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창 37장 12-28절 억울한 요셉 (2020년 9월 5일 토요 새벽기도회)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9-0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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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신혜 박사의 와락 공동체 이야기

매일성경 9월은 창세기 37장 요셉의 이야기로 다시 시작해서 창세기를 마무리하고, 9월 26일부터는 신약의 고린도후서 본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와락 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와락…와락 안아 준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한 인터뷰를 보고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인터뷰였습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자살율은 세계 최고의 자살율입니다. 무려 하루에 4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2009년 쌍용 자동차의 직원들은 5000여명의 직원중에서 2600여명이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를 당합니다. 정리해고를 당한 직원 중에서 약 20여명이 6개월도 안되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정혜신 박사는 쌍용 자동차의 직원들을 상담하면서 와락 센터를 세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는 그들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내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기만 해도 치유는 되는데, 어느 누구도 내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지 않기에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억울한 사람에게 참 필요한 것은 그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고 와락 앉아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인터뷰를 보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이 땅의 교회가 이 땅의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그런 위로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우리 인생에 어떤 억울함이 있는지요? 오늘 이 시간 함께 읽은 이 말씀을 통해서 정말 억울한 요셉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억울한 요셉의 생애를 통해서 그 억울함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함께 묵상하고 함께 기도하는 이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억울한 요셉

오늘 말씀 창 37:12-14절을 봅니다.“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요셉의 형들이 멀리 세겜에서 아버지 야곱의 양떼를 치고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형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멀리 보냅니다. 요셉은 자신을 보내는 아버지 야곱의 말씀에 순종해서 헤브론에서 세겜까지의 먼 길을 떠납니다.

먼 세겜으로 간 요셉은 그러나 형들을 만나지 못합니다. 세겜에 있어야 할 형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헤브론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그런데, 아버지 야곱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잘 있는지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요셉은 세겜 들을 방황하면서 형들이 어디로 갔는지 열심히 찾아봅니다. 15절 마침 세겜 들에서 방황할 때 어떤 사람을 만납니다. 17절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50마일(77km), 세겜에서 도단까지는 약 20마일(30km)의 거리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찾기 위해서 몇 날 며칠을 힘들게 걸으며 방황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기에 참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마침내 도단에서 형들을 만나려는 요셉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멀리서 요셉이 오는 것을 본 형들의 반응은 정반대입니다. 18-20절입니다.“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그 먼 길을 찾아온 동생, 아버지의 아곱의 사랑을 독차지 한 시기 나고 얄미운 요셉을 죽이자는 것입니다. 동생 요셉을 죽이면 얄미운 동생의 그 듣기 싫은 꿈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만약 요셉이 그냥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만 갔다가 집으로 돌아갔다면 그는 이 죽음의 위기를 겪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참으로 성실하게 세겜에서 형들의 행방을 찾고 찾아서 먼 길인 도단까지 갔더니 정말 억울하게 죽을 위기 가운데 처하게 된 것입니다.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 얼마나 억울합니까?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일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철저하게 순종했더니 만사 형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적으로 보면 손해나는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마음으로 섬겼는데, 오히려 돌아오는 소문의 소리는 칭찬과 격려의 소리가 아니라 비난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지요?

3.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우리가 요셉의 생애를 말씀을 통해서 잘 살펴보면, 정말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내가 현재 당하는 이 억울한 일이 하나님의 큰 그림을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억울한 요셉의 생애를 계속 살펴봅시다. 그는 형들에게 죽을 뻔한 일을 당합니다. 그는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애굽에 팔려가서 열심히 보디발의 충성스런 일꾼이 되자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갑니다. 감옥에 가서도 열심히 일하며 술관원과 떡관원의 꿈을 해석해주지만 술관원은 2년이나 요셉을 잊어서 억울하게 2년이나 감옥에 갇힙니다.

요셉의 일생은 억울함이 계속되는 생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요셉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창세기 15:13-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실 때 이 커다란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억울한 요셉의 생애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의 일부분입니다.

우리는 지금은 억울해서 잘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이 있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을 섭리 (providence)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롬팔이팔 로마서 8:28절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니까? 구덩이에 갇힌 요셉은 지금은 왜 나에게 이런 억울한 일이 일어났는지 온전히 다 이해를 못합니다. 그러나, 요셉의 생애에 가장 빛나는 부분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요셉의 고백입니다. 창 45:7-8절 봅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으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의 큰 그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은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억울함이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에게 그런 억울한 일이 있게 한 사람과 환경만 바라보면 안됩니다. 그런 일 가운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리까지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정말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억울해도 과도하게 염려,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1).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입니다. 억울함이 가득한 요셉의 생애 근심하고 염려한다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4-5).

둘째, 우리는 억울해도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복수하지 않습니다. 억울한 일에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인간적인 마음에 복수하는 것 정말 하나님의 섭리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요셉이 억울해서 원망하고 불평만 했다면, 정말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형들에게 복수할 기회가 왔을 때 그는 멋있게 복수를 했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 하나님이 정말 싫어하시는 죄악입니다. 복수하고 원수갚는 것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롬 12:19-20).

셋째, 우리는 억울해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은 하나님이 없는 인생이나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의 상황이 아무리 억울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의 상황은 억울한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오히려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2) 믿음의 사람의 인생은 앞이 꽉 막힌 터널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뚤리는 터널입니다. 조금만 지나면 이 어려움의 터널 반드시 지나갑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렘 29:11).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면 절망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절망이 아닙니다. 억울한 죽음도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놀라운 하나님의 큰 계획 안의 섭리입니다. 십자가가 전부가 아닙니다.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억울해도, 오, 하나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계획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을 열어 달라고 기도합시다. 아무리 억울해도 근심하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염려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우리의 삶을 의탁합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복수하지 않습니다. 진짜 복수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4. 오늘의 기도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3).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며,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팔로 연약하고,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이며, 죄악 밖에 없는 우리를 붙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앞에 고백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온갖 종류의 억울함에 빠져, 염려하고 근심한 우리 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복수를 계획하려 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절망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적은 얼마나 많았는지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억울한 요셉을 붙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도 붙들어 주옵소서. 요셉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인정하게 하시고,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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