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9장 9-13절 제자도 (2) 제자로의 부르심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8-30 16:59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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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와 설교 음성파일은 맨 아래 왼쪽에 파일이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유투브 온라인 설교 영상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9:9-13).
1. 누가 예수님의 제자의 자격이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12명의 제자 가운데 어느 누구를 가장 좋아하십니까? 여러분이 만일 한 회사의 사장님이시라면 열두 명의 제자 가운데 누구를 여러분과 함께 일할 직원으로 뽑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열 두 명의 이력서를 경영 컨설팅 전문회사에 의뢰해 제자로서의 자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답니다. “나사렛 목공소 아들 예수님 귀하! 당신이 의뢰한 열두 명의 이력서를 검토하고 심리 테스트와 직업 적성검사 자료를 모아 컴퓨터에 넣어 결과를 뽑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귀하가 계획하는 새로운 단체의 간부 사원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학력이 낮고 단체 생활을 할 능력이 없으며 협조 정신이 약해 경영 관리자로서 부적합 합니다.
구체적으로 시몬 베드로는 정신적 안정성이 결여돼 있고 성격이 과격하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지나친 부분이 많습니다. 안드레는 한마디로 무능력합니다. 다른 사람을 지도할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성격이 불 같고, 회사의 이익을 제쳐놓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입니다. 도마는 모든 면에서 부정적이고 부정적인 질문은 많지만 추진력을 갖고 일 할 사람은 아닙니다. 마태는 과거의 직업인 세리처럼 공동체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민족의 배신자 친로마파 위인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두 사람은 사회 혁명을 노리는 진보 좌파 세력인 열심당의 과격분자들입니다. 불온사상에 감염돼 귀하가 이룰 온건한 기업에는 합당치 못합니다. 빌립과 바돌로매, 가나나인 시몬은 있으나 마나 한 사람들입니다. 귀하가 추천한 열두 명 중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가룟 유다 입니다. 그는 능력 있고 유대 출신의 사회에 대한 지식도 풍부합니다. 머리가 비상한 경영 감각이 있고 상류층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는 예의와 기품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경영상담소는 가룟 유다 한 명만 추천하고 나머지는 다시 찾을 것을 권고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가장 능력있고, 사회적인 지식이 있고, 경영 감각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사교적인 사람, 유대의 상류층 지도자들과도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인물이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처럼 보여도 단 한번도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팔았고 결국에는 자살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나머지 열 한 명의 제자들은, 베드로처럼 비록 학력도 낮고, 사회적인 지위도 낮고, 이기적이고, 리더쉽도 부족하지만, 예수님은 이 나머지 열 한 명의 제자를 끝까지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비록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죄를 범했지만,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의 마지막은 끝까지 충성스럽게 순교하며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제자, 신약 성경의 가장 많은 성경을 기록하며,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하여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던 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한 사도 바울은 어떠할까요? 선교사로 자원한 바울에게, 한 선교단체가 바울의 이력을 검토하고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친애하는 선교 지망생 바울에게, 최근 우리는 우리 선교 단체에서 사역하기를 원하시는 귀하의 지원서를 받았습니다. 귀하가 처한 상황을 검토한 결과, 이런 말씀을 드리기 망설여지지만, 귀하는 우리가 원하는 선교사로써의 자격 요건이 없슴을 안타깝게 알려드립니다. 첫째, 귀하가 도저히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없는 심한 안질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최소한 좌우 1.0 이상의 교정 시력을 요구합니다. 둘째, 우리는 세상일을 겸하고 있는 사역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귀하는 부업으로 천막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선교 사역에 전념할 선교사를 원합니다. 셋째, 귀하의 설교에 대해서 비난하는 소리가 많습니다. 설교가 너무 길어 한번은 밤이 깊도록 설교를 하는 바람에 한 청년이 졸다가 창문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제자로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비록 부족하지만, 비록 능력은 없지만, 자격도 없지만, 그러나 우리를 부르신 우리 주님을 참으로 사랑으로 마음으로 끝까지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스럽게 쓰임 받는 무리가 아닌 신실한 제자인,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2.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는 예수님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 두명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의 제자를 선택하시고 부르십니다. 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태라는 사람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이 말씀을 보면, 장소가 두 곳이 나옵니다.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 말씀에서 그 곳과 세관은 어디입니까? 그 곳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사역을 하시던 중심지 갈릴리 지역의 가버나움이라는 도시입니다. 갈릴리 지역은 남쪽의 유다 지역, 유다의 윗 지역인 사마리아, 그 사마리아 위쪽에 위치한 북쪽의 도시입니다. 갈릴리 호수가 위치한 북쪽의 갈릴리 지역의 교통의 중심지가 가버나움입니다. 갈릴리 지역은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인근의 어린이들을 죽인 잔인한 헤롯 대왕의 아들로 세례 요한을 살해한 헤롯 안디바가 다스리던 지역이었습니다. 갈릴리 지역의 핵심 도시 가버나움은 북쪽의 갈릴리의 중심도시로 로마의 세금 징수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세관에 한 세리가 앉아있습니다. 이름은 마태라는 사람입니다. 마태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마태의 다른 이름은 레위입니다. 마가복음 2장 14절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의 아버지 알패오는 아들의 이름을 레위라고 짓습니다. 레위의 아버지 알패오는 아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이 아들이 레위 지파에 속한 제사장처럼 영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연합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레위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레위는 이름과 전혀 걸맞지 않은 장소인 세관에 앉아 있습니다.
세관에 앉아 세금 걷는 일을 하고 있는 마태 레위는 아버지 알패오에게도 같은 동족인 유대 사람들에게도 모두 수치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세리는 창녀와 함께 죄인의 대명사였습니다. 마태복음 9장 10-11절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태복음 21장 32절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이며, 창녀와 동급으로 취급되던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제국과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은 세금을 직접 걷지 않고, 유대인 세리들을 고용하여 대신 세금을 걷게했습니다. 별도의 급료가 없었던 세리들은 규정 이상의 세금을 걷고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들은 동족이 아닌 헤롯과 로마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매국노이며 합법적인 강도였기에 동족 유대인들의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세리는 대개 탐욕스럽고, 부정직하며, 비도덕적인 죄인의 대명사였습니다. 특별히 갈릴리 가버나움 세관은 지역의 교통의 요지로 이곳을 통과하려면 최소 10%의 통행료를 붙이던 유명한 세관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족 중에서 누가 세리가 되면 그를 가정에서 추방해 버렸습니다. 세리는 재판정에서 증인이 될 수도 없었고, 회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도 없었고, 가장 수치스러운 일을 하는 죄인이었습니다. 이런 세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갈릴리의 어부라면 몰라도, 적어도 세상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가장 어렵고, 심지어 불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마태와 같은 세리였습니다. 그런 마태를 향하여 예수님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3.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
마태가 세리가 되고 나서 평생 사람들의 비난과 모욕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더러운 세리, 친로마파, 친헤롯가문, 민족의 배신자, 그러나, 이렇게 돈이 되는 직업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욕을 들어도 생계를 위해서는 이보다 더 돈 벌이가 잘 되는 직업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태의 마음속에는 진리에 대한 갈증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
온 갈릴리 지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던 예수님의 소문이 소문에 민감한 세리 마태에게도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이 갈릴리 가버나움 세관에 앉아있던 마태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시는 음성도 들었습니다. “나를 따르라” 마태의 인생 가운데 찾아온 결정적인 만남, 그의 인생의 전환점, turning Point입니다. “나를 따르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세관에 앉아있는 마태라고 한다면 “나를 따르라” 예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들은 사람입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던지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19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 4:20). 나를 따르라 부르심을 듣고 부르심에 반응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병행본문인 누가복음 5:28절은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에 마태는 그 돈 잘 버는 세관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세리라는 치욕적인 죄인의 굴레를 벗고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자 세리 마태는 결단합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입니다. 위대한 결단입니다. 세리 마태가 세리의 일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갈릴리 지역에 큰 뉴스였습니다. 유명한 세리 마태 예수님의 제자 마태가 되다. 마태의 소식을 들은 수 많은 동료 세리와 죄인들이 놀랐습니다. 이에 마태는 그동안 함께 한 동료 세리와 죄인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집에서 Matthew Party 파티를 엽니다. 그동안 함께 친하게 지내던 동료 세리와 죄인들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소개해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인 세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확실히 알리고 싶었습니다.
4. 부자 청년과 바리새인 같은 종교인
나를 따르라!! 예수님의 명령에 모든 사람이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9장을 보면 예수님께 나아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생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 청년은 십계명의 모든 선한 계명을 지키었다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도 나를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가니라” (마 19::21-22).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제자로의 부르심에 부자 청년을 근심합니다. 그리고 떠나갑니다.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부자 청년은 제자 마태와는 다르게 일생 일대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것 보다는 적당히 계명을 지키는 종교인으로 만족합니다. 그는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가장 종교적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권세있는 가르침과 귀신도 쫓아내시던 능력의 에수님이 왜 죄인의 대명사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는지, 더욱이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하시는 모습은 그들의 관점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세리와 같은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시는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17절 이들의 비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의 사람입니까?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우리 영혼의 의사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누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시는 부름을 듣습니까? 건강한 자는 의사에게 갈 필요가 없습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칭 의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세리 마태같은 죄인을 부르셔서 구원하시며 병든 자 같은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으십니다. 세리 마태도 부르셔셔 제자로 삼으신 예수님이시면 저와 여러분, 우리 같은 부족하고 죄 많은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시고 받아주시겠습니까? “나를 따르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지금 듣는다면 그 부르심에 순종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 부르심에 순종한 사람이 제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관심 많고 당시에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이들은 과거의 종교적인 관습적인 전통과 형식에 얽매인 사람들입니다. 세리와 같은 죄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이들은 종교적인 형식에서는 그럴듯 합니다.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도 하고, 십일조도 드리고, 율법도 지키는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목회 현장에서 만나는 가장 안타까운 무리는 누구보다 종교적인 열심은 있으나 제자는 아닌 바리새인 같은 분들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에게는 정말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분명한 표징이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첫째, 지난 주일에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결코 떠날 수 없는 제자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우리가 영혼의 의사이신 예수님이 진정으로 필요한 병든 자이며 죄인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둘째, 종교적인 형식과 관습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비록 건강하지 못한 병든 자이지만, 비록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지만,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기꺼이 따르는 순종의 사람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제자는 부족하지만 제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따른 제자 마태에게 누가 가장 크게 보였습니까? 한때 같이 일하던 소망없던 동료 세리들, 그들을 염려하며 그들을 위해서, 자신의 집을 오픈해서 매튜파티 전도초청 파티를 엽니다. 10절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 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불쌍한 영혼을 예수님께 인도하려는 열심으로 가득한 영혼 사랑의 전도자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5. "왜, 너 자신이 가지 않느냐?"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르심
대학시절에 이랜드라는 기업에서 언더우드라는 캐쥬얼 브랜드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연을 들어보니 그 옷만 입어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습니다. 1881년 6월 11일 뉴욕대학을 졸업하면서 대표 연설을 하기로 되어있던 졸업식 날, 어린 13세에 아버지와 함께 영국에서 이민온 이민 1.5세 호러스 언더우드는 아버지를 잃어버린 그 날 이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천명씩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는 영혼이 있다는 절박한 현실을 발견하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선교사로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뉴욕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의 뉴브런스윅 신학교에 다니며 인도 선교를 준비를 하던 언더우드는 신학생 선교대회에 참석하며 만주에서 선교하던 존 로스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1200만명의 조선 백성이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는데 이제 막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여 은둔의 나라를 벗어나려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갈 선교사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학교에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조선에 선교사로 나가달라는 부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 나갈 선교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인도 선교사로 지원하려는 선교 지원 편지를 보내려는 순간 언더우드는 “왜 너 자신이 가지 않느냐?” 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그 부르심에 한국 선교로 방향을 전환하고 1년이 지났는데 선교사로 한국으로 갈 길이 다 막힙니다. 뉴욕의 한 교회에서 목회자로 청빙을 받고 청빙 수락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려고 하는데, 또 다시 자신을 조선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조선에 갈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조선은 어떻게 될까?” (언더우드 선교 25주년 회고, 1909).
1884년 11월 뉴욕에서 시카고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12월 16일 일본을 향해서 출발하고, 일본에서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25세의 젊은 언더우드 조선의 첫번째 장로교 목사 선교사의 선교 사역이 조선에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선교 135년 한국이 받은 가장 큰 복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한국 선교였습니다.
한때는 세관에서 열심히 세리를 하던 마태는 세관 업무를 하던 좋은 펜으로 마태복음을 기록하면서, 마태복음 마지막 장 마지막 두 구절에서 자신을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자 마태가 받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도 제자로 부르십니까? 우리가 제자입니까?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음성에 우리가 무리가 아니라 제자이길 원합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 우리 이 시대에 우리 제자들에게도 주시는 우리 주님의 명령입니다. 제자이길 원합니다. 제자로 살기 원합니다.
6. 오늘의 찬송과 기도
새 찬송가 315장 통일 찬송가 512장 내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함께 찬송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함께 부른 찬송처럼 첫째는 우리의 죄를 다 고하며 우리가 죄인이며,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병든 자임을 고백합시다. 둘째는 종교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고난을 기꺼이 당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셋째는 예수님의 제자로 우리 평생에 힘쓸 큰 의무는 예수님을 말씀을 배우며 그 말씀을 전하는 영혼 사랑하는 전도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참된 기쁨과 감사함과 사랑을 우리 마음에 가득 부어주셔서 사랑과 기쁨과 성령 충만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일평생 죄인의 대명사인 세리로 살던 레위를 불러 하나님의 선물 마태라는 예수님의 귀한 제자로 삼으신 그 은혜를 감사합니다. 예수님 없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저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 영혼의 참된 의사이며, 선생님이신 예수님의 복된 말씀을 배우며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형식적인 신앙 생활로 만족하는 종교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살길 간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하신 것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하며, 영혼을 치유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간구합니다. 우리의 이름, 우리의 나라,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임하는데 쓰임받은 예수님의 제자로 더 능력있게 살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9:9-13).
1. 누가 예수님의 제자의 자격이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12명의 제자 가운데 어느 누구를 가장 좋아하십니까? 여러분이 만일 한 회사의 사장님이시라면 열두 명의 제자 가운데 누구를 여러분과 함께 일할 직원으로 뽑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열 두 명의 이력서를 경영 컨설팅 전문회사에 의뢰해 제자로서의 자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답니다. “나사렛 목공소 아들 예수님 귀하! 당신이 의뢰한 열두 명의 이력서를 검토하고 심리 테스트와 직업 적성검사 자료를 모아 컴퓨터에 넣어 결과를 뽑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귀하가 계획하는 새로운 단체의 간부 사원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학력이 낮고 단체 생활을 할 능력이 없으며 협조 정신이 약해 경영 관리자로서 부적합 합니다.
구체적으로 시몬 베드로는 정신적 안정성이 결여돼 있고 성격이 과격하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지나친 부분이 많습니다. 안드레는 한마디로 무능력합니다. 다른 사람을 지도할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성격이 불 같고, 회사의 이익을 제쳐놓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입니다. 도마는 모든 면에서 부정적이고 부정적인 질문은 많지만 추진력을 갖고 일 할 사람은 아닙니다. 마태는 과거의 직업인 세리처럼 공동체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민족의 배신자 친로마파 위인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두 사람은 사회 혁명을 노리는 진보 좌파 세력인 열심당의 과격분자들입니다. 불온사상에 감염돼 귀하가 이룰 온건한 기업에는 합당치 못합니다. 빌립과 바돌로매, 가나나인 시몬은 있으나 마나 한 사람들입니다. 귀하가 추천한 열두 명 중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가룟 유다 입니다. 그는 능력 있고 유대 출신의 사회에 대한 지식도 풍부합니다. 머리가 비상한 경영 감각이 있고 상류층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는 예의와 기품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경영상담소는 가룟 유다 한 명만 추천하고 나머지는 다시 찾을 것을 권고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가장 능력있고, 사회적인 지식이 있고, 경영 감각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사교적인 사람, 유대의 상류층 지도자들과도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인물이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처럼 보여도 단 한번도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팔았고 결국에는 자살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나머지 열 한 명의 제자들은, 베드로처럼 비록 학력도 낮고, 사회적인 지위도 낮고, 이기적이고, 리더쉽도 부족하지만, 예수님은 이 나머지 열 한 명의 제자를 끝까지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비록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죄를 범했지만,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의 마지막은 끝까지 충성스럽게 순교하며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제자, 신약 성경의 가장 많은 성경을 기록하며,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하여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던 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한 사도 바울은 어떠할까요? 선교사로 자원한 바울에게, 한 선교단체가 바울의 이력을 검토하고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친애하는 선교 지망생 바울에게, 최근 우리는 우리 선교 단체에서 사역하기를 원하시는 귀하의 지원서를 받았습니다. 귀하가 처한 상황을 검토한 결과, 이런 말씀을 드리기 망설여지지만, 귀하는 우리가 원하는 선교사로써의 자격 요건이 없슴을 안타깝게 알려드립니다. 첫째, 귀하가 도저히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없는 심한 안질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최소한 좌우 1.0 이상의 교정 시력을 요구합니다. 둘째, 우리는 세상일을 겸하고 있는 사역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귀하는 부업으로 천막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선교 사역에 전념할 선교사를 원합니다. 셋째, 귀하의 설교에 대해서 비난하는 소리가 많습니다. 설교가 너무 길어 한번은 밤이 깊도록 설교를 하는 바람에 한 청년이 졸다가 창문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제자로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비록 부족하지만, 비록 능력은 없지만, 자격도 없지만, 그러나 우리를 부르신 우리 주님을 참으로 사랑으로 마음으로 끝까지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스럽게 쓰임 받는 무리가 아닌 신실한 제자인,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2.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는 예수님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 두명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의 제자를 선택하시고 부르십니다. 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태라는 사람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이 말씀을 보면, 장소가 두 곳이 나옵니다.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 말씀에서 그 곳과 세관은 어디입니까? 그 곳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사역을 하시던 중심지 갈릴리 지역의 가버나움이라는 도시입니다. 갈릴리 지역은 남쪽의 유다 지역, 유다의 윗 지역인 사마리아, 그 사마리아 위쪽에 위치한 북쪽의 도시입니다. 갈릴리 호수가 위치한 북쪽의 갈릴리 지역의 교통의 중심지가 가버나움입니다. 갈릴리 지역은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인근의 어린이들을 죽인 잔인한 헤롯 대왕의 아들로 세례 요한을 살해한 헤롯 안디바가 다스리던 지역이었습니다. 갈릴리 지역의 핵심 도시 가버나움은 북쪽의 갈릴리의 중심도시로 로마의 세금 징수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세관에 한 세리가 앉아있습니다. 이름은 마태라는 사람입니다. 마태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마태의 다른 이름은 레위입니다. 마가복음 2장 14절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의 아버지 알패오는 아들의 이름을 레위라고 짓습니다. 레위의 아버지 알패오는 아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이 아들이 레위 지파에 속한 제사장처럼 영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연합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레위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레위는 이름과 전혀 걸맞지 않은 장소인 세관에 앉아 있습니다.
세관에 앉아 세금 걷는 일을 하고 있는 마태 레위는 아버지 알패오에게도 같은 동족인 유대 사람들에게도 모두 수치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세리는 창녀와 함께 죄인의 대명사였습니다. 마태복음 9장 10-11절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태복음 21장 32절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이며, 창녀와 동급으로 취급되던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제국과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은 세금을 직접 걷지 않고, 유대인 세리들을 고용하여 대신 세금을 걷게했습니다. 별도의 급료가 없었던 세리들은 규정 이상의 세금을 걷고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들은 동족이 아닌 헤롯과 로마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매국노이며 합법적인 강도였기에 동족 유대인들의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세리는 대개 탐욕스럽고, 부정직하며, 비도덕적인 죄인의 대명사였습니다. 특별히 갈릴리 가버나움 세관은 지역의 교통의 요지로 이곳을 통과하려면 최소 10%의 통행료를 붙이던 유명한 세관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족 중에서 누가 세리가 되면 그를 가정에서 추방해 버렸습니다. 세리는 재판정에서 증인이 될 수도 없었고, 회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도 없었고, 가장 수치스러운 일을 하는 죄인이었습니다. 이런 세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갈릴리의 어부라면 몰라도, 적어도 세상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가장 어렵고, 심지어 불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마태와 같은 세리였습니다. 그런 마태를 향하여 예수님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3.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
마태가 세리가 되고 나서 평생 사람들의 비난과 모욕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더러운 세리, 친로마파, 친헤롯가문, 민족의 배신자, 그러나, 이렇게 돈이 되는 직업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욕을 들어도 생계를 위해서는 이보다 더 돈 벌이가 잘 되는 직업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태의 마음속에는 진리에 대한 갈증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
온 갈릴리 지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던 예수님의 소문이 소문에 민감한 세리 마태에게도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이 갈릴리 가버나움 세관에 앉아있던 마태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시는 음성도 들었습니다. “나를 따르라” 마태의 인생 가운데 찾아온 결정적인 만남, 그의 인생의 전환점, turning Point입니다. “나를 따르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세관에 앉아있는 마태라고 한다면 “나를 따르라” 예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들은 사람입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던지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19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 4:20). 나를 따르라 부르심을 듣고 부르심에 반응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병행본문인 누가복음 5:28절은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에 마태는 그 돈 잘 버는 세관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세리라는 치욕적인 죄인의 굴레를 벗고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자 세리 마태는 결단합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입니다. 위대한 결단입니다. 세리 마태가 세리의 일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갈릴리 지역에 큰 뉴스였습니다. 유명한 세리 마태 예수님의 제자 마태가 되다. 마태의 소식을 들은 수 많은 동료 세리와 죄인들이 놀랐습니다. 이에 마태는 그동안 함께 한 동료 세리와 죄인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집에서 Matthew Party 파티를 엽니다. 그동안 함께 친하게 지내던 동료 세리와 죄인들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소개해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인 세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확실히 알리고 싶었습니다.
4. 부자 청년과 바리새인 같은 종교인
나를 따르라!! 예수님의 명령에 모든 사람이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9장을 보면 예수님께 나아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생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 청년은 십계명의 모든 선한 계명을 지키었다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도 나를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가니라” (마 19::21-22).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제자로의 부르심에 부자 청년을 근심합니다. 그리고 떠나갑니다.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부자 청년은 제자 마태와는 다르게 일생 일대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것 보다는 적당히 계명을 지키는 종교인으로 만족합니다. 그는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가장 종교적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권세있는 가르침과 귀신도 쫓아내시던 능력의 에수님이 왜 죄인의 대명사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는지, 더욱이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하시는 모습은 그들의 관점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세리와 같은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시는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17절 이들의 비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의 사람입니까?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우리 영혼의 의사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누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시는 부름을 듣습니까? 건강한 자는 의사에게 갈 필요가 없습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칭 의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세리 마태같은 죄인을 부르셔서 구원하시며 병든 자 같은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으십니다. 세리 마태도 부르셔셔 제자로 삼으신 예수님이시면 저와 여러분, 우리 같은 부족하고 죄 많은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시고 받아주시겠습니까? “나를 따르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지금 듣는다면 그 부르심에 순종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 부르심에 순종한 사람이 제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관심 많고 당시에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이들은 과거의 종교적인 관습적인 전통과 형식에 얽매인 사람들입니다. 세리와 같은 죄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이들은 종교적인 형식에서는 그럴듯 합니다.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도 하고, 십일조도 드리고, 율법도 지키는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목회 현장에서 만나는 가장 안타까운 무리는 누구보다 종교적인 열심은 있으나 제자는 아닌 바리새인 같은 분들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에게는 정말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분명한 표징이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첫째, 지난 주일에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결코 떠날 수 없는 제자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우리가 영혼의 의사이신 예수님이 진정으로 필요한 병든 자이며 죄인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둘째, 종교적인 형식과 관습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비록 건강하지 못한 병든 자이지만, 비록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지만,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기꺼이 따르는 순종의 사람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제자는 부족하지만 제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따른 제자 마태에게 누가 가장 크게 보였습니까? 한때 같이 일하던 소망없던 동료 세리들, 그들을 염려하며 그들을 위해서, 자신의 집을 오픈해서 매튜파티 전도초청 파티를 엽니다. 10절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 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불쌍한 영혼을 예수님께 인도하려는 열심으로 가득한 영혼 사랑의 전도자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5. "왜, 너 자신이 가지 않느냐?"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르심
대학시절에 이랜드라는 기업에서 언더우드라는 캐쥬얼 브랜드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연을 들어보니 그 옷만 입어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습니다. 1881년 6월 11일 뉴욕대학을 졸업하면서 대표 연설을 하기로 되어있던 졸업식 날, 어린 13세에 아버지와 함께 영국에서 이민온 이민 1.5세 호러스 언더우드는 아버지를 잃어버린 그 날 이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천명씩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는 영혼이 있다는 절박한 현실을 발견하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선교사로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뉴욕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의 뉴브런스윅 신학교에 다니며 인도 선교를 준비를 하던 언더우드는 신학생 선교대회에 참석하며 만주에서 선교하던 존 로스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1200만명의 조선 백성이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는데 이제 막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여 은둔의 나라를 벗어나려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갈 선교사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학교에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조선에 선교사로 나가달라는 부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 나갈 선교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인도 선교사로 지원하려는 선교 지원 편지를 보내려는 순간 언더우드는 “왜 너 자신이 가지 않느냐?” 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그 부르심에 한국 선교로 방향을 전환하고 1년이 지났는데 선교사로 한국으로 갈 길이 다 막힙니다. 뉴욕의 한 교회에서 목회자로 청빙을 받고 청빙 수락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려고 하는데, 또 다시 자신을 조선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조선에 갈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조선은 어떻게 될까?” (언더우드 선교 25주년 회고, 1909).
1884년 11월 뉴욕에서 시카고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12월 16일 일본을 향해서 출발하고, 일본에서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25세의 젊은 언더우드 조선의 첫번째 장로교 목사 선교사의 선교 사역이 조선에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선교 135년 한국이 받은 가장 큰 복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한국 선교였습니다.
한때는 세관에서 열심히 세리를 하던 마태는 세관 업무를 하던 좋은 펜으로 마태복음을 기록하면서, 마태복음 마지막 장 마지막 두 구절에서 자신을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자 마태가 받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도 제자로 부르십니까? 우리가 제자입니까?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음성에 우리가 무리가 아니라 제자이길 원합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 우리 이 시대에 우리 제자들에게도 주시는 우리 주님의 명령입니다. 제자이길 원합니다. 제자로 살기 원합니다.
6. 오늘의 찬송과 기도
새 찬송가 315장 통일 찬송가 512장 내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함께 찬송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함께 부른 찬송처럼 첫째는 우리의 죄를 다 고하며 우리가 죄인이며,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병든 자임을 고백합시다. 둘째는 종교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고난을 기꺼이 당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셋째는 예수님의 제자로 우리 평생에 힘쓸 큰 의무는 예수님을 말씀을 배우며 그 말씀을 전하는 영혼 사랑하는 전도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참된 기쁨과 감사함과 사랑을 우리 마음에 가득 부어주셔서 사랑과 기쁨과 성령 충만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일평생 죄인의 대명사인 세리로 살던 레위를 불러 하나님의 선물 마태라는 예수님의 귀한 제자로 삼으신 그 은혜를 감사합니다. 예수님 없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저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 영혼의 참된 의사이며, 선생님이신 예수님의 복된 말씀을 배우며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형식적인 신앙 생활로 만족하는 종교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살길 간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하신 것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하며, 영혼을 치유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간구합니다. 우리의 이름, 우리의 나라,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임하는데 쓰임받은 예수님의 제자로 더 능력있게 살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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