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7장 14-23절 제자도 (4) 제자의 무능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9-1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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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와 설교 음성파일은 맨 아래 왼쪽에 파일이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유투브 온라인 설교 영상이 있습니다.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로부터 나으니라 이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마 17:14-23)
1. 교회가 미안한 우리 시대
“교회가 진심으로 미안합니다.”라는 플랜카드가 한국교회 곳곳에 붙어있습니다.“미안합니다. 그저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그곳에 머무시고 가르쳐주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잊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할 수 있는 말은 진심으로 미안합니다.”한국교회의 일부 정치적인 목사들과 교회의 비 상식적인 모습에 마치 한국교회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린 주범으로 몰려 교회가 세상에서 온갖 욕을 다 먹고 있는 시대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어려운 때에, 특별히 교회가 어려운 시대에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선교 역사를 보면,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제시대로 가장 어둡고 암울했던 한국과 한국교회에서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1907년 일제 시대의 한국의 기독교인은 2만 7천명, 전국의 교회는 550여교회가 설립되었으나 당회가 있는 조직된 교회는 32개밖에 없는 아주 미약한 교회였습니다. 일제 시대에 우리 민족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교회는 아주 미약했지만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이 한국교회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평양 대부흥운동을 직접 목격한 매큔 선교사님은 선교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평양에 임한 부흥의 역사는 지금까지 그 어떤 부흥의 역사보다 더 강력하고 놀라운 현상이었습니다. 장로교회인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이 부흥의 불길이 모든 교파를 초월하여 평양 전역으로, 그리고 거기서 다시 한반도 저녁으로 마치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그 결과 1907년 1월과 6월 사이에 한반도 전역에서는 부흥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모든 지역에서 부흥을 경험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이후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평양의 장대현 교회의 부흥의 역사를 목격한 노블 선교사님도 비슷하게 선교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한국교회에 내 자신이 지금까지 목격하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던 가장 놀라운 성령의 부어주심의 현시가 있었는데, 아마도 사도시대 이후 이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현시는 없었을 것입니다. 매 집회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교회 전체와 때로는 밖에 임했습니다. 남녀가 회개의 역사로 고꾸라졌습니다. 전 도시는 마치 사람들이 죽은 자를 위하여 통곡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민족의 가장 암울한 시기에, 작고 미약한 한국교회에 불일듯 일어난 평양 대부흥 운동을 보면, 어두운 시대에 능력있는 제자의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저 세상에 미안한 교회의 모습에서 어둡고 소망없는 세상을 환하고 밝게 비추었던 능력있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세상에 많이 미안한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능력있는 제자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능력있는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능력있는 제자의 모습이 아니라, 참으로 능력없는 제자의 무능한 모습이 나옵니다. 한때는 권능있는 제자로 예수님과 사역을 했던 제자들의 무능력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2. 예수님의 사역의 촛점인 제자훈련
마태복음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는 말씀은 16장 16절의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중요한 신앙고백이 마태복음 전체의 전환점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비로소 베드로의 반석같은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말씀하시며, 교회에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천국 열쇠를 맡겨주셨습니다. 또한 이때로부터 본격적으로 앞으로 진행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고난과 부활을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전에 예수님의 전반부 사역의 촛점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메시야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유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 그리스도로 구약의 세 가지 직분인 선지자, 제사장, 왕의 모습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러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이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이후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은 더욱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다면, 이 땅에서 천국열쇠를 소유한 유일한 교회의 미래는 이 땅에 남겨진 교회의 제자들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를 위한 구원 사역을 완성하시며 동시에 앞으로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갈 제자들이 중요하기에 제자훈련에 집중하십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마태복음의 관점은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제자도가 핵심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제자의 삶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6장 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가면서, 이 땅에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이 제자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받을 만한 능력있는 제자로 잘 준비되어있습니까?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요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책망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는 제자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와 제자들만 보입니다. 마가복음 9장 14절에는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말씀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제자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는 서기관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는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 능력없는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서기관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 많은 믿음 없는 무리들입니다.
그러나 수 많은 무리 가운데, 제자들은 믿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서기관들은 몰라도 예수님과 함께 있으며 가르침을 받고, 함께 전파하며, 함께 치유 사역에 동참했던 제자들은 더욱 큰 믿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16절 말씀이 지금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제자들의 모습은 여전히 무능력하고 답답한 모습입니다. 제자들의 무능력하고 답답한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무능력한 제자들의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무능력한 모습에서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무능력한 제자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3. 첫째, 제자들의 무능력한 모습은 분명 믿음의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0:1절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이미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을 부여받은 제자인데, 지금 제자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무기력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19절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절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제자들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문제는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다른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의 삶과 사역의 문제가 믿음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서의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삶의 문제도 믿음의 문제가 아닙니까? 우리도 제자들처럼,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가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비출 수 있는 빛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우리의 믿음의 삶에 능력이 없습니까? 믿음이 없기에,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믿음이 없기에 늘 미래가 불안하고, 믿음이 없기에 우리의 삶과 사역의 현장에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예수님께 확신을 두고 믿음으로 살아 간다면, 우리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이 문제라면 해결책은 믿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마가복음 9장 23-2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간질 걸린 아이의 아버지가 간절히 간구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믿음을 구하는 기도는 아버지에게, 제자들에게 우리에게도 필요한 우리의 간절한 기도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간절히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4. 둘째, 제자들의 무능력한 모습의 원인이 또 있습니다. 믿음에 이어서 기도도 문제입니다.
제자들이 왜 그토록 무능했는지, 본문 21절을 보면 (없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몇 몇 사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다룬 마가복음 9:28-29절을 보면,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제자들의 동일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두 가지 모두입니다. 하나는 믿음의 문제이며, 또 다른 하나는 기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적은 믿음과 기도는 분명히 연관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능력있는 삶은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제자들이 귀신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였는데, 지금 안되는 이유는 지금 제자들의 기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믿음과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로 가져오는 통로입니다. 기도가 막히면 이 땅에서 능력있는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코로나 시대에 우리의 삶에 능력을 잃어버리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기도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늘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능력있는 믿음의 삶의 비밀은 기도입니다.
5. 세째, 제자들의 무능력한 모습은 그들의 믿음, 기도, 또한 그들이 영적인 이해력에 문제가 있습니다.
22-23절 말씀입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는 갈릴리에서의 거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곧 예수님은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갈릴리에서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이제 예수님은 이 땅에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죽게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실 고난에 대한 세번째 예언의 말씀입니다. 첫번째 예언의 말씀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나서였습니다. 16장 21절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갈릴리에서의 마지막 순간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베드로처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오히려 예수님이 걸어가셔야 하는 그 길을 막고 있는 것 처럼 매우 근심하고 있습니다. 근심하는 제자들의 이유는 그들의 영적인 이해력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매우 근심하는 제자들의 이유는 그들의 앞으로의 다가오는 불확실한 미래의 삶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책망하신 우리 예수님의 책망의 소리를 지금 제자들은 들어야합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 16:23). 지금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에 대한 영적인 이해와 깨달음입니다.
6. 선교사 하디의 무능력과 평양 대부흥 운동
1907년 평양 대부흥이 일어났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1903년 선교사 토마스 하디 (한국 이름은 하리영) 목사님의 무능력한 선교 사역, 열매없는 선교 사역에 대한 회개가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하디 선교사님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칼레도니아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동료 교사였던 켈리와 결혼 후에 그가 열살 때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받은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존재로 살라”는 유언대로 살기 위해서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캐나다의 최고 명문 토론토대학 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토론토 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이미 1학년때 학교를 방문한 포어맨 목사님의 해외선교에 대한 강의를 듣고 본국에서 의사를 할 수 있지만 의사가 없어 죽어가는 해외 선교지로 나가는 것이 부모님의 유언처럼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존재로 살라”는 말씀을 의사로 또한 선교사로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의과대학 2학년에 해외 선교사 학생 자원운동 (Student Volunteer Movement)에 가입하여 선교의 꿈을 꾸고, 의과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기도하던 중 아시아에서 제일 늦게 문을 연 한국에 의사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학교 선교 게일 선교사님의 편지를 읽고 한국 선교에 지원합니다.
한국에서 최초의 병원 제중원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부산에서, 강원도에서, 원산에서 선교사로 열심히 사역을 했습니다. 열심히 사역했지만 선교 사역의 열매는 거의 없었습니다. 1904년 선교 보고서에서 하디는 자신의 심정을 고백합니다. “나는 3년동안 강원도에 교회가 처음 세워진 지경대 지역에서 어떤 다른 지역보다 애써 일하였으나, 그곳에서의 선교 사역의 실패는 나에게 말할 수 없는 타격을 안겨 주었고, 사역을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감을 가져다 주었다” 캐나다 최고 명문 토론토 의과대학 출신의 학력에, 열심에,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점점 더 영적인 능력의 결핍을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고,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되고 오직 나의 능력으로 되느니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그것이 사역 실패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열린 기도회 중에 하디 선교사는 “교만, 심령의 강팍함, 그리고 믿음의 부족”의 자신의 죄악을 눈물로 참회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성령이 내게 오셨을 때 그의 첫 요구는 나의 선교사 생활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던 선교사들 앞에 나의 실패와 그 실패의 원인을 시인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나, 내가 성령의 충만함을 깨달은 후 그 첫 주일 아침 우리 원산 감리교회 회중 앞에 서서 부끄럽고 당황한 얼굴로 나의 교만, 심령의 강퍅함, 그리고 믿음의 결핍과 또한 이것들이 가져다 준 많은 결과들을 고백하면서 그들은 처음으로 죄의 확산과 회개가 실제적인 경험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하디 선교사님의 선교사역의 실패의 고백과 회개가 수 많은 동료 선교사님들과 한국인들을 영적인 잠에서 깨웠습니다. 1903년 하디 선교사님으로 시작된 회개의 기도로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고, 1904년 개성부흥회, 서울부흥회, 인천부흥회, 평양부흥회로 이어지면서 한국에서 영적인 대각성운동이 일어났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까지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 역사를 보면 영적인 각성운동이 일어나는 패턴은 거의 비슷합니다. 믿음, 기도, 영적인 이해가 회복되면서 강력한 회개 기도가 개인에게 일어나고, 교회에 일어나고, 지역에 일어나면 영적인 대각성운동이 일어나 교회와 성도가 비로소 어두운 세상에 강력한 빛을 비추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도 믿음, 기도, 영적인 새로운 이해로 우리안에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7. 기도와 간구
새찬송가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함께 찬송합니다.
이 시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제자들의 무능력한 삶의 원인을 살펴보며 우리를 돌아보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지금 이 시간 기도의 자리에 나온 우리 모두는 예외없이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한번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입니다. 무능력한 모습으로 끝마치지 않고 능력있는 제자의 삶의 모습을 살아가길 위해서 기도합니다. 첫째는, 오늘 간질로 고생하여 넘어지는 아버지의 간구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둘째는, 우리의 연약한 기도 생활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영적인 이해력이 부족하니 자주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구하며, 근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진리를 깨닫는 지혜, 확신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3년이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의 참으로 무능력한 삶의 모습을 묵상하였습니다. 믿음이 부족하고, 기도가 부족하고, 영적인 이해력이 부족한 모습이 마치 이 시대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통해서 그 원인을 깨달았사오니, 우리에게 믿음의 능력의 회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산을 옮길 수 있는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기도와 금식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이해력과 깨달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로부터 나으니라 이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마 17:14-23)
1. 교회가 미안한 우리 시대
“교회가 진심으로 미안합니다.”라는 플랜카드가 한국교회 곳곳에 붙어있습니다.“미안합니다. 그저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그곳에 머무시고 가르쳐주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잊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할 수 있는 말은 진심으로 미안합니다.”한국교회의 일부 정치적인 목사들과 교회의 비 상식적인 모습에 마치 한국교회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린 주범으로 몰려 교회가 세상에서 온갖 욕을 다 먹고 있는 시대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어려운 때에, 특별히 교회가 어려운 시대에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선교 역사를 보면,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제시대로 가장 어둡고 암울했던 한국과 한국교회에서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1907년 일제 시대의 한국의 기독교인은 2만 7천명, 전국의 교회는 550여교회가 설립되었으나 당회가 있는 조직된 교회는 32개밖에 없는 아주 미약한 교회였습니다. 일제 시대에 우리 민족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교회는 아주 미약했지만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이 한국교회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평양 대부흥운동을 직접 목격한 매큔 선교사님은 선교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평양에 임한 부흥의 역사는 지금까지 그 어떤 부흥의 역사보다 더 강력하고 놀라운 현상이었습니다. 장로교회인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이 부흥의 불길이 모든 교파를 초월하여 평양 전역으로, 그리고 거기서 다시 한반도 저녁으로 마치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그 결과 1907년 1월과 6월 사이에 한반도 전역에서는 부흥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모든 지역에서 부흥을 경험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이후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평양의 장대현 교회의 부흥의 역사를 목격한 노블 선교사님도 비슷하게 선교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한국교회에 내 자신이 지금까지 목격하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던 가장 놀라운 성령의 부어주심의 현시가 있었는데, 아마도 사도시대 이후 이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현시는 없었을 것입니다. 매 집회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교회 전체와 때로는 밖에 임했습니다. 남녀가 회개의 역사로 고꾸라졌습니다. 전 도시는 마치 사람들이 죽은 자를 위하여 통곡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민족의 가장 암울한 시기에, 작고 미약한 한국교회에 불일듯 일어난 평양 대부흥 운동을 보면, 어두운 시대에 능력있는 제자의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저 세상에 미안한 교회의 모습에서 어둡고 소망없는 세상을 환하고 밝게 비추었던 능력있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세상에 많이 미안한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능력있는 제자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능력있는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능력있는 제자의 모습이 아니라, 참으로 능력없는 제자의 무능한 모습이 나옵니다. 한때는 권능있는 제자로 예수님과 사역을 했던 제자들의 무능력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2. 예수님의 사역의 촛점인 제자훈련
마태복음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는 말씀은 16장 16절의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중요한 신앙고백이 마태복음 전체의 전환점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비로소 베드로의 반석같은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말씀하시며, 교회에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천국 열쇠를 맡겨주셨습니다. 또한 이때로부터 본격적으로 앞으로 진행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고난과 부활을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전에 예수님의 전반부 사역의 촛점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메시야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유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 그리스도로 구약의 세 가지 직분인 선지자, 제사장, 왕의 모습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러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이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이후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은 더욱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다면, 이 땅에서 천국열쇠를 소유한 유일한 교회의 미래는 이 땅에 남겨진 교회의 제자들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를 위한 구원 사역을 완성하시며 동시에 앞으로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갈 제자들이 중요하기에 제자훈련에 집중하십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마태복음의 관점은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제자도가 핵심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제자의 삶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6장 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가면서, 이 땅에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이 제자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받을 만한 능력있는 제자로 잘 준비되어있습니까?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요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책망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는 제자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와 제자들만 보입니다. 마가복음 9장 14절에는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말씀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제자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는 서기관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는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 능력없는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서기관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 많은 믿음 없는 무리들입니다.
그러나 수 많은 무리 가운데, 제자들은 믿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서기관들은 몰라도 예수님과 함께 있으며 가르침을 받고, 함께 전파하며, 함께 치유 사역에 동참했던 제자들은 더욱 큰 믿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16절 말씀이 지금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제자들의 모습은 여전히 무능력하고 답답한 모습입니다. 제자들의 무능력하고 답답한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무능력한 제자들의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무능력한 모습에서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무능력한 제자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3. 첫째, 제자들의 무능력한 모습은 분명 믿음의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0:1절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이미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을 부여받은 제자인데, 지금 제자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무기력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19절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절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제자들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문제는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다른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의 삶과 사역의 문제가 믿음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서의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삶의 문제도 믿음의 문제가 아닙니까? 우리도 제자들처럼,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가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비출 수 있는 빛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우리의 믿음의 삶에 능력이 없습니까? 믿음이 없기에,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믿음이 없기에 늘 미래가 불안하고, 믿음이 없기에 우리의 삶과 사역의 현장에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예수님께 확신을 두고 믿음으로 살아 간다면, 우리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이 문제라면 해결책은 믿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마가복음 9장 23-2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간질 걸린 아이의 아버지가 간절히 간구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믿음을 구하는 기도는 아버지에게, 제자들에게 우리에게도 필요한 우리의 간절한 기도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간절히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4. 둘째, 제자들의 무능력한 모습의 원인이 또 있습니다. 믿음에 이어서 기도도 문제입니다.
제자들이 왜 그토록 무능했는지, 본문 21절을 보면 (없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몇 몇 사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다룬 마가복음 9:28-29절을 보면,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제자들의 동일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두 가지 모두입니다. 하나는 믿음의 문제이며, 또 다른 하나는 기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적은 믿음과 기도는 분명히 연관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능력있는 삶은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제자들이 귀신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였는데, 지금 안되는 이유는 지금 제자들의 기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믿음과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로 가져오는 통로입니다. 기도가 막히면 이 땅에서 능력있는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코로나 시대에 우리의 삶에 능력을 잃어버리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기도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늘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능력있는 믿음의 삶의 비밀은 기도입니다.
5. 세째, 제자들의 무능력한 모습은 그들의 믿음, 기도, 또한 그들이 영적인 이해력에 문제가 있습니다.
22-23절 말씀입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는 갈릴리에서의 거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곧 예수님은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갈릴리에서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이제 예수님은 이 땅에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죽게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실 고난에 대한 세번째 예언의 말씀입니다. 첫번째 예언의 말씀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나서였습니다. 16장 21절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갈릴리에서의 마지막 순간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베드로처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오히려 예수님이 걸어가셔야 하는 그 길을 막고 있는 것 처럼 매우 근심하고 있습니다. 근심하는 제자들의 이유는 그들의 영적인 이해력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매우 근심하는 제자들의 이유는 그들의 앞으로의 다가오는 불확실한 미래의 삶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책망하신 우리 예수님의 책망의 소리를 지금 제자들은 들어야합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 16:23). 지금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에 대한 영적인 이해와 깨달음입니다.
6. 선교사 하디의 무능력과 평양 대부흥 운동
1907년 평양 대부흥이 일어났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1903년 선교사 토마스 하디 (한국 이름은 하리영) 목사님의 무능력한 선교 사역, 열매없는 선교 사역에 대한 회개가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하디 선교사님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칼레도니아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동료 교사였던 켈리와 결혼 후에 그가 열살 때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받은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존재로 살라”는 유언대로 살기 위해서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캐나다의 최고 명문 토론토대학 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토론토 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이미 1학년때 학교를 방문한 포어맨 목사님의 해외선교에 대한 강의를 듣고 본국에서 의사를 할 수 있지만 의사가 없어 죽어가는 해외 선교지로 나가는 것이 부모님의 유언처럼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존재로 살라”는 말씀을 의사로 또한 선교사로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의과대학 2학년에 해외 선교사 학생 자원운동 (Student Volunteer Movement)에 가입하여 선교의 꿈을 꾸고, 의과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기도하던 중 아시아에서 제일 늦게 문을 연 한국에 의사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학교 선교 게일 선교사님의 편지를 읽고 한국 선교에 지원합니다.
한국에서 최초의 병원 제중원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부산에서, 강원도에서, 원산에서 선교사로 열심히 사역을 했습니다. 열심히 사역했지만 선교 사역의 열매는 거의 없었습니다. 1904년 선교 보고서에서 하디는 자신의 심정을 고백합니다. “나는 3년동안 강원도에 교회가 처음 세워진 지경대 지역에서 어떤 다른 지역보다 애써 일하였으나, 그곳에서의 선교 사역의 실패는 나에게 말할 수 없는 타격을 안겨 주었고, 사역을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감을 가져다 주었다” 캐나다 최고 명문 토론토 의과대학 출신의 학력에, 열심에,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점점 더 영적인 능력의 결핍을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고,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되고 오직 나의 능력으로 되느니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그것이 사역 실패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열린 기도회 중에 하디 선교사는 “교만, 심령의 강팍함, 그리고 믿음의 부족”의 자신의 죄악을 눈물로 참회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성령이 내게 오셨을 때 그의 첫 요구는 나의 선교사 생활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던 선교사들 앞에 나의 실패와 그 실패의 원인을 시인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나, 내가 성령의 충만함을 깨달은 후 그 첫 주일 아침 우리 원산 감리교회 회중 앞에 서서 부끄럽고 당황한 얼굴로 나의 교만, 심령의 강퍅함, 그리고 믿음의 결핍과 또한 이것들이 가져다 준 많은 결과들을 고백하면서 그들은 처음으로 죄의 확산과 회개가 실제적인 경험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하디 선교사님의 선교사역의 실패의 고백과 회개가 수 많은 동료 선교사님들과 한국인들을 영적인 잠에서 깨웠습니다. 1903년 하디 선교사님으로 시작된 회개의 기도로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고, 1904년 개성부흥회, 서울부흥회, 인천부흥회, 평양부흥회로 이어지면서 한국에서 영적인 대각성운동이 일어났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까지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 역사를 보면 영적인 각성운동이 일어나는 패턴은 거의 비슷합니다. 믿음, 기도, 영적인 이해가 회복되면서 강력한 회개 기도가 개인에게 일어나고, 교회에 일어나고, 지역에 일어나면 영적인 대각성운동이 일어나 교회와 성도가 비로소 어두운 세상에 강력한 빛을 비추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도 믿음, 기도, 영적인 새로운 이해로 우리안에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7. 기도와 간구
새찬송가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함께 찬송합니다.
이 시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제자들의 무능력한 삶의 원인을 살펴보며 우리를 돌아보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지금 이 시간 기도의 자리에 나온 우리 모두는 예외없이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한번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입니다. 무능력한 모습으로 끝마치지 않고 능력있는 제자의 삶의 모습을 살아가길 위해서 기도합니다. 첫째는, 오늘 간질로 고생하여 넘어지는 아버지의 간구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둘째는, 우리의 연약한 기도 생활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영적인 이해력이 부족하니 자주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구하며, 근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진리를 깨닫는 지혜, 확신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3년이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의 참으로 무능력한 삶의 모습을 묵상하였습니다. 믿음이 부족하고, 기도가 부족하고, 영적인 이해력이 부족한 모습이 마치 이 시대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통해서 그 원인을 깨달았사오니, 우리에게 믿음의 능력의 회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산을 옮길 수 있는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기도와 금식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이해력과 깨달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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