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0장 17-28절 제자도 (6) 제자의 섬김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9-2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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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그 때에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 명마의 훈련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말은 아라비아에서 훈련된 말입니다. 옛날부터 아라비아에서 명품말을 훈련하는 사람들은 이들은 각 지방에서 훌륭한 말들을 골라 철저하게 훈련을 시킵니다. 어렵고 고된 훈련을 마친후 말들을 사막으로 데리고 가서 물이 없는 곳에 울타리를 치고 말들을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는 3일간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지 않습니다. 4일째되는 날 우리를 열어주면 말들은 죽을 힘을 다해 물가로 뛰어나갑니다. 그때 바로 물 가까이 가기 전에 뚜하고 나팔을 붑니다. 나팔소리는 바로 거기서 멈추라는 신호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말들은 그 소리를 듣기를 거절하고 물가로 달려갑니다. 그중에서 5-6마리 말은 멈추다가 다시 달립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1-2마리 말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섭니다. 목말라 죽을지라도 주인이 가르쳐 준 소리의 의미를 기억하고 발걸음을 떼지 않는 말이 진짜 명마입니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듣고, 제 자신을 돌아보고 깊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명마같은 주님의 제자입니까? 아니면 허둥지둥 살기 위해서 달려가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할 줄 모르는 그저 그런 말 같은 주님의 제자입니까?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 멈추어 서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2. 명마같은 제자 팀하스 하형록 회장 이야기
얼마 전에 명마같은 우리 예수님의 제자, 팀하스 건축설계회사의 하형록 회장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형록 회장님은 건축설계회사 팀하스를 경영하는 회장님이며, 침례교 목사님이십니다. 그 기업의 사훈이 감동적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We exist to help those in need). 기업의 사훈이 기업인지 교회인지 모르겠지만, 팀하스는 미국 청년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100대 회사 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하형록 회장님이 미국 사회에서 얼마나 존경을 받는지 미국이민자 최고의 영예인 Ellis Island Medal of Honor를 수상하였습니다.
2015년에 잠언 31장 말씀을 모델로 회사를 경영하여 훌륭한 기업을 이룬 <성경대로 비즈니스하기 P31>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많은 기독교인 사업가들에게 도전을 주었습니다. 잠언 31장 중에서 20절 말씀이 기업의 모토입니다.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She opens her arms to the poor, and extends her hands to the needy)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고, 궁핍한 자에게 손을 내미는 기업을 하나님께서는 망하지 않게 하시며, 복에 복을 더하셨습니다. 팀하스 기업을 경영하면서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지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 페이버>라는 책도 출간하여 기업에도 자신의 삶에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하형록 회장이 남다른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산 한센병 환자촌에서 목회자의 자녀로 자란 그는 부모님을 따라 필라델피아로 이민을 왔고, 펜실베니아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최고의 주차빌딩 건축설계 회사인 워커사에 입사해서 29살의 나이에 중역에 오를 정도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내와 두 딸을 둔 그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인생이었으나, 1991년 10월, 고속도로 한 가운데서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심실빈맥! 심장이 불시에 빠른 속도로 계속 뛰어 죽을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 찾아왔습니다. 건강에 대해서는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자신하던 그가,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에 생사를 오가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2년간 생명을 위협하는 절박한 위기의 순간들을 필사적으로 넘기면서, 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다.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완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났다. 죽을 위기 가운데, 두 번이나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아 기적적으로 살아갑니다. 언제 하나님이 부르실 지는 모르지만, 그의 인생의 모토는 “우리는 이웃을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얼마나 멋진 우리 주님의 명마같은 제자의 삶입니까?
3.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오늘 함께 읽은 마태복음 21장 말씀을 보면, 명마같은 주님의 제자가 아닌, 부족하고 연약한 제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열 명의 제자와 두 명의 제자가 논쟁을 벌입니다. 왜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이토록 분을 내면서 논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배경은 마태복음 20:17-19절입니다.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해발 -200미터의 갈릴리의 가버나움에서 해발 780미터의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은 쉽고 편한 길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셔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고, 조롱당하시고, 채찍질 당하시다가, 가장 치욕스러운 십자가 형벌로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아주 무거운 발걸음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열두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서 미리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마태복음 20장에서 처음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세번째 똑같은 가르치심입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치심에서 이렇게 세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복음서에 없습니다. 그만큼 이 가르침이 예수님의 사역의 가장 핵심이며, 사랑하는 제자들이 마음 깊이 새겨야 하는 사랑하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처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제자들의 훈련과 사역의 현장인 갈릴리에서도 동일한 가르치심을 주셨습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마태복음 17장 22-23절 말씀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며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할 자신의 모습을 3번이나 반복적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오해합니다. 첫번째 오해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들은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 16:22).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막 8:33). 두번째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마 9:32절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운 모습에서 더 나아가 막 9:34절에서 제자들은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그리고 이제 동일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세번째 강조하여 말씀하시면 이제는 정확하게 알아들을 만도한데, 오늘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의 세번째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은 마태복음 20장 24절입니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열 명의 제자가 두 명의 제자에게 분히 여기거늘이라고 말씀합니다. 병행본문 마가복음 10장 4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이 마음의 무거운 길인데, 세베대의 아들 제자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 대해서 나머지 열명의 제자들이 화를 내고, 분을 내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지금 분을 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4.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구한 것
오늘 세번째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0-21절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가복음 10장 35-37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마태복음에서는 세배대의 아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구한 것으로 되어 있고, 마가복음에서는 어머니가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이 구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했는지, 야고보와 요한이 했는지 누가 했는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마태복음 19장 28절 제자들에게 우리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세상이 새롭게 될 날이 옵니다. 그때 우리 선생님이신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을 날이 반드시 다가옵니다. 그때 너희, 예수님의 열두 제자도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열두지파, 온 세상을 심판할 날이 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열두명의 제자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7장 55-56절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저 멀리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 가운데 막달리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와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실 그 영광의 자리에, 특별히 그 옆자리에 누가 앉으면 가장 좋을까요?
세배대의 아내, 세배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말씀드리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40절과 요한복음 19장 25절을 보면 세배대의 아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나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는데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막 15:40-41)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요 19: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글로바의 아내이며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서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his mother’s sister 살로메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sister 언니, 자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는 이모입니다.
이모와 이모의 아들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절하며 간청합니다. 20-21절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에게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질문을 하신다면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 살로메와 함께,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의 삶은 우리가 이해하는 참된 왕이신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왕이시며, 어떤 주님이시며, 어떤 그리스도이십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지만, 베드로처럼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노라고” 고백하지만,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떤 왕이며, 어떤 주님이며, 어떤 그리스도인지 계속해서 오해합니다. 예수님을 오해하니 그들이 구하는 것은 베드로처럼 에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며, 길에서 누가 큰지 논쟁하며,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영광 중에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문제는 무엇이며,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5. 첫번째, 예수님의 제자들의 문제는 섬기시는 왕 예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마태, 마가복음 전체의 핵심 구절인 마태복음 20장 29절 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장 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오해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메시야, 그리스도인 예수님은 세상의 왕처럼 권세와 권력으로 사람들을 통치하고 군림하는 왕으로 생각합니다. 권세와 권력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왕이라면 그 왕의 제자의 삶은 함께 권세와 권력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왕권은 세상의 왕권과는 전혀 그 성격이 다릅니다.
25절과 29절은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세상의 왕은 이방인의 집권자들인 왕의 모습에서 잘 드러납니다. 세상의 왕은 그들 마음대로 주관하며 권세를 부리는 모습에서 잘 나타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의 모든 왕의 모습은 마음대로 권세를 부리는 모습입니다. 힘과 권력으로 독재를 행하며 사람들을 우습게 알고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거짓과 술수로 사람을 이용하고 죽여서라고 권력을 유지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와 갈릴리의 헤롯대왕의 아들들인 분분왕도 그렇고, 온 세상을 다스린 로마의 황제들도 마찬가지이고, 마태복음이 기록될 당시의 로마의 황제들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을 철저히 박해를 합니다. 세상 왕의 모습입니다.
이런 세상 왕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원래의 왕의 모습이 아닙니다. 신명기 17장 14-20절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왕의 모습입니다.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라.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왕의 모습은 병마, 아내, 은과 금이 가득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옆에 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며, 그의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이 왕의 참된 모습은 권세 부리고 섬김 받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낮아져 섬기는 것이며, 사람을 이용하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고 오히려 자기를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된 왕으로 오셨습니다.
6. 참된 왕이신 예수의 제자의 삶의 핵심인 섬김
섬기기 위해서 대속물로 자신을 드리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정말 믿고 따르는 제자라면 마땅히 왕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 26-27절입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의 제자의 삶은 지배하고 통제하는 삶이 아닌 섬기시고 대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왕이신 예수님 처럼, 섬기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 처럼 헛된 영광을 구하며 권세의 자리를 구하는 삶은 예수님의 명마같은 제자의 삶이 아닙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예수님은 세상이 추구하는 크고 으뜸이 되고 높은 자리를 추구하는 것은 제자의 길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종이 되어 섬기는 자가 크고 으뜸이 되는 자이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땅에서 추구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영광의 자리로 알았습니다. 나머지 열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야보고와 요한이 그 영광의 자리를 먼저 차지하려는 모습에 화가 치밉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오해하고 영광의 자리를 구하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구하고 있는 것을 구하는지요? 세상이 인정하는 좋은 학교, 좋은 직업, 높은 자리를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추구하며 American Dream을 쫓는 삶은 분명 예수님의 제자의 길이 아닙니다. 더 높은 자리, 더 힘있는 자리, 그래서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 예수님을 참된 왕으로 믿고 따르는 제자의 기도가 아닙니다. 성공과 행복과 지배는 제자의 단어가 아닙니다. 포기, 희생, 섬김, 헌신, 고난과 핍박이 예수님의 제자의 단어이며, 이 땅에서 기꺼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가슴에 품어야할 단어이며 기도제목입니다.
7. 영광을 구하던 야고보와 요한의 마지막 섬김
예수님께 영광을 구하기 위하여 어머니를 동원하던 그 두 명의 제자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야고보는 열 두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AD 44sus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하여 참수형을 당합니다. 사도행전 12장 1-2절 야고보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승천 이후에 제자 야고보는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예루살렘에서 12명의 제자 가운데 첫번째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야고보의 동생 사도 요한은 반대로 AD 100년 94세의 나이로 가장 오래 이 땅에 남아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돌보며,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요한계시록을 남기며, 사도 바울이 개척한 에베소 교회를 돌보면 끝까지 주님의 신실한 명마 제자가 되어 교회를 섬겼습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처럼 일찍 부르심을 받던, 요한처럼 오래동안 살다가 부르심을 받건,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얼마나 섬기는 삶을 살았는가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섬기는 일에 가장 열심을 내시는 우리 주님의 명마, 제자가 되기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이 시간 말씀을 마치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새찬송가 211장 (통일 346장)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함께 찬송합니다.
이 시간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바로 이해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참된 왕이신 예수님의 길을 걷고 있는 제자들인지요?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오해하지 않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영적인 지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이용해서 한 자리 하려는 욕심과 세상적인 성공과 복에 대한 갈망, 이 시간에 겸손하게 내려놓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길, 섬김과 고난의 길,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용기있게 지혜있게 걸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이며, 왕이며,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믿노라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우리 안의 세상의 욕망을 추구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우리의 우상인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시간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걸음이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는 세상 나라 세상 사람의 길이 아니라 우리 주님 예수님이 걸어가신 하나님 나라의 섬김의 길이 우리의 길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우리 중에는 기꺼이 낮아져서 섬기며 희생하며 포기하며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이 시간 세상의 영광을 뒤로하고 오직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희생하며 헌신의 자리로 나아간 이 땅의 모든 선교사님의 선교 사역에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의 넘치는 위로와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세상에서 포기하고 영혼을 위해서 나아가 그 발걸음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게 하시며 오히려 고난을 받고 힘든 선교 사역의 순간에 우리 주님 걸어가신 섬김과 고난의 좁은 길을 걷고 있음을 감사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 지역의 크리스천 비전 아카데미의 이덕재 선교사님과 사역자들 오늘도 은혜로 능력으로 지키시며 맡겨진 사역 잘 감당케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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