 이 땅에 임하는 우주적인 종말의 사건과 연결시켜서 예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마지막 종말의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종말의 때와 종말의 징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서 우리는 종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4. 그렇다면 종말의 때는 언제인가?
첫번째, 종말의 때에 관한 말씀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곳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지막 종말의 때는 구약의 다니엘 선지자가 예언한 사건의 때와 아주 유사합니다. 다니엘이 말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곳을 보거든”이라는 말씀은 다니엘서를 보면 두 곳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서 11장 31절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렵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다니엘서 12장 11절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 성전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가 폐하여지고,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세워진다는 예언입니다.
다니엘이 예언한 말씀은 거룩한 성전에 세워질 하나님을 모독하는 가증한 물건입니다. 다니엘이 예언한 말씀은 이미 BC 167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에 성취되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의 번제단에서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돼지를 죽여 피를 흘려 희생제사를 드렸고,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워 성전을 더렵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때는 다니엘이 예언한 사건과 아주 유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의 말씀과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21장 20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이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그의 아들 티투스 장군의 막강한 군대에 에워싸워 파괴되었고,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철저하게 파괴된 때가 역사 가운데 있었습니다.
AD 66년 유대인들은 로마를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켰고, 로마는 군대를 파견해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했습니다. AD 70년 예루살렘 성은 로마의 티두스 장군에 의해서 포위되었고,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때의 사건을 유대전쟁사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창세 이래로 모든 사람이 겪은 불행은 유대인들이 겪은 불행과 비교해본다면 그렇게 엄청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거의 백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어미가 자식을 잡아 먹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의 군인들이 돌과 돌 사이에 있는 금을 찾기 위해서 성전의 돌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깨뜨려 무너져 내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이 땅에서 이미 종말의 시작되었다는 징조입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극심한 환란의 때가 마지막에는 또 있겠습니까? 마지막 종말의 때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성전이 모독을 당하듯이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서 큰 환난을 당하게 될 때가 있는 것입니까? 21절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겠고, 후에도 없으리라” 전무후무한 환난의 때가 분명 있습니다. 마지막 환난의 때는 특징이 있습니다. 환난은 갑자기 찾아옵니5 다. 환난은 극심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환난의 때는 도대체 언제입니까?
5. 종말을 해석하는 4가지 방법
종말을 해석하는 4가지 방법은 마지막 때의 극심한 환란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역사적 전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후천년설, 그리고 무천년설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요한계시록을 자세하게 강해할 날을 기대하며 오늘은 아주 간단히 정리합니다.
첫번째, 역사적 전천년설은 극심한 대환란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해석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요한계시록 20장 4-6절의 천년왕국이 이 땅에서 시작됩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 하리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역사적 전천년설의 중요한 시간 순서가 있습니다. 교회의 극심한 환란 – 그리스도의 재림 – 그리스도의 재림때 신자의 부활 – 지상 천년왕국 – 지상 천년왕국 끝에 사탄이 풀려나서 반역과 최후의 멸망, 불신자의 부활 – 최후 심판 –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두번째,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한때는 인기가 있었지만, 위험한 종말론입니다. 교회의 극심한 환란 전에 예수님께서 비밀스럽게 공중에 재림하시고 이 때 신자들은 휴거합니다. 그리고 공중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잔치가 있고, 이때 지상에서는 7년 동안의 대환란이 일어납니다. 7년 대환란 가운데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고 이 기간에 유대인들의 극적인 회심과 대규모의 세계 복음화가 일어납니다. 7년 대환란이 끝나고 나면 예수님은 지상에 재림하셔서 7년의 대환란 기간에 죽은 신자들이 부활합니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이 일어나고, 천년왕국이 끝난 후에는 사탄의 일시적인 반역과 불신자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이 있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됩니다.
셋째는 후천년설의 입장은 인류의 역사가 진보하고 교회가 팽창하고 전세계 복음화가 일어나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에 이 땅에 천년동안의 평화로운 천년왕국이 있고, 천년 왕국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신자의 부활과 불신자의 부활이 일어나고 최후의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됩니다.
마지막은 무천년설로 천년왕국이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때까지의 교회시대를 천년왕국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죽어서 낙원에 있는 성도들과 하늘에서 통치하시고, 이 땅의 교회는 때로는 지상에서 박해를 당하기도 하고 이단이 발생하기도 하짐나 동시에 천국 복음이 증거되어 세계 복음화도 이룹니다. 고난과 박해가 있어 재림의 징조가 있지만 복음도 전파됩니다. 교회 시대가 끝이 나면 그리스도는 영광스럽게 재림하여 신자와 불신자의 부활이 일어나고 최후의 심판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일어납니다.
6. 종말의 징조는 무엇입니까?
두번째, 종말의 징조에 관한 교훈입니다. 마태복음 24장 5-13절 종말의 징조입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란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종말의 징조를 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에도 우리의 교회시대에도 해당이 되는지요? 예수님의 초림부터 종말이 시작되어 재림 때에 완성이 되는 종말의 징조를 보면, 우리의 종말의 시간표는 무천년설입니다. 이 기간 동안 종말의 징조와 관련된 가장 두드러진 것은 24절에 있는 거짓 선지자와 적 그리스도가 보여주는 큰 표적과 기사로 택하신 자들도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종말의 때는 환난의 때이기에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두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거짓 선지자와 적 그리스도가 있다면 미혹되기 쉽습니다. 종말의 때에 거짓 선지자들과 적 그리스도가 가장 활발하게 미혹을 합니다.
어떻게 거짓된 말씀으로 사람을 미혹합니까? 26절 말씀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그리스도는 세례 요한처럼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광야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또는 골방과 같이 은밀한 장소에, 드러나지 않는 곳으로 비밀리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종말의 때에 거짓 선지자들과 적 그리스도가 미혹할 때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인 영적인 분별력입니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분별의 기준은 예수님이 미리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환난의 때, 종말의 때에 그리스도는 광야에서도 은밀한 장소에도 임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재림하십니까? 27절, 30-31절 처럼 임하십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번개가 동편에서 서편까지 번쩍인다는 것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성탄절의 초라한 초림과 달리 은밀하게 임하시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확연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임하십니다.
7. 종말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삶
예수님의 제자들의 마지막 때와 징조에 관한 질문에 예수님은 상세하게 종말의 때와 징조를 미리 알려주십니다. 왜 이렇게 상세하게 알려주십니까? 우리 모두에게도 개인적인 종말인 죽음이 찾아오든지, 아니면 예수님의 재림으로 우주적인 종말이 오든지 반드시 종말은 옵니다. 그러므로 종말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며, 믿음의 삶입니다. 어떻게 종말을 준비해야 합니까?
첫째, 말씀과 기도 가운데 굳건하게 서서 종말을 준비합니다. 다니엘의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종말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방법은 말씀으로 돌아가서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며 종말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1-13절의 열 처녀 비유는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종말을 준비해야 함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종말을 준비합니다. 어리석고 미려한 다섯 처녀는 종말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둘째, 종말이 다가올수록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분명합니다. 14절 말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종말의 때는 이 땅에서 천국 복음이 전파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가 할 일은 어려움 중에도 박해 중에도 팬더믹 중에도 신실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하는 삶이 종말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셋째, 종말을 준비하는 방법은 우리에게 맡겨주신 달란트와 므나를 사용하여 장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받은 재능과 은사 땅에 묻어두지 아니하고 열심으로 장사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 25:23)
넷째, 종말을 준비하는 방법은 지금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하고 섬겨주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성도의 합당한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마 25:40).
마지막, 종말을 준비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늘 우리 예수님을 묵상하고 기억하며 초대 교회의 성도들처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그 날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8. 이 시간 다시오실 예수님을 사모하며,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이 시간 다같이 두 손들고 찬양합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헛된 마음 품지 않고 주님만 섬기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함께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말의 징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에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마지막 때를 지혜롭게 준비하는 자로 살기원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설 날이 다가옵니다. 개인적 종말, 우주적 종말 다가옵니다. 그때까지 첫째, 말씀과 기도 가운데 굳건하게 서서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가운데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둘째, 종말의 환난의 다가오지만 우리가 끝까지 해야 할 사명인 천국 복음을 증거하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게 맡겨주신 재능과 은사, 물질 가지고 우리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게 하시며 열심으로 장사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종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지혜롭게 준비하며 사모하며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멘 주 에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다시 오실 우리 예수님 사모하모 헛된 마음 품지 않고 종말론적인 삶을 살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알파와 오메가이신 우리 주님, 이 시간 2020년 마지막 주일을 보내며 마지막 종말의 때와 징조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깨닫기를 원합니다. 깨어있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마지막 때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며, 말씀과 기도가운데 굳건하게 서서 지혜롭게 마지막 때를 준비하게 하옵소서. 천국 복음 증거하며 신실하게 사명 감당하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맡겨두신 달란트와 므나 우리만 위하여 사용하지 않게 하시며 영혼을 구원하는데에,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섬기는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역과 섬김에 기끼어 사용하게 하옵소서. 마라나타 하루 하루 주님 다시 오심을 사모하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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