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고후 1장 23-2장 11절 사도 바울의 교회 사랑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10-03 11:08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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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린도후서를 시작하면서

9월 25일로 매일성경 말씀 묵상은 창세기를 마무리하고, 신약 성경 고린도후서를 묵상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고린도전서에 이어서 고린도후서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개척하여 세운 교회였지만, 문제가 정말로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라 불리우는 교회이지만, 교회에서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문제가 다 일어난 교회입니다. 세상이 아닌 교회 내의 분쟁과 파벌, 음행의 문제, 형제 간의 송사의 문제, 결혼과 독신의 문제, 우상의 제물 문제, 성찬의 문제, 은사의 문제, 부활의 문제로 교회가 조용할 날이 없는 문제 많은 교회였습니다. 고린도교회의 그 많은 문제들보다 사도 바울을 힘들게 한 것은 온갖 종류의 말을 가지고 사도 바울을 비난하고 공격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역을 하면서 고린도교회를 통해서 많이 괴로웠고 많이 근심했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토록 문제많은 고린도교회였지만,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많은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이며, 문제많은 고린도교회의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거룩한 성도의 교회이기에 사도 바울은 어느 교회보다 고린도교회에 가장 많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모두 네 차례의 편지를 썼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9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라는 말씀을 보면, 고린도전서를 보내기전에 첫번째 편지를 보냈습니다. 두번째 편지는 바울의 제자 디모데를 통해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번째 편지가 고린도전서이고, 바울의 또 다른 제자 디도를 통해서 보낸 네번째 편지가 고린도후서입니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사이에는 소위 눈물의 편지로 알려진 세번째 편지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제자 디모데를 통해서 보냈지만,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고린도 교회의 젊은 사역자 디모데는 스승 사도 바울처럼 고린도교회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바울은 그 소식을 듣고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고린도를 방문했습니다. 편지를 보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해결이 잘 안 되기에 이번에는 직접 고린도를 방문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비통한 마음으로 에베소로 떠나갔습니다.

에베소에 도착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생각하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비통한 마음으로 눈물의 편지를 보냅니다. 3번째 눈물의 편지를 보낸 후에 제자 디도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알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가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의 모든 내용을 따랐으며,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징계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기뻐하면서 네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를 보냅니다. 고린도후서를 보면, 고린도 교회를 향한 목회자 사도 바울의 눈물과 안타까움이 담겨있고, 또한 넘치는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과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가 잘 나타나있습니다. 사도와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를 정의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사랑입니다. 2장 4절 말씀입니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기에 보낸 세번째 보낸 눈물의 편지에 이어서 고린도후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고린도교회에 보내신 사도 바울의 교회를 향한 사랑을 배우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교회 사랑은 어떠한 사랑입니까?

2. 첫째, 사도 바울의 고린도교회의 사랑은 교회를 돕는 모습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사랑하기에 그들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 돕는 자임을 밝힙니다. 1장 23-24절입니다.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사도 바울이 두번째 고린도를 방문하고, 에베소로 돌아와서 고린도 교회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세번째 그들을 방문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방문을 연기합니다. 연기하는 목적을 밝힙니다.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그리고 너희의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돕는 자가 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관하는 것은 마음대로 지배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세운 고린도 교회였지만,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좌지우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주인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 교회의 설립자 바울이지만 그래서 그에게 큰 권한이 있지만, 바울은 자신이 교회를 마음대로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은 교회를 돕는 자라고 합니다.

바울의 교회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사랑은 내 마음대로 조정하는 관계가 아니라 돕는 관계입니다. 사람이 영향력도 있고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있고, 그럴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면 너무나 쉽게 자기 주관적인 뜻대로 마음대로 주관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뜻대로 주관하려 하는 것이 교회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주관하는 것이 사랑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의 설립자이지만, 사도 바울은 자신의 역할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들을 돕는 자라고 밝힙니다. 사랑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돕는 것입니다.

갈릴리 장로교회를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우리 교회를 주관하려하지 않습니다. 저의 역할과 책임은 철저하게 여러분을 돕는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모든 인간 관계 속에서, 특별히 교회내에서 사역을 할때 우리의 마음대로 주관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기꺼이 돕는 자세를 갖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사랑의 자세입니다.

3. 둘째,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사랑은 근심과 눈물로 표현됩니다.

고린도 교회를 생각하면 사도 바울의 마음에 큰 눌림과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다. 눌림과 걱정에 바울은 눈물로 세번째 편지인 눈물의 편지를 씁니다. 근심하지만 눌리고 걱정하지만 그래서 눈물의 편지를 쓰지만 동기는 사랑입니다.

3-4절은 사도 바울의 고린도교회를 향한 세번째 눈물의 편지의 상황입니다.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썻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 관심도 없고, 그들이 어떻게 되던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문제 많은 고린도교회이고, 사도 바울에게 큰 상처를 준 고린도 교회 성도들입니다. 너무 상처를 받아 이제는 그냥 아무런 상관도 하고 싶지도 않을 법 한데, 사도 바울은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마음에는 큰 눌림이 있고 걱정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눈물의 편지를 쓰고 그들에게 보냅니다.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 교회에 큰 근심 거리를 주고 있는 사람들,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그들을 염려하고 눈물로 권면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목회자로 사역하는 저에게도 참 괴로운 순간이 있습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공동체에서 예배드리지 않은 분들을 볼 때 괴롭고 눈물 납니다.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자리에 열심을 내지 않는 분들을 볼 때 마음에 기도가 더 간절해집니다. 반면에, 고난의 시간을 겪고 있는데 기도하려고 하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하나님 말씀 의지하려는 믿음의 성도님들을 보면 그렇게 힘이 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걱정거리이고 근심거리이며, 마음에 큰 고통을 주는 분이 있는지요? 그래도 포기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더 관심을 갖고 눈물로 사랑으로 대하고 권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4.셋째로 사도 바울의 교회 사랑은 사랑하기에 징계하고 용서하고 위로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너무 사랑합니다. 사랑하기에 문제를 일으키고 근심케 한 자들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 처리하지만 벌이 징계의 목적이 아닙니다. 용서하고 위로하고 사랑해서 제대로 된 성도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6-7절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교회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랑은 그냥 두고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고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징계를 받고 벌을 받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징계하고 벌을 받게 하지만 징계하고 벌 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징계하고 벌 받게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위로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을 근심하게 한 문제의 성도들 바울은 그들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벌을 주지만, 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이키면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권면합니다. 징계가 목적이 아니라 징계해서 고치면 마땅히 용서하고 위로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사랑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관계가 어려워지만 그냥 않보면 그만이고, 그냥 교회를 떠나면 그만이고, 한 교회를 섬기지만 관계가 어려우면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랑, 그 사랑은 주관하려고 하지 않고 도우려고 합니다. 그 사랑은 사랑 때문에 근심하고 눈물 흘립니다. 그 사랑은 징계하고 벌 주는데서 끝나지 아니하고 용서하고 위로하는 자리에까지 이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더 깊어가길 원하며, 동시에, 우리 교회와 교회의 지체들을 향한 사랑도 함께 더 깊이 성장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5.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믿음에 사랑을 더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그리고 교회 사랑하는 마음이 더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사랑하기에 주관하지 않고 돕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사랑하기에 근심하고 눈물 흘리게 해 달라고, 사랑하기에 용서하고 위로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오늘 이시간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고통과 근심과 눈물과 사랑을 보면서, 우리 교회에게 주신 목회자들도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목회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담임목사로 사역하는 저를 위해서도 오늘은 기도 부탁을 드립니다. 부족한 사역자이지만, 힘 주시고 은혜 주셔서 하나님게서 맡겨주신 사역 잘 감당케 해 달라고, 무엇보다 사랑으로 목회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을 부어주셔셔 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믿음의 공동체에 우리를 통해서 흘러 넘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랑이 우리의 믿음의 공동체에 가득하게 하옵소서. 사랑하기에 서로 주관하려 하지 말고 서로 기꺼이 도울 수 있게 하옵소서. 사랑하기에 서로를 향해서 무관심하지 않게 하시며, 염려하고 근심하고 기꺼이 눈물 흘리게 하옵소서. 사랑하기에 잘못된 것은 바로 잡으며 회개하고 돌이킨 지체들을 향해서는 기꺼이 용서하고 위로할 수 있게 하옵소서.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넘치는 사랑이 우리 교회의 돕는자로 사역하는 제 마음에도 함께 하시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 넘쳐서 맡겨진 사역, 그냥 일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사랑으로 눈물로 감당케 하옵소서.

이 시간 특별히 우리 교회의 환우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몸과 마음이 아파 함께 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수 없는 우리 환우들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충만히 역사하시며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회복되게 하옵소서. 다시 건강회복되어 주님 사명 감당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예수님 닮은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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