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12장 11-21절 사랑과 두려움으로 나아가며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10-31 12:19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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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번째 고린도교회 방문을 준비하며
성경 66권 중에서 목회자가 가장 설교하기 힘든 본문 중의 하나가 고린도후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한달동안 고린도후서 본문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면서 말씀 사역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큰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깨우친 말씀을 통해서 사역자가 얼마나 힘든 사역의 길, 고난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동시에 사역자로 말씀을 전해야 하기에 마치 제 변명을 하는 것 같아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마지막 말씀 묵상입니다. 다음주 부터는 11월 매일성경 말씀묵상은 역대하 본문입니다.
고린도후서를 마무리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제 세번째 고린도교회를 방문할 계획을 밝힙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 가운데 가장 많이 방문하고, 가장 많은 편지를 쓴 고린도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모두 네 차례의 편지를 썼습니다. 첫번째 편지가 있고, 디모데를 통해서 보낸 두번째 편지가 고린도전서이고, 디도를 통해서 보낸 네번째 편지가 고린도후서입니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사이에는 눈물의 편지로 알려진 세번째 편지가 있습니다.
바울의 첫번째 고린도 방문은 2차 전도여행 중이었습니다. 1년 6개월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낮에는 천막을 만들면서, 고생하여 눈물로 고린도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우상과 음란의 항구 도시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두번째 고린도방문은 고통스러운 방문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디모데를 통해서 보냈지만,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젊은 사역자 디모데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바울은 그 소식을 듣고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고린도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비통한 마음으로 에베소로 떠나갔습니다. 두번째 고린도 방문을 실패하고, 고린도후서 2장 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다시는 고린도를 방문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오니”
그러나, 비통한 마음으로 에베소에 도착한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생각하면 계속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비통한 마음으로 세번째 눈물의 편지를 보냅니다. 3번째 눈물의 편지를 보낸 후에 디도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알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가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의 모든 내용을 따랐으며,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징계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기뻐하면서 네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를 보냅니다.
이제는 고린도후서를 디도 편에 보내면서 바울은 세번째 고린도 방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방문을 할때의 상황은 앞선 두번의 고린도 방문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전도하여 개척하고자 한 첫번째 방문과,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두번째 방문과 달리, 세번째 방문에는 고린도교회와의 관계가 비교적 괜찮습니다. 이번에 고린도를 방문을 하면서는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연보를 모금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고린도후서 8-9장 말씀이었습니다. 연보를 위해서 제자 디도와 두 명의 사역자를 고린도로 먼저 보내어 고린도교회가 준비없이 연보를 하지 않고 잘 준비하라고 당부를 합니다.
그러나, 세번째로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면서 바울의 주된 방문의 목적은 연보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마음으로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는지 14-15절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이제 세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여기에 사도 바울의 고린도교회 세번째 방문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방문 목적을 보면, 사역자가 교회에서 어떤 마음으로 사역을 해야 하는지 사역자 바울의 마음이 잘 담겨있습니다. 사역자는 어떠한 마음으로 사역을 해야합니까?
2.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랑의 헌신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도 계획하고 있지만, 돈이 목적이 아닙니다. 또 고린도교회에 방문해서 교회에 폐를 끼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마음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멀리 있는 자녀를 방문하는 부모님의 목적은 자녀의 돈, 물질이 아니라, 자녀와 함께 있고 싶어하고, 함께 대화하고 싶어하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에 고린도교회에 세번째 방문하고자 하는 사도 바울을 보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6절 그들의 비난입니다.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는 아무리 순수하고 선한 동기로 사역을 하여도, 왜곡해서 보는 시선이 항상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고린도교회를 이간질시키는 거짓 교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자주 편지를 보내고, 자주 방문하는 것은 비교적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물질적으로 이용하기 위함이라고 의심했습니다.
이런 의심과 비난까지 들어가면서 고린도교회에 나아가는 사도 바울의 방문의 목적은 고린도교회에서 얻는 물질이 아니라 고린도교회를 위한 사랑의 수고이며, 사랑의 헌신입니다. 안디옥교회에서 그 먼 거리의 고린도교회를 자주 방문하는 것이 사도 바울에게는 육체적인 큰 짐이며, 방문에 드는 많은 재물을 사용하는 것이며, 사도 바울 자신을 내어주는 수고와 헌신입니다. 사랑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헌신입니다. 사랑하기에 재물도 사용하고, 허비하고, 자신까지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17-18절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의 제자인 디도와 다른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연보를 위해서 고린도교회로 나아간 제자 디도와 다른 형제도 그들 스스로의 물질의 이익을 위해서 고린도교회로 간 것이 아닙니다. 사역자의 생계를 위해서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고 사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명처럼 들릴지라도, 19절 사역의 목적이 있습니다. “너희는 이때까지 우리가 자기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너희의 덕은 바로 어렵고 힘들지만 교회를 세우기 위한 사역자의 헌신이며 수고이며 희생이며 그것이 교회를 향한 사랑입니다.
3. 그럼에도 두려움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은 사도 바울이지만, 사도의 권위를 주장할 수 있지만,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로부터 받을 인간적인 어려움을 두려워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20-21절 말씀입니다.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두번째 고린도교회 방문에서 큰 어려움을 한번 겪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인간적인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사역을 하고 싶은데, 혹시 그렇지 못할까봐 두렵습니다. 혹시 고린도교회가 사도 바울과 그의 사역을 원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여전히 고린도교회에서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의 죄악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 혹시나 다시 한번 비참하게 하나님께서 낮추게 하시는 험악한 일을 당할까 두렵고, 아직까지 교회에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의 죄악을 회개하지 않는 성도들의 모습을 볼까 두렵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세번째 고린도 방문을 앞둔 이런 사랑과 두려움 마음의 사도 바울을 어떻게 대해야합니까? 인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도이며 사역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의 직분에 맞는 은사와 능력을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부어주셨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고린도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입니까? 히브리서 13장 17절 초대교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많은 사역자들을 대하는 성도의 태도가 마땅히 어떠헤야 하는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 인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라.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교회의 유익과 덕을 세우기 위해서 사역자들이 근심이 아니라 즐거움과 감사함과 기쁨으로 사역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지난 1년 동안 정말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하게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마음 속에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근심하게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계속 근심하게 될 까 마음에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사도의 표 가운데 가장 먼저인 12절의 모든 참음으로 계속 감사함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4. 오늘의 기도
이 시간 다 함께 합심하여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길 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은 고린도교회에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기에, 기꺼이 수고하고, 헌신하고, 재물도 사용하고 자신까지 허비합니다. 이 시간 교회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합니다. 둘째는 교회의 모든 사역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교역자, 카운실, 우리 교회의 섬김의 수고를 감당하시는 여러 집사님들, 보이지 않는 손길로 사랑으로 기꺼이 섬기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우리 주님의 종들입니다. 이들이 사역 감당할 때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사역이 아닌 사랑으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사역자가 되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 승천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 땅에 남겨두어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알버커키 뉴멕시코 지역에 우리 교회를 세우시어 고국에서 먼 이 곳에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영적인 가족같은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사랑함으로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며 주 안에서 한몸으로 이 마지막 시대에 귀하게 쓰임받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교회의 모든 사역자들,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으로 맡겨진 사역 잘 감당케 하시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사역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성경 66권 중에서 목회자가 가장 설교하기 힘든 본문 중의 하나가 고린도후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한달동안 고린도후서 본문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면서 말씀 사역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큰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깨우친 말씀을 통해서 사역자가 얼마나 힘든 사역의 길, 고난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동시에 사역자로 말씀을 전해야 하기에 마치 제 변명을 하는 것 같아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마지막 말씀 묵상입니다. 다음주 부터는 11월 매일성경 말씀묵상은 역대하 본문입니다.
고린도후서를 마무리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제 세번째 고린도교회를 방문할 계획을 밝힙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 가운데 가장 많이 방문하고, 가장 많은 편지를 쓴 고린도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모두 네 차례의 편지를 썼습니다. 첫번째 편지가 있고, 디모데를 통해서 보낸 두번째 편지가 고린도전서이고, 디도를 통해서 보낸 네번째 편지가 고린도후서입니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사이에는 눈물의 편지로 알려진 세번째 편지가 있습니다.
바울의 첫번째 고린도 방문은 2차 전도여행 중이었습니다. 1년 6개월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낮에는 천막을 만들면서, 고생하여 눈물로 고린도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우상과 음란의 항구 도시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두번째 고린도방문은 고통스러운 방문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디모데를 통해서 보냈지만,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젊은 사역자 디모데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바울은 그 소식을 듣고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고린도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비통한 마음으로 에베소로 떠나갔습니다. 두번째 고린도 방문을 실패하고, 고린도후서 2장 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다시는 고린도를 방문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오니”
그러나, 비통한 마음으로 에베소에 도착한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생각하면 계속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비통한 마음으로 세번째 눈물의 편지를 보냅니다. 3번째 눈물의 편지를 보낸 후에 디도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알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가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의 모든 내용을 따랐으며,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징계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기뻐하면서 네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를 보냅니다.
이제는 고린도후서를 디도 편에 보내면서 바울은 세번째 고린도 방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방문을 할때의 상황은 앞선 두번의 고린도 방문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전도하여 개척하고자 한 첫번째 방문과,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두번째 방문과 달리, 세번째 방문에는 고린도교회와의 관계가 비교적 괜찮습니다. 이번에 고린도를 방문을 하면서는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연보를 모금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고린도후서 8-9장 말씀이었습니다. 연보를 위해서 제자 디도와 두 명의 사역자를 고린도로 먼저 보내어 고린도교회가 준비없이 연보를 하지 않고 잘 준비하라고 당부를 합니다.
그러나, 세번째로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면서 바울의 주된 방문의 목적은 연보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마음으로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는지 14-15절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이제 세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여기에 사도 바울의 고린도교회 세번째 방문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방문 목적을 보면, 사역자가 교회에서 어떤 마음으로 사역을 해야 하는지 사역자 바울의 마음이 잘 담겨있습니다. 사역자는 어떠한 마음으로 사역을 해야합니까?
2.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랑의 헌신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도 계획하고 있지만, 돈이 목적이 아닙니다. 또 고린도교회에 방문해서 교회에 폐를 끼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마음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멀리 있는 자녀를 방문하는 부모님의 목적은 자녀의 돈, 물질이 아니라, 자녀와 함께 있고 싶어하고, 함께 대화하고 싶어하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에 고린도교회에 세번째 방문하고자 하는 사도 바울을 보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6절 그들의 비난입니다.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는 아무리 순수하고 선한 동기로 사역을 하여도, 왜곡해서 보는 시선이 항상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고린도교회를 이간질시키는 거짓 교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자주 편지를 보내고, 자주 방문하는 것은 비교적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물질적으로 이용하기 위함이라고 의심했습니다.
이런 의심과 비난까지 들어가면서 고린도교회에 나아가는 사도 바울의 방문의 목적은 고린도교회에서 얻는 물질이 아니라 고린도교회를 위한 사랑의 수고이며, 사랑의 헌신입니다. 안디옥교회에서 그 먼 거리의 고린도교회를 자주 방문하는 것이 사도 바울에게는 육체적인 큰 짐이며, 방문에 드는 많은 재물을 사용하는 것이며, 사도 바울 자신을 내어주는 수고와 헌신입니다. 사랑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헌신입니다. 사랑하기에 재물도 사용하고, 허비하고, 자신까지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17-18절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의 제자인 디도와 다른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연보를 위해서 고린도교회로 나아간 제자 디도와 다른 형제도 그들 스스로의 물질의 이익을 위해서 고린도교회로 간 것이 아닙니다. 사역자의 생계를 위해서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고 사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명처럼 들릴지라도, 19절 사역의 목적이 있습니다. “너희는 이때까지 우리가 자기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너희의 덕은 바로 어렵고 힘들지만 교회를 세우기 위한 사역자의 헌신이며 수고이며 희생이며 그것이 교회를 향한 사랑입니다.
3. 그럼에도 두려움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은 사도 바울이지만, 사도의 권위를 주장할 수 있지만,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로부터 받을 인간적인 어려움을 두려워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20-21절 말씀입니다.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두번째 고린도교회 방문에서 큰 어려움을 한번 겪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인간적인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사역을 하고 싶은데, 혹시 그렇지 못할까봐 두렵습니다. 혹시 고린도교회가 사도 바울과 그의 사역을 원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여전히 고린도교회에서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의 죄악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 혹시나 다시 한번 비참하게 하나님께서 낮추게 하시는 험악한 일을 당할까 두렵고, 아직까지 교회에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의 죄악을 회개하지 않는 성도들의 모습을 볼까 두렵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세번째 고린도 방문을 앞둔 이런 사랑과 두려움 마음의 사도 바울을 어떻게 대해야합니까? 인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도이며 사역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의 직분에 맞는 은사와 능력을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부어주셨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고린도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입니까? 히브리서 13장 17절 초대교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많은 사역자들을 대하는 성도의 태도가 마땅히 어떠헤야 하는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 인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라.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교회의 유익과 덕을 세우기 위해서 사역자들이 근심이 아니라 즐거움과 감사함과 기쁨으로 사역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지난 1년 동안 정말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하게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마음 속에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근심하게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계속 근심하게 될 까 마음에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사도의 표 가운데 가장 먼저인 12절의 모든 참음으로 계속 감사함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4. 오늘의 기도
이 시간 다 함께 합심하여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길 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은 고린도교회에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기에, 기꺼이 수고하고, 헌신하고, 재물도 사용하고 자신까지 허비합니다. 이 시간 교회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합니다. 둘째는 교회의 모든 사역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교역자, 카운실, 우리 교회의 섬김의 수고를 감당하시는 여러 집사님들, 보이지 않는 손길로 사랑으로 기꺼이 섬기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우리 주님의 종들입니다. 이들이 사역 감당할 때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사역이 아닌 사랑으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사역자가 되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 승천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 땅에 남겨두어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알버커키 뉴멕시코 지역에 우리 교회를 세우시어 고국에서 먼 이 곳에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영적인 가족같은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사랑함으로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며 주 안에서 한몸으로 이 마지막 시대에 귀하게 쓰임받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교회의 모든 사역자들,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으로 맡겨진 사역 잘 감당케 하시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사역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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