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2장 1-23절 어떤 말을 들을 것인가?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12-12 12:11
Views
546
1. 인생의 형통과 예상치 못한 위기앞에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의 나라에서 스스로 하나님을 버린 악한 왕이었던 유다의 12대 왕인 아버지 아하스를 이어 유다의 13대 왕이 된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이 되어 유다의 그 어느 왕보다 더욱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히스기야의 삶은 하나님을 향한 충성스러운 회복과 개혁이었습니다. 아버지 아하스가 망쳐놓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재건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회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하는 유월절 절기도 다시 회복하였습니다. 나라에서 우상도 몰아내고 산당도 제거하는 전무후무한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충성된 일을 역대하 31장 20-21절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의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하나님을 향한 선과 정의와 진실함의 사람 히스기야의 통치는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의 배경은 역대하 32장 1절 말씀은 형통 중에 찾아온 전혀 예상하지 못한 큰 위기의 상황입니다.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 히스기야가 왕이 된지 14년되는 해, 기원전 701년되는 해, 그 해는 지금까지 유다 역사 가운데 가장 큰 위기의 순간입니다. 이미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막강한 나라 앗수르가 이제 유다를 침공하여 유다의 여러 성들을 차례로 정복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예루살렘성을 완전히 포위하였고,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그의 신하들을 보내어 항복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포위되어 항복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을 보니 베스트셀러 작가 김훈의 베스트셀러 소설 <남한산성>으로 만든 영화 남한산성이 생각이 납니다. 영화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중국의 명나라에 이어서 패권을 잡은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고 인조가 있는 남한산성을 포위한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치욕을 참고 항복을 해야 한다는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은 “살기 위해서 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치욕을 견디고 사느니 끝까지 결사항전하여 죽음을 택하자는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은 “살기 위해서 죽음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같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인데 한 사람은 항복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결사항전을 하자고 합니다. 막강한 청나라의 세력에 조선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지금은 살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 살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으로 다양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BC 701년 히스기야 왕 앞에 놓인 위기는 중국의 청나라 보다 더 막강한 앗수르 제국의 산헤립 왕의 침공 앞에 높인 유다의 히스기야 왕의 선택의 상황도 아주 비슷합니다. 막강한 앗수르의 세력은 유다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유다는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유다의 힘과 능력으로 도무지 이길 수없는 막강한 앗수르의 왕 산헤립과 그의 신하 랍사게의 가슴을 후벼파는 말이 계속 이어집니다.
2. 유다는 무엇을 의뢰하는가?
역대하 32장 10-11절 말씀입니다. “앗스르 왕 산헤립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예루살렘에 에워싸여 있으면서 무엇을 의뢰하느냐? 히스기야가 너희를 꾀어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거니와 이 어찌 너희를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함이 아니냐?”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유다의 방언이 아니라 앗수르 나라의 아람 방언으로 말해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해도, 앗수르의 신하들은 일부러 유다 방언으로 유다인들에게 더 큰 목소리로 말합니다. 병행 본문 이사야 36장을 보면, 앗수르 제국의 군대장관 랍사게가 작은 나라 유다의 방언, 히브리어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가 히브리어로 유다 백성들을 설득하는 말은 지금 유다가 살기 위해서는 히스기야 왕의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대왕 앗수르의 산헤립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를 이 죽음의 위기에서 건질 수 있는 사람은 히스기야가 아니라 히스기야 왕이 의뢰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의 대왕 산헤립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면 앗수르의 산헤립과 랍사게의 말이 100% 맞습니다. 현실만 보면, 앗수르의 18만 5천명의 막강한 군사력 앞에 유다 히스기야 왕은 유다의 백성들을 이 큰 위기에서 건져낼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히스기야 왕이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은 7-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풍전등화의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 히스기야 붙든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닙니다. 자신의 힘도 지혜도 능력도 아닙니다. 혹시나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애굽의 말과 마병과 병거도 아니었습니다. 위기 가운데 히스기야는 위기의 순간에 함께하시는 오직 하나님만 신뢰합니다.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를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건져주신다는 믿음입니다.
히스기야의 이 믿음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믿음의 사람들이 현실만 바라보지 않고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위기의 순간에 히스기야가 붙든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이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심히 거역하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 돌아오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위협하던 앗수르는 사람의 칼이 아닌 하나님의 칼로 엎드러지며 하나님께서 위기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을 호위하시며 건지시며 뛰어넘어 구원하여주실 것이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지금 위기 가운데 있는 유다 백성들과 히스기야 왕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며, 말씀의 종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랍사게의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말을 선택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인가?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말은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 항복하면 풍요로운 삶이 보장되는가?
랍사게의 두번째 담대한 주장의 말씀 병행본문 이사야 36장 16-17절 말씀입니다.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 내가 와서 너희를 너희 본토와 같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기기까지 하리라.“ 예루살렘 성안의 유다 백성들의 상황은 비참합니다. 먹을 것이 없기에 대변을 먹고 마실 물이 없기에 소변까지 마실 상황인데 앗수르의 랍사게의 제안은 달콤한 제안입니다. 항복하기만 하면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수 있고,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으로 옮겨주겠다는 매력적인 제안의 약속입니다.
매력적인 제안이나 얼마나 거짓된 제안입니까? 이미 멸망당한 북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랍사게의 제안이 얼마나 거짓된 제안인지 보여줍니다.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멸망당한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떠나 유리방황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앗수르의 랍사게의 달콤한 제안은 거짓의 아비, 모든 속임수의 대장 사단 마귀의 거짓된 제안과 유사합니다. 거짓의 아비 사단은 40일 금식으로 굶주린 예수님에게도 거짓된 제안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달콤한 제안이지만 속으면 안되는 거짓된 제안입니다. 지금 앗수르 대왕에게 항복하면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겠다 거짓된 제안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거짓된 제안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3절 말씀을 암송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라”
위기의 순간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신에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위기 앞에 굴복하고 앗수르의 왕에게 항복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처럼 보입니다. 히스기야왕의 사람들 이러한 위기의 때에 어떠한 반응을 보입니까? 역대하 36장 20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지금은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사람 앞에서는 침묵해야 할 때입니다. 사람에게 침묵하지만 지금은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의 입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코로나 위기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의뢰하고 의지하십니까? 지금의 위기의 순간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온전히 하나님만 신뢰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4. 오늘의 기도
앗수르 대왕을 의지하는 랍사게의 담대한 모습앞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얼마나 비참한 모습입니까? 하나님을 의뢰하자는 히스기야 왕의 말이 아니라 지금은 앗수르 대왕의 말을 들어야 할 때이며, 지금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대신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는 앗수르 대왕에게 항복해야 할 때라는 달콤하지만 거짓된 제안이 현실적인 때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 두 가지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위기의 순간에 더욱 사람에게는 침묵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께는 우리의 입을 열어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 위기를 딛고 일어서는 믿음의 승리를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 말씀 의지하며 아버지 앞에 나아갑니다. 지금도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큰 위기의 순간이지만, 사면을 바라보아도 절망의 순간이지만, 랍사게의 현실적인 말이 더욱 매력적으로 들려오지만, 그러나 이 순간에 우리의 믿음의 눈을 들어 살아계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주신 말씀 의지하게 하옵소서. 사람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입을 열게 하옵소서.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말씀하시는 그 은혜의 말씀 의지하며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의 나라에서 스스로 하나님을 버린 악한 왕이었던 유다의 12대 왕인 아버지 아하스를 이어 유다의 13대 왕이 된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이 되어 유다의 그 어느 왕보다 더욱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히스기야의 삶은 하나님을 향한 충성스러운 회복과 개혁이었습니다. 아버지 아하스가 망쳐놓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재건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회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하는 유월절 절기도 다시 회복하였습니다. 나라에서 우상도 몰아내고 산당도 제거하는 전무후무한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충성된 일을 역대하 31장 20-21절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의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하나님을 향한 선과 정의와 진실함의 사람 히스기야의 통치는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의 배경은 역대하 32장 1절 말씀은 형통 중에 찾아온 전혀 예상하지 못한 큰 위기의 상황입니다.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 히스기야가 왕이 된지 14년되는 해, 기원전 701년되는 해, 그 해는 지금까지 유다 역사 가운데 가장 큰 위기의 순간입니다. 이미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막강한 나라 앗수르가 이제 유다를 침공하여 유다의 여러 성들을 차례로 정복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예루살렘성을 완전히 포위하였고,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그의 신하들을 보내어 항복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포위되어 항복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을 보니 베스트셀러 작가 김훈의 베스트셀러 소설 <남한산성>으로 만든 영화 남한산성이 생각이 납니다. 영화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중국의 명나라에 이어서 패권을 잡은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고 인조가 있는 남한산성을 포위한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치욕을 참고 항복을 해야 한다는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은 “살기 위해서 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치욕을 견디고 사느니 끝까지 결사항전하여 죽음을 택하자는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은 “살기 위해서 죽음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같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인데 한 사람은 항복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결사항전을 하자고 합니다. 막강한 청나라의 세력에 조선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지금은 살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 살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으로 다양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BC 701년 히스기야 왕 앞에 놓인 위기는 중국의 청나라 보다 더 막강한 앗수르 제국의 산헤립 왕의 침공 앞에 높인 유다의 히스기야 왕의 선택의 상황도 아주 비슷합니다. 막강한 앗수르의 세력은 유다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유다는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유다의 힘과 능력으로 도무지 이길 수없는 막강한 앗수르의 왕 산헤립과 그의 신하 랍사게의 가슴을 후벼파는 말이 계속 이어집니다.
2. 유다는 무엇을 의뢰하는가?
역대하 32장 10-11절 말씀입니다. “앗스르 왕 산헤립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예루살렘에 에워싸여 있으면서 무엇을 의뢰하느냐? 히스기야가 너희를 꾀어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거니와 이 어찌 너희를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함이 아니냐?”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유다의 방언이 아니라 앗수르 나라의 아람 방언으로 말해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해도, 앗수르의 신하들은 일부러 유다 방언으로 유다인들에게 더 큰 목소리로 말합니다. 병행 본문 이사야 36장을 보면, 앗수르 제국의 군대장관 랍사게가 작은 나라 유다의 방언, 히브리어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가 히브리어로 유다 백성들을 설득하는 말은 지금 유다가 살기 위해서는 히스기야 왕의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대왕 앗수르의 산헤립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를 이 죽음의 위기에서 건질 수 있는 사람은 히스기야가 아니라 히스기야 왕이 의뢰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의 대왕 산헤립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면 앗수르의 산헤립과 랍사게의 말이 100% 맞습니다. 현실만 보면, 앗수르의 18만 5천명의 막강한 군사력 앞에 유다 히스기야 왕은 유다의 백성들을 이 큰 위기에서 건져낼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히스기야 왕이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은 7-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풍전등화의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 히스기야 붙든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닙니다. 자신의 힘도 지혜도 능력도 아닙니다. 혹시나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애굽의 말과 마병과 병거도 아니었습니다. 위기 가운데 히스기야는 위기의 순간에 함께하시는 오직 하나님만 신뢰합니다.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를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건져주신다는 믿음입니다.
히스기야의 이 믿음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믿음의 사람들이 현실만 바라보지 않고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위기의 순간에 히스기야가 붙든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이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심히 거역하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 돌아오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위협하던 앗수르는 사람의 칼이 아닌 하나님의 칼로 엎드러지며 하나님께서 위기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을 호위하시며 건지시며 뛰어넘어 구원하여주실 것이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지금 위기 가운데 있는 유다 백성들과 히스기야 왕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며, 말씀의 종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랍사게의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말을 선택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인가?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말은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 항복하면 풍요로운 삶이 보장되는가?
랍사게의 두번째 담대한 주장의 말씀 병행본문 이사야 36장 16-17절 말씀입니다.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 내가 와서 너희를 너희 본토와 같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기기까지 하리라.“ 예루살렘 성안의 유다 백성들의 상황은 비참합니다. 먹을 것이 없기에 대변을 먹고 마실 물이 없기에 소변까지 마실 상황인데 앗수르의 랍사게의 제안은 달콤한 제안입니다. 항복하기만 하면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수 있고,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으로 옮겨주겠다는 매력적인 제안의 약속입니다.
매력적인 제안이나 얼마나 거짓된 제안입니까? 이미 멸망당한 북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랍사게의 제안이 얼마나 거짓된 제안인지 보여줍니다.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멸망당한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떠나 유리방황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앗수르의 랍사게의 달콤한 제안은 거짓의 아비, 모든 속임수의 대장 사단 마귀의 거짓된 제안과 유사합니다. 거짓의 아비 사단은 40일 금식으로 굶주린 예수님에게도 거짓된 제안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달콤한 제안이지만 속으면 안되는 거짓된 제안입니다. 지금 앗수르 대왕에게 항복하면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겠다 거짓된 제안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거짓된 제안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3절 말씀을 암송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라”
위기의 순간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신에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위기 앞에 굴복하고 앗수르의 왕에게 항복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처럼 보입니다. 히스기야왕의 사람들 이러한 위기의 때에 어떠한 반응을 보입니까? 역대하 36장 20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지금은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사람 앞에서는 침묵해야 할 때입니다. 사람에게 침묵하지만 지금은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의 입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코로나 위기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의뢰하고 의지하십니까? 지금의 위기의 순간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온전히 하나님만 신뢰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4. 오늘의 기도
앗수르 대왕을 의지하는 랍사게의 담대한 모습앞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얼마나 비참한 모습입니까? 하나님을 의뢰하자는 히스기야 왕의 말이 아니라 지금은 앗수르 대왕의 말을 들어야 할 때이며, 지금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대신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는 앗수르 대왕에게 항복해야 할 때라는 달콤하지만 거짓된 제안이 현실적인 때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 두 가지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위기의 순간에 더욱 사람에게는 침묵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께는 우리의 입을 열어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 위기를 딛고 일어서는 믿음의 승리를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 말씀 의지하며 아버지 앞에 나아갑니다. 지금도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큰 위기의 순간이지만, 사면을 바라보아도 절망의 순간이지만, 랍사게의 현실적인 말이 더욱 매력적으로 들려오지만, 그러나 이 순간에 우리의 믿음의 눈을 들어 살아계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주신 말씀 의지하게 하옵소서. 사람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입을 열게 하옵소서.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말씀하시는 그 은혜의 말씀 의지하며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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