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7장 11-19절 제자도 (14) 제자의 감사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11-2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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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620년 메이플라워호 청교도의 이민 동기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미국으로 유학으로, 이민으로 오신 처음 동기는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2006년 7월 19일 미국으로 유학을 오면서 제가 좋아하던 역사신학 5년동안 열심히 공부하다가 한국에 돌아가서 신학생들 가르치며,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유학 동기였습니다. 2년간 정말 밤새도록 열심히 역사신학 공부만하다 보니 영적인 탈진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면 다시 말씀의 사역자로 교회와 영혼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마침 칼빈신학교 박사과정 입학을 하고 한국에서 식도암 투병중인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2008년 학교를 휴학을 하고 한국을 방문한 후에 Grand Rapids에서 Detroit로 왕복 5시간 거리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사역을 하면서 제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전하고, 말씀으로 청년들을 훈련하면서 박사과정 과정만 마치면 Detroit로 이사해서 우리 청년들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미국으로 유학온지 만 16년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지금 저의 간절한 바램은 우리 알버커키 뉴멕시코 지역에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를 여러분들과 함께 세워나가고 싶습니다.
올해가 미국에 영국의 남부 플리머스를 떠난 청교도들이 도착한지 40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한 해입니다. 1620년 9월 16일 영국을 떠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66일간의 항해끝에 1620년 11월 11일 오늘의 메사츄세츠 카이프카드 프로비던스타운에 102명의 청교도들이 도착했습니다. 102명 가운데 41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에서 내리기전에 메이플라워 언약(Mayflower Compact)을 맺습니다.“…하나님의 영광과 기독교 신앙의 증진 그리고 우리들의 국왕 및 조국의 명예를 위하여 버지니아의 북부 지방에서 최초의 식민지를 건립하려고 항해를 시도하였던 바, 본 증서를 통하여 우리들의 보다 더 바람직한 질서 수립과 보존 그리고 전술된 목적들의 촉진을 위하여 엄숙하게 상호간에 하나님과 서로의 면전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시민적 정치 단체로 결속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증진을 위해서 이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102명 가운데 52명이 추위와 배고픔으로 그리고 치명적인 괴혈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잃고, 자녀를 잃은 비극적인 첫 해였습니다. 청교도 지도자인 윌리엄 브래드포드는 이 때의 비극적인 상황에서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불안한 상황입니다. 질병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삶의 고통때문에 힘이 듭니다. 우리가 한 주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합시다”라고 한 주간의 금식기도를 제안했습니다. 한 주간 금식기도를 하는데 마음에 평안함이 없습니다. 금식기도를 내려놓고, 지난 1년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새기며 감사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1년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둘째, 우리의 죄를 사하여주셔서 구원해주시고 천국의 소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셋째, 신앙의 자유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넷째,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섯째,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의 가정과 개인게제 주신 특별한 은혜에 감사합니다. 감사함을 세어보니 불평하고 원망할 이유보다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옥수수 재배법을 가르쳐준 고마운 왐파노그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옥수수와 야생 칠면조, 사슴고기, 시냇가의 대구와 농어를 잡아서 첫 추수감사절을 감사함으로 지켰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중에 감사하는 믿음이 초기 미국 청교도들을 지킨 원동력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 2020년 감사하기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 감사할 것이 있는지요?
2.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누가복음 9장 21절 우리 예수님의 결심이 나와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예수님의 사역의 주된 무대인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긴 여행중에 계십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이 꼭 배우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여러 사역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7장 11-12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방문한 장소가 나옵니다. 11-12절입니다.“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이 마을은 특별한 마을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아닌 나병환자들, 오늘날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마을입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5장 2-3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나병환자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내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다 이스라엘 공동체 진영 밖에서 살아야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도 떨어져 살아야 합니다. 나병환자들이 모여사는 공동체에는 찾아가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마을에 누가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나병환자들이 모여사는 마을로 들어가셨습니다. 이 마을에서 제자들은 무엇을 배워야합니까?
3. 첫째, 제자들은 나병환자들의 간절한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12-13절 예수님과 제자들을 만난 열명의 나병환자들의 간절한 기도의 외침이 들립니다. “나병 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 멀리 서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예수님의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고, 모든 병든 자도 고치신다는 능력의 예수님이 찾아왔습니다. 일생 일대의 다시 없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리를 높입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그 마음으로 불쌍혀 여기신 그 긍휼함을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간절히 구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의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합당한 기도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달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우리 가정의 자녀들을 위하여, 우리 남편과 아내를 위하여, 우리 가족을 위하여 우리는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배워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십니까? 간절히 기도하십니까? 우리의 상황에서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그러나, 염려대신 기도하는 사람은, 근심 대신에 간구하는 사람은 하늘 아버지의 불쌍혀 여겨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은 병상에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시편 41:3-4절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병상에 누워있을 지라도, 인생의 나병같은 심각한 병에 걸려도 우리의 반응은 항상 간절한 기도입니다.
새로운 땅에서 청교도들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사건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간절한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경건한 뉴잉글랜드 청교도 카튼 매더는 그의 일기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어떻게 기도로 바꾸었는지 교훈하고 있습니다. 매우 화려한 복장의 여인을 보면서, “주여, 저 사람에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고, 그녀의 마음이 당신이 보시기에 매우 값진 장식들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키 큰 남자를 보면서, “주여, 저 사람에게 기독교 신앙의 높은 곳에 이르는 것을 허락하소서. 그가 많은 사람들보다 더 높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소서” 말에 탄 남자를 보면서, “주여, 당신의 피조물들이 저 사람을 섬기고 있나이다. 그가 자신을 만드신 분을 섬기도록 도우소서” 내가 듣기에 나에 대해 매우 비난조로 그리고 모욕적으로 말한 사람을 보면서, “주여, 그 사람을 나의 영혼과 똑같이 축복하시고 아끼시고 구원하소서 그 사람이 주님의 모든 구원 가운데 나와 교제하게 하소서” (홀튼 데이비스, 청교도 예배, pp. 180-181)
4. 둘째, 제자들은 간절한 기도와 더불어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하는 열명의 나병환자들을 불쌍히 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14절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나병환자들이 간절히 구한 기도를 들으시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주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간절히 기도한 그 기도에 믿음이 필요함을 말씀하십니다. 간절한 기도에 믿음이 없으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병환자들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믿고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기 위해서 길을 갑니다.
레위기 14장 나병환자가 나병에서 나았다면 어떻게 제사장에게 나아가야 하는지 말씀합니다. 레위기 14장 2-4절 말씀입니다.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나병환자가 그냥 제사장에게 갈 수가 없습니다. 나병에서 완전히 고침을 받아야 제사장에게 갈 수 있습니다. 열명의 나병환자들 언제 고침을 받은 것입니까? 길을 떠나기 전에 고침받고 제사장에게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길을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들에게 간절한 기도에 합당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목숨을 걸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이 땅으로 온 청교도들에게 어떤 믿음이 있었을까요? 영국에서 영국 국교회가 타락했음을 확신한 이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영국 국교회의 박해를 피해서 먼저 네덜란드로 갔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영어를 잃어버리고 네덜란드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네덜란드 청년들의 방탕함과 유혹에 빠져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부모를 떠나 방종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대로 그냥 네덜란드에 있다면 아이들이 다 타락할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괴롭습니다. 더욱이 네덜란드에서는 힘든 노동과 각박한 월급에 곧 네덜란드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들에게 로버트 쿠쉬맨의 신대륙 보고서의 내용을 들었습니다.“인디언의 땅은 광활하게 텅 비어 있으나 그들의 경작지는 아주 적은 부분이며, 여우와 들짐승만 우글거린다... 그러므로 옛날 족장들이 좁은 지역에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던 넓은 땅으로 옮겨 정착한 거서 처럼, 이제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사용하려고 하지 않은 땅을 취하자” 이 믿음으로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너왔습니다. 새로운 땅에서는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하며,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자녀들에게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을 믿고 이 땅으로 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믿음으로 이 땅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이땅에서 살면, 이땅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우리 아이들을 말씀으로 키울 수 있는 복된 땅이라는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는지요?
5. 셋째, 간절한 기도, 믿음과 더불어 제자들이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감사입니다.
믿음으로 제사장을 만나러 떠난 열명의 나병환자들은 길을 가다가 다 깨끗함을 받는 고침을 받았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절박한 문제인 나병에서 놓임을 받고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가족들도 만날 수 있고, 이제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도 있는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가족이겠지요. 사랑하는 부모님,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내 사랑하는 자녀들을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제사장에게 나병에서 놓였다는 선언만 듣는다면 이제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병에서 고침을 받은 열명 가운데 오직 한 사람이 다시 예수님께 돌아옵니다. 15-16절 우리 같이 읽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나병에서 고침을 받은 열명 중에서 단 한 사람이 자기가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가던 길을 바꾸어 다시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이제 멀리서지 않아도 이제는 아주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합니다. 그는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17-18절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한 그 사마리아인으로 보고 예수님은 질문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나병환자 열명 모두 다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아홉명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유대인들이 그토록 멸시하는 사마리아인, 유대인들이 이방인으로 여기는 그 사마리아 나병환자 외에는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가 없는 것입니까? 가장 감사함이 없어 보이는 저 부정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는데 나라의 원래 자손이라 자부하던 유대인들은 감사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열명의 나병환자의 간절한 기도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믿음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9명의 고침받은 나병환자들에게는 고침받은 기쁨은 있지만, 합당한 감사함이 없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까? 감사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에 대한 합당한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시편 116편 12절 시인의 질문과 답변입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7절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시편 50편 22-23절 말씀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가장 합당한 반응은 감사로 올려드리는 제사이며, 감사로 올려드리는 예배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것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감사로 올려드리는 제사, 감사로 올려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믿음도 감사입니다.
감사함으로 예수님께 돌아온 단 한 명의 사마리아 나병환자에게 예수님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주십니다. 19절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열명의 나병환자는 모두 간절히 기도한 나병에서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지만, 오직 단 한 명 사마리아인 나병환자만 가장 큰 선물의 은혜인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들은 고침받은 열명의 나병환자를 보고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지난 달 16일 제가 참 존경하는 한국의 지구촌 교회의 원로목사님이신 이동원 목사님의 둘째 아들 이범 집사님의 장례 예배가 있었습니다. 게임 전문 국제변호사로 토렌스 조은교회의 신실한 집사님으로, 대장암 수술후 투병을 하다가 올해 42살, 아내는 이제 마흔, 9살난 아들을 두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동원 목사님께서 아들의 죽음 앞에, 열가지 감사 제목을 감사 기도로 올렸습니다. 1. 아들이 암에서 해방되어 감사합니다. 2. 아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입성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3. 유머가 있던 아들로 인해 부부가 기쁨을 누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4. 한 순간도 불평없던 그의 아내와 손자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5. 어려서부터 게임을 좋아하더니 게임회사 변호사가 된 것도 감사합니다. 6. 아들의 고통을 통해 예수님을 내어주신 하늘 아버지의 고통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7. 수많은 암환자들과 연대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8. 자식을 잃은 수많은 분들의 마음을 알 수 있어 감사합니다. 9. 전세계 수많은 중보기도자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10. 아들이 먼저 간 천국을 더 가까이 소망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추수감사주일 오늘 어떤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감사는 무엇입니까? 감사함으로 구원을 받은 사마리아인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6. 간절한 기도, 믿음, 감사를 넘어 하나님의 비젼을 품는 삶
미국의 청교도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그렇게 목숨을 걸고 미국 땅에 도착해서 감사함으로 추수감사절을 보냈던 청교도들의 역사는 겨우 70년 유지되다가1691년 10월에 매사추세츠에 합병됨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추수감사절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던 청교도들은 그 이후 미국 역사에 기여한 것이 추수감사절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신앙의 자유를 추구하며,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추구하며,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이 땅에 왔지만,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지만, 그들에게 빠진 것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미국을 건국한 세력이 아니었습니다. 1620년 9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이 땅에 도착한 102명의 청교도들에게는 없었던 것이, 10년후인 1630년 3월 아르벨라호를 타고 이땅에 도착한 또 다른 영국 청교도들에게는 간절한 기도, 믿음, 감사와 함께 한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의 비전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16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썩어진 세상을 등지는 신앙의 삶이 아니라 썩어진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등경위의 등불처럼, 저 샌디아 산에 있는 집들처럼 산위의 동네를 만들어 온 세상을 비추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입니다. 언덕 위의 도시 (City on a Hill) 이것이 미국을 건국한 청교도들의 하나님 나라 비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만 여러분 가정만 이 복된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기도하며 믿음의 삶을 살며, 감사하는 개인적인 신앙을 넘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변하는 비전이 없이는 우리의 믿음의 영향력은 단 한 세대, 길어야 두 세대, 세 세대로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며, 감사하며, 이 비전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진정한 하나님 나라 비전을 이루며 살 것입니다. 올해 추수감사주일 개인적인 감사함을 넘어, 우리 이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산위의 동네, 언덕위의 도시를 이루기를 꿈꾸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7. 찬송과 기도
다같이 복음성가 “날 구원하신 주 감사” 함께 찬송합니다.
이 시간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길 원합니다. 올 한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마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 감사를 세어보면 너무나 감사한 것이 많습니다. 이 시간 기도하실 때에는 우리의 감사함을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로 하나님을 영광롭게 하길 원합니다. 가장 큰 감사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올 한 해 여기까이 올 수 있도록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그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들 팬더믹 상황에서 건강하게 지켜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어려운 중에도 우리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지역의 홈리스, 독거노인, UNM 청년들을 섬길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흩어지지 아니하고 연약하지만 공동체를 이루게 하심도 감사를 드리며,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갖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옵소서 간절히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지극히 연약한 자의 감사를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우리 삶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의 열매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 크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고,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게 하시며, 우리의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 우리 가족들, 그리고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믿음의 가족들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건강하게 붙들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감사함이 우리에게만 머물지 않게 하시며, 우리의 감사함이 우리 지역의 산 위에 동네처럼, 언덕위의 도시처럼,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비전의 사람, 하나님 나라 비전의 주님의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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