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마 18장 1-14절 제자도 (16) 제자의 겸손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12-06 16:42
Views
965


1. 해불양수

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에서 10년을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담임목사님이신 유승원 목사님께 배운 제 평생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목회철학이 있습니다. 해불양수 (海不讓水)라는 4자 성어입니다.“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해불양수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이사라는 신하가 진시황제에게 올린 상서에 나오는 유명한 글귀입니다. 이 상서에서 이사는 말하기를 “태산은 흙 한줌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높은 것이고, 강과 바다는 도량물과 개천물을 가리지 않았기에 그렇게 깊은 것입니다” 이사는 진시황을 보좌하여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루는데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바다는 어떤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거대한 대양을 이루듯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말씀의 사역자는 어떤 성도도 마다하지 않고 바다의 물처럼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사역할 것을 늘 강조한 그 가르침이 제 마음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바다의 물은 깨끗한 물도 환영하고, 더러운 물도 더럽다고 물리치지 않고 다 받아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면 해불양수처럼 다양한 제자들을 다 받아주셨습니다. 성격급한 베드로도 제자로 받아주셨고, 불 같은 성격의 우레의 아들들 야고보와 요한도 제자로 받아주셨습니다. 베드로의 동생이며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 잡던 어부였습니다. 의심많은 현실주의자 도마도 귀하게 여겨주셨고, 오늘의 극우파인 친로마주의자, 당대에 가장 죄인의 대명사로 불리우던 세리 마태도 제자로 받아주셨습니다. 반대로 오늘날 극좌파인 열심당원 극렬한 유대민족주의자 가나나인 시몬도 제자로 받아주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이 만든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우리 예수님께서 포기하신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2. 제자들의 질문: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크니이까?

우리 예수님께서 받아주신 그 수많은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왔던 기독교 2000년의 역사, 아니 아담 이후로 이 땅에서 살아왔던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크겠습니까? 마태복음 18장 1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정말 궁금해서 에수님께 질문합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나이까?” 이 질문에서 크냐는 비교급이 아니라 최상급입니다. 단 한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은 누구입니까? 천국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18장 바로 전에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절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목격한 단 세 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세명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변화되신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목격한 산에서 친히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변화산에서 갈릴리의 가버나움 시몬 베드로의 동네에서는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받는 사람들에게 오직 베드로와 예수님을 위해서 한 세겔을 준비하여주십니다. 마 17장 27절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12명의 제자 가운데 3명의 제자들이 강조되고, 3명의 제자들 가운데 단 한명의 제자인 베드로가 가장 탁월한 제자로 보입니다.

12명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지고 온 질문에는 마땅히 자신들이 포함되었어야 하는 기대로 예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높고, 누가 가장 크니이까? 오늘 본문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높고, 천국에서 가장 큰 자는 누구인지 세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3.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2-4절 말씀 우리 함께 읽습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천국에서 누가 가장 높고 큰 사람인지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세우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씀이 아멘입니다. 지금 하는 말씀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아멘으로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천국에서 누가 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돌이키는 사람입니다.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돌이키다는 것은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는 회개를 말씀합니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지 않는다면, 회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려면 우선적으로 인생의 방향을 돌이키는 회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돌이키라. 회개하라. 인생의 방향을 바꾸라.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하나님 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인지 돌이켜 회개하는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돌이켜 회개한 사람은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습니다. 어린이는 순수합니다. 어른이 이야기하면 따지지 않고 그냥 받아들입니다. 어제 새벽기도회에서는 준비한 말씀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막내 아들 동률이 둘이 참석하여, 둘이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막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새벽에 기도회 참석하려고 하니? 질문하니 바로 하나님 섬기고 싶어서요. 10살짜리 막내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 섬기고 싶다는 그 말이 얼마나 감사하고 좋았는지요!

우리가 돌이켜 회개하지 않은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돌이켜 회개하여 어린 아이 같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진정 천국에서는 가장 큰 사람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교만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낮추는 겸손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성품입니다.

마태복음 11장 11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순되는 가르침처럼 보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이 가장 크다. 그러나, 천국, 하나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 가장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그렇다면 누가 크고, 누가 작은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에서는 서열이 없습니다. 큰 자도 없고, 작은 자도 없습니다. 다만, 돌이켜 회개하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사람만이 있습니다.

어제 새벽기도회를 준비하면서 역대하 26장 말씀에 나오는 유다의 열번째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라는 웃시야 왕의 생애를 살펴보았습니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남과 북 유다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무려 52년 가장 오래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 동안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기이한 도우심을 입어서 형통한 왕이 되었습니다. 나라의 영토는 늘어가고, 경제력은 부강해지고, 국방력도 최고의 번성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의 문제는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역대하 26:16). 나라가 강성해지니, 그의 마음에 교만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그 교만한 마음에 악을 항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합니다. 우리 인생이 형통하고 잘 나갈 때 우리도 너무나 쉽게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교만이 모든 치명적인 죄 가운데 최고라면, 반대로 겸손은 우리 믿음의 사람이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하는 성품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하나님께 신실한 경건을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진리, 즉 우리의 연약함을 알게 하시는 진리 이외의 다른 것에 머물지 마십시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그리고 셋째도 겸손입니다.”(서간문, 118번). 최고의 신학서적 어거스틴의 고백록에서 어거스틴은 다시 강조합니다.“주께서 내게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어 내 교만을 꺽으시고 내 목을 길들여 주님의 멍에를 매도록 하셨습니다” (고백록, 10.36.58). 하나님의 은혜로 돌이켜 회개한 사람은 물처럼 낮고 낮은 자리를 찾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겸손을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최고의 가치이며 덕목입니다.


4. 겸손한 사람은 작은 자를 영접하고 실족시키지 않습니다.

5-6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의 모습은 믿음의 공동체에서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예수님은 두 가지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의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이런 어린아이 같은 작은 자를 영접하며, 그 작은 자를 실족시키지 않습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어린 아이는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작은 자 입니다. 내가 기꺼이 도움을 주어도 언젠가 나에게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이는 작은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종말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 25:35-36).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의인들은 예수님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준 적이 없고, 예수님이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한 적이 없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 믿음의 공동체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 그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우리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그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풀어 주는 사랑의 섬김이 우리 예수님을 섬기는 사랑의 섬김입니다. 종말의 때에 심판을 받을 악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정 반대입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기라 하시리니”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 천국에서 가장 큰 자인 사람은 이 땅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받아주고 환대하고 영접하는 사람입니다.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 천국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사람은 이런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가끼이 하고 섬겨주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얼만든지 할 수 있는 선행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공동체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영접하고, 받아주고, 인정해주고, 섬겨주는 그 사람이 지극히 겸손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지극히 작은자가 눈에 보입니다.

그러니 지극히 작은 자를 작고 보잘것 없고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무시하지 않습니다. 지극히 작은자도 우리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우리 예수님 자신이시니 환대하고 영접하고 사랑으로 기꺼이 섬겨줍니다. 그러니 어떻게 지극히 작은 그 사람이 믿음의 공동체에서 실족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믿음의 공동체이든지 그 공동체의 가장 작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얼마나 성숙한 공동체인지, 얼마나 미성숙한 공동체인지 알수 있습니다.

어느 학습 장애 어린이를 위한 기금 모금 만찬에서, 학습 장애 어린 아들을 두었던 아버지의 연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외부 영향을 받지 않는 한 자연이 하는 일은 모두 완벽하지요. 그러나 나의 아들 Shay는 다른 아이들이 배우는 만큼 배울 수 가 없고 다른 아이들이 이해하는 만큼 이해할 능력이 없습니다. 내 아들에게는 자연의 섭리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리고 아버지는 대답합니다. “Shay와 같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불구아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진정한 인간성을 깨닫게 하여주는 계기가 오게 되지요. 그리고 그 기회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나타납니다.”

Shay와 나는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Shay도 아는 아이들이 그곳에서 야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Shay가 묻습니다. 재네들이 나도 끼어줄까? 나는 구장에 있는 한 아이에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Shay도 같이 끼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8호인데 우리편은 6점 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팀에 들어와서 9회에 타석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Shay는 그 팀의 벤치로 가서 팀셔츠를 입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에 나는 흐뭇하여 눈물이 났습니다. 8회말 Shay 팀이 몇점을 올렸으나 아직 3점 뒤지고 있었지요. 9회말 Shay팀이 득점을 해서 이제 2아웃 만루가 되었습니다. 이기려면 다 들어와야 하는데 Shay의 타격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Shay에게 타석을 내어주어 이길 수 있는 찬스를 포기할까요? 놀랍게도 Shay 에게 타석이 주어졌어요. Shay는 공을 다루는 것은 고사하고 어떻게 방망이를 잡아야 하는지 모르기에 그 아이가 공을 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요. 투수는 상대팀이 Shay의 생애에 이 순간을 위하여 이길 기회를 제쳐놓은 사실을 알고는 Shay 의 방망이에 최소한 공이 닿기라도 하도록 몇 발짝 앞으로 와서 공을 띄워 천천히 던졌습니다. 천천히 날아오는 공을 Shay는 간산히 땅볼로 맞혀 공은 바로 투수 앞에 떨어졌습니다. 시합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죠. 그런데 투수는 1루 수비수 머리 위로 아무도 공을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던지더군요. 스탠드에 있는 사람들과 양 팀 선수 모두가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Shay 1루로 뛰어, 1루로 뛰라고. Shay는 만루타를 쳐서 자기 팀을 승리시킨 영웅이 되어 무척이나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가만히 말 하였습니다. 그 아이들이 진정한 사랑과 인간애를 이 세상에 보태는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Shay는 그 다음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그 해 겨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아이는 그 날의 영웅됨을 결코 잊지 못하더니….집에 와서는 눈물 어린 엄마가 그날의 이 작은 영웅을 안아주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Shay 같은 작고 어린 아이가 우리 공동체에 오면 우리 믿음의 가족들은 야구장의 그 아이들 처럼 기꺼이 영접해주고 영웅을 만들어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예수님은 Shay 같은 작은 자라도, 예수님 처럼 영접하고 실족시키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작고 연약하고 도울 힘 없는 어린 아이 같은 부족한 사람을 영접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보고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있다면, 그 작고 연약한 자도 우리 하나님 보시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에 우리의 영접을 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5. 겸손한 제자는 길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습니다.

11-4절 마지막 구절 우리 마음에 새겨며 함께 읽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구원하려 함이니라.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느니라. 이와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양 백마리를 가지고 있는 부자가 있습니다. 그 부자가 진짜 양의 목자라면 백 마리 가운데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위하여 찾아 나섭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다시 찾으면 길을 잃어버리지 아니한 양 99마리보다 더 기뻐합니다. 공동체 가운데 실족하여 떠난 귀한 양 한 마리를 위하여 우리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기꺼이 그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찾아가십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부족해서 떠난 믿음의 사람, 연약하지만, 우리 예수님이 기꺼이 찾아가시는 귀하고 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작은 자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부족한 믿음의 공동체에 찾아와서 함께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해도 우리 하나님이 찾으시는 천하보다 귀한 그 한 영혼입니다.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믿음의 사람은 고개를 숙일 줄 알고, 필요하다면 목을 꺽을 수 있고, 허리를 굽혀 부족한 그 사람을 찾아 다니는 우리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우리 예수님 보시기에 저와 여러분은 얼마나 큰 자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성탄이 다가오는 12월은 보잘것 없는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 같은 죄인 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시고 가장 낮추시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우고 기억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어린 아이같이 낮추어 주신 우리 예수님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같이 작고 연역한 자를 기끼어 영접하여주신 분이 우리 예수님 이십니다. 우리 같은 길 잃어버린 죄인 하나를 위하여 기꺼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찾아와 주신 분이 우리 겸손의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우리 구원자로, 우리 주님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제자들은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이 땅에서 겸손한 우리 주님의 제자로 살아갑니다. 겸손한 우리 주님을 닮은 제자로 겸손한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며 살아갑니다. 자신을 낮추며 살면서 작고 연약한 자를 영접하고 업신여기지 않으며, 작고 연약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며 찾으며 살아갑니다.

2020년 참 어려운 한 해의 마지막 12월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겸손한 우리 주님의 제자가 되어 우리 겸손의 예수님을 높이며, 우리 믿음의 공동체에서 가장 작고 가장 연약한 자라도 가장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우리 예수님의 겸손한 제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6. 찬송과 기도

다같이 새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함께 찬송합니다.

이 시간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길 원합니다. 2020년 어렵고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겸손히 낮아지신 우리 예수님의 성탄이 다가옵니다. 성탄의 은혜를 아는 우리 주님의 사람들은 결코 교만할 수 가 없습니다. 이 시간 높은 곳에 있으려는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꺽고, 우리 의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여 낮추시고 낮추시어 겸손한 우리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해불양수, 바다의 넓은 물처럼 작고 연약한 어린 아이같은 사람도 기꺼이 영접하게 하시며, 받아주게 하시며, 영웅으로 만들 수 있는 넉넉한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 삶 가운데 알게 모르게 실족케 한 영혼이 있다면 우리의 자존심도 내려놓고 우리의 합리적인 생각도 잠시 내려놓고 연약한 죄인을 위하여 기꺼이 낮아지시고 찾아와주시는 우리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참으로 겸손한 우리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작고 연약하고 도울 힘 없는 부족한 사람에 대한 우리 하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자비하심과 은혜를 이 시간 깊이 기억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낮고 낮은 인간의 몸으로 오신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지금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을 마음에 품으며 간절히 간구합니다. 낮고 낮아지신 우리 예수님을 닮은 겸손하고 겸손한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바다의 물 처럼 모든 사람들을 영접하고 받아줄 수 있는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믿음의 공동체는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인해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생각하게 하시며, 기도하게 하시며, 기꺼이 찾아가 찾아올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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