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1장 1-19절 제자도 (10) 제자의 의문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10-2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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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개혁 503주년 주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10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2020년 참 힘들게 지나가고 있는데 11월 12월 이제 두달 남았습니다. 10월의 마지막 주일 여러분은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10월의 마지막 주일이 되니 아내와 함께 매년 찾아갔던 서부 미시간 호수의 M-22 미국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미시간 호숫가의 아름다운 Tunnel Tree 단풍이 정말 그립습니다.
10월의 마지막 주일, 특별히 10월 31일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예전에 한국에서는 가수 이용의 노래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뜻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어요…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는 하루동안 방송이 된 단일 노래로는 기네스북에 오른 노래라고 합니다. 10월 31일만 되면 전국에서 100회 이상 들려진 노래…아직도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10월이 지나가기 전에 한때는 부부였던 임태경/ 박소연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라는 멋진 노래도 생각이 납니다.
10월 마지막 주간에는 1979년 10월 26일 청와대의 궁정동 사건이 기억이 날 것입니다. 그때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였는데, 10월 26일 다음날 학교에 가서 엄청나게 운 기억이 납니다. 교장 선생님, 선생님도 울고,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에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용의 노래보다, 10월 26일 사건보다 더 중요한 일이 10월의 마지막 날에 일어났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기다리는 할로윈 데이도 있지만, 10월의 마지막 날은 1517년 10월 31일, 이 땅의 모든 개신교회에 너무 중요한 날입니다. 개신교회가 탄생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가 독일의 비텐 베르크의 성당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내건 날이며, 개신교회는 이 날을 종교개혁일로 지키고, 그 주간을 종교개혁주일로 지킵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3주년이 되는 주간입니다. 우리가 왜 로마 가톨릭 신앙이 아니라 개신교 Protestant 인지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2. 종교개혁의 5대 원리와 개신교 형제 교단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와 스위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칼빈, 이 두분의 종교개혁자의 영향력은 오늘도 이 종교개혁을 기억하는 주간에 우리가 기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다섯가지 종교개혁의 원리가 있는데, 이 다섯가지 종교개혁의 원리도 꼭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만일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우리의 손에는 한글 성경도 영어 성경도 독일어 성경도 번역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직 라틴어만을 아는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불행한 시대였을 것입니다. 오직 성경의 권위가 아니라 지금도 로마 교황의 가르침과 결정의 교회 전통이 우리의 신앙을 기준이 됩니다. 만일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함께 우리의 공로가 구원의 조건이 됩니다. 그러니 지금도 로마 가톨릭은 아무리 열심으로 믿어도 구원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불행합니까? 만일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적 속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면죄부를 팔고 사면서 구원의 은혜를 얻고자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만일 종교개혁이 아니었다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면, 사제를 중심으로 모든 영광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가로챌 수 있는 계급적 사제 구조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독일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는 독일의 Lutheran 루터파와 스위스 제네바의 칼빈과 스위스 쮜리히의 쯔빙글리,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의 종교개혁의 영향력을 가장 많이 받은 Presbyterian 장로교단이 생겨납니다. 칼빈의 영향력으로 네덜란드에서는 Reformed 개혁교단, 그리고 영국에서는 헨리 8세의 이혼과 재혼 문제로 인해서 생겨난 영국 Episcopal 성공회가 있고, 영국 성공회 교단의 존 웨슬레와 챨스 웨슬레 형제와 조지 휘필드의 영향으로 생긴 Methodist 감리교가 있고, 감리교에서 나온 오순절과 성결교단, 영국 성공회에서 역시 나온 침례교가 있습니다. 스위스 쮜리히의 쯔빙글리의 제자 그룹에서 나온 Anabaptist 재침례교단이 있습니다. 신학적인 강조점의 차이가 있지만 개신교의 모든 교단은 이단을 제외하고 모두 형제 교단입니다. 개신교는 모두 종교개혁의 5가지 원리를 따릅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종교개혁의 역사를 자세히 보면, 종교개혁은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구습만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구원과 연관된 교리였습니다. 종교개혁은 삶의 개혁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교리의 개혁이 우선순위였습니다. 교리의 개혁가운데 중세 천년동안 잘못된 인간의 공로와 선행 중심의 구원관에서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게 되어진다는 이신칭의의 구원론의 재발견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참으로 부패한 죄인이기에 죄인들이 모인 주님의 교회는 한번 종교개혁을 통해서 새로워진 교회이지만, 더 이상 개혁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개혁된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른 교회, 다른 사람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개혁되어야 합니까?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날마다 개혁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 가운데 가장 개혁이 되어야 할 모습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오늘 위대한 신앙인,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위대한 신앙인 세례 요한을 통해서 우리도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3. 여자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신앙인 세례 요한의 의문
11절 우리 예수님의 세례 요한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평가는 없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 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면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11절 다음 구절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마태복음의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우리 같은 사람도 세례 요한보다는 크다고 평가하십니다. 상반되고 모순되는 평가처럼 보입니다. 위대한 세례 요한보다 우리가 더 크다고 평가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1-3절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이까?”
예수님은 저 북쪽의 갈릴리 지역에서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열두 제자와 함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치유 사역을 하십니다. 그때 예수님을 세례 준 세례 요한은 헤롯 대왕의 아들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로 인해서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감옥에서 예수님의 사역의 모습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큰 의문이 생겼습니다. 2-3절 여기보면 위대한 신앙인 세례 요한의 중요한 질문은 이상한 질문입니다. 다시 읽어 봅시다. “요한이 옥에서 듣고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 요한은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자기의 동생 헤롯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강제로 아내 삼은 것이 부당하다고 헤롯 안티파스를 공개적으로 책망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 안티파스로 인해서 감옥에 갇히고 헤로디아와 해로디아의 딸 살로메로 인하여 목숨을 잃을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마음 가운데 큰 의문이 듭니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이 정말 구약에서 그토록 예언되었던 바로 그 메시야, 그 그리스도가 맞는가라는 것입니다.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이까?” 마음에 의심이 싹 틉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메시야라면 마땅히 다르게 사역하셔야 하는데, 예수님이 현재 열심으로 행하시는 사역의 모습을 본다면 예수님은 메시야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의문은 모순되는 질문처럼 보입니다.
요 1: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 1:26절 제자들에게도 말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고백합니다. 34절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세례 요한은 분명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가시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어린양 이시며, 구약에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확실하게 알고 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세례 요한이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이까?라고 의문을 가진 것은 모순처럼 보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세례 요한만 그런 의심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도 한때는 열심으로 예수님을 따랐지만 결국에는 예수님이 자신이 생각한 메시야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야는 예수님이 열심으로 사역하면서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메시야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왜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이인 세례 요한은 이런 말도 안되는 의문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4. 세례 요한이 기대한 임박한 진노의 심판
제가 살았던 pure 미시간의 자연 환경이 참 좋지만, 미시간에는 산이 없는 것이 많이 아쉬었습니다. 알버커키에서 조금 벗어나면 샌디아 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로키 마운틴 산맥의 여러 산 봉우리들이 계속 이어져 나옵니다. 저 멀리서 일직선으로 Cibola National Forest를 보면, 마치 여러 개의 산이 하나의 산으로만 보입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여러 산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멀리서 보면 분명 하나의 산 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두 개의 산도 되고, 세 개의 산도 됩니다. 한쪽에서 보면 분명 하나의 산이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여러 개의 산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 3:7-12절을 보면 세례 요한이 설교한 설교의 핵심이 나옵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 요한의 설교의 핵심 가르침을 보면, 이 땅에 임하실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메시야가 오실 때에 기대한 것은 바로 임박한 진노과 심판입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이 땅에서 제대로 믿지 않는 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알곡은 모아서 곳간에,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진노의 심판을 행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을 세례 요한이 가만히 보니, 무엇인가 조금 이상합니다. 자기가 기대한 진노의 심판과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차이가 납니다. 마음속에 의문이 듭니다. 정말 저 분이 메시야 맞는가? 여러분, 예수님이 정말 메시야 맞습니까?
5.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 맞습니까? 구약 성경에 메시야는 심판주이시며 동시에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구약 성경에서 저 멀리 바라보면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나옵니다. 그래서 심판을 행하시는 메시야를 기대합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은 위대한 신앙인이지만 구약에 속한, 옛 언약에 속한 옛 시대의 사람입니다. 옛 시대의 사람이 보기에는 심판과 구원 가운데 구원의 주님으로 초림하시는 메시야와 심판의 주님으로 재림하시는 메시야가 구분이 안됩니다. 구약에 속한 위대한 신앙들은 히브리서 11장 39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세례요한도 구약에 있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처럼 증거를 받았으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더 좋은 약속, 새 언약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지 못한 구 시대의 막차에 속한 위대한 신앙인입니다. 구시대의 막차와 새로운 시대의 첫차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구시대의 막차가 위대해도 새로운 시대의 부족한 첫차가 더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기대처럼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심판의 주님으로 초림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주님으로 초림하셨습니다. 첫번째 커다란 산 봉우리입니다. 첫번째 초림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그러나 두번째 재림하실 때는 구원이 아니라 진노의 심판의 주님으로 다시 오십니다. 두번째 커다란 산 봉우리입니다. 진노의 심판 전에는 구원의 주님으로, 구원의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신 것 입니다.
세례 요한의 의문에 대한 우리 예수님의 명확한 답변입니다. 마태복음 11장 4-6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이 말씀은 구약 성경 이사야 35:5-6절의 말씀의 인용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도래하는 메시야의 새로운 시대에는 맹인의 눈도 환하게 열리며,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귀도 활짝 열리며, 다리는 저는 사람은 사슴 같이 뛰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는 심판이 아닌 구원의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메시야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메시야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인용한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 4:18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구약 성경 이사야 61:1절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예수님은 이 땅에서 심판과 보복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은혜를 선포하셨습니다. 옛시대에서는 멀리서 보면 심판 밖에 안 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의 거대한 산 이전에 반드시 새로운 시대의 은혜의 거대한 산이 먼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먼저 심판이 아닙니다. 먼저 은혜의 선포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 복된 복음을 통하여 죄의 포로된 사람에게 자유를 선포하시고, 소경의 눈을 띄게 하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시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가져오시는 이 놀라운 하나님 나라 복음의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참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오직 성경 맞습니까?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맞습니까? 지금은 심판의 때가 아닙니다. 심판의 때가 반드시 다가 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는 은혜의 때가 아니라 심판의 때입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심판의 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감사하게도 지금은 아직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은혜의 때입니다.
고후 6:1-2절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Sola Gratia 은혜를 받을 만한 때이며 지금은 Sola fide 믿음으로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린 구원의 날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에게 은혜가 임하는 때이며,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은혜의 시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그냥 좋은 말씀, 윤리적인 가르침만을 배우는 장소가 아닙니다. 선포된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 받아야 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은혜의 시대에, 천국의 열쇠를 받아 천국의 열쇠를 우리 시대에 선포해야 하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그토록 목숨을 걸고 외친 것은 구원의 복음이었습니다. 면죄부를 사야만 연옥에 있는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에 이른다는 이 단순한 복음이 그들이 목숨 걸고 외친 새로운 시대의 은혜의 구원의 복음입니다.
민 21:8-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갖 종류의 불평 불만을 쏟아 낼때, 하나님께서 불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셨습니다. 그 불뱀에 괴로운 이스라엘 백성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하셨고, 그것을 쳐다 보는 자는 모두 살려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이 장대위의 놋뱀을 바라본다고 어떻게 살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을 믿음으로 쳐다 본 사람들은 다 살아납니다.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요 3:14-15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누구든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를 Sola fide, Sola Gratia, Solus Christus 구원얻게 하시는 바로 그 놋뱀이 예수님이 맞습니까?
위대한 신앙인도 의문이 들고, 시험에 들고, 실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 제자 베드로를 보십시오. 마 26:33절: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진심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고백이 하루를 못 갑니다. 35절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바로 그날 밤, 베드로는 세 번 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면서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우리는 연약합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실족도 하고 사람들 보기에 용서받지 못할 만한 죄도 짓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구원이 막 흔들립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6. 폭행당하는 하나님의 나라 현실
이 땅에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는가? 정말 우리 예수님은 메시야, 그리스도, 우리의 참된 구원자가 맞는지 의심이 듭니다. 12절 어려운 말씀이지만 분명히 깨우치를 원합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저는 과거에 이 말씀을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하는 자가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한 적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침노해서라도, 빼앗아서라도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는 천국, 하나님의 나라가 별 볼일이 없는 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헤롯 안티파스 같은 악한 권세자들이 의로운 세례 요한을 감옥에 가두고 죽이는 침노: 폭행당하는 현실처럼 보입니다. 세상의 강한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것 처럼 보이는 보이는 불합리한 현실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 번역본 가운데 공동번역이 가장 의미를 잘 나타냅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해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믿음의 사람이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은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서 힘을 전혀 쓰지 못하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6-19절 이 시대를 어떻게 비유할까요?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따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아무리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도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피리를 부는 잔치가 일어나도 사람들은 춤추지 않고, 슬피 우는 곡하는 장례식에도 사람들은 울지 않은 완왁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금욕을 한다고 욕을 먹고, 예수님을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었다고 먹기를 탐하는 먹보이며, 포도주를 좋아하는 술주정뱅이로 이해하는 안타까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의심의 안개같은 구름이 걷히고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의 눈으로 보면 성경을 보는 우리의 눈이 열리면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의 구원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오직 은혜의 눈이 활짝 열리면 지금도 하나님 나라의 구원은 오직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활짝 열려있습니다. 오직 믿음의 눈으로 우리의 참된 메시야,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활짝 열려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구원은 옛 언약에 속한 것이 아니라 새 언약,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그리고 마지막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삶은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개신교 종교개혁의 진정한 Protestant 후예들이 되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오늘의 기도
다 같이 새 찬송가 411장 (통일 473장) 아 내 맘 속에 함께 찬송합니다.
이 시간 다 같이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는 폭행을 당하는 현실 가운데 있지만, 이 시간 우리의 믿음의 눈이 활짝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종교개혁의 5대 원리가 우리의 믿음의 원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행을 한순간이라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은혜: 우리가 구원의 자리에 나아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오직 은혜이기에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은 오직 은혜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하시는 구원의 놋뱀이십니다.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을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습니다. 오직 그분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요 14:6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구원의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입니다. 우리 사람에게 영광 돌리지 맙시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진정한 종교개혁의 후예들이 되게 하옵소서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위대한 종교개혁의 후예들인 우리 개신교회가 개독교라고 불리우는 악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나라 복음의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악한 시대이며, 아무리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슬퍼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가 폭행을 당하는 현실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의 말씀을 받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의 행위와 의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전적인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이 구원의 은혜와 확신 가운데 굳건하게 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천국의 열쇠, 하나님 나라의 열쇠를 사용하는 종교개혁의 진정한 후예들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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