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6장 60-69절 제자도 (1) 무리인가? 제자인가?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8-2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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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그의 제자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요 6:66-71)
1. 무리인가 제자인가?
2013년 12월 특집으로 시사주간지 Time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을 미친 100명의 인물을 소개했습니다. 누가 포함이 되었을까요? 역사신학을 전공한 제가 좋아하는 신학자들도 있었습니다. 99위 16세기 스위스 종교개혁자 존 칼빈, 90위 중세의 천사박사라 불리우는 토마스 아퀴나스, 72위 초대교회의 신학을 집대성 한 어거스틴, 17위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있습니다. 10위부터 우리가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10위 토마스 제퍼슨, 9위 알렉산더 대왕, 8위 아리스토텔레스, 7위 아돌프 히틀러, 6위 조지 워싱턴, 5위 아브라함 링컨, 4위 윌리엄 세익스피어, 3위 무하마드, 2위 나폴레옹, 그리고 마지막 1위는 누구였을까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예수님이었습니다.
타임즈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신 예수님을 여러분도 좋아하십니까? 오늘 이 시간도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로 2000여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약 21억명이고, 세계 인구의 33%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2015년 통계청의 공식기록을 찾아보니 전체 인구의 28%인 1340만명, 개신교인은 20%인 970만명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 동안 사역하셨을 당시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는지 예수님은 식사하실 겨를도 없으셨고, 주무실 시간도 부족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1-2절을 보면,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녀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식사할 시간이 되어서 사람들을 세어보니 남자만 약 5천명정도입니다.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최소 2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식사하는 자리에까지 동참하는 5천명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예수님을 따라서 갈릴리 바다까지 건너온 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그냥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이며, 예수님의 팬입니다. 이들은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그냥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무리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질문을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답변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좋아하고 따라다니는 무리입니까? 무리와 제자는 어떻게 구분이 됩니까?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예수님의 열두제자 가운데 포함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처럼 보였지만 그는 단 한번도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64절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70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오늘 봉독한 본문 요 6장 67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향해서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도 가려느냐?” 66절 말씀부터 보면, “그때로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고 따르다가, 많이 물러갔고, 거의 다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스스로 제자라고 생각하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갔고,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들이 12명의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12제자들을 향해서 직접 질문하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도 이 사람들처럼 나를 떠나고 싶지 않느냐?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기독교와 교회가 인기가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개독으로 불리는 시대이며, 한국의 어느 식당문에 붙인 “당분간 교회다니는 사람은 이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이 대세인 시대처럼 보입니다. 교회, 기독교인, 교인, 목사 라는 말은 오늘날 전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비추어지고, 신천지 이단이나 기독교나 별로 다를 것이 없어보이는 오늘날은 전도가 막혀버린 불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일하게 교회를 떠났고, 교회를 떠나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안티 기독교가 대세인 시대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것이 대세인데,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까? 떠나야 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누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인지 보여줍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무리입니가?
2. 예수님의 제자됨의 중요한 시금석은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입니다.
우리는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는지 그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아야합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닌 수 많은 무리들이 왜 예수님을 따랐는지 그 동기를 알면, 그들이 왜 예수님을 떠났는지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렇게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모여든 몇 가지 동기가 있습니다.
첫번째 동기는 요한복음 6장 1-2절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그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을 고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소경을 고치셨고, 앉은뱅이도 고치셨고, 절뚝발이, 혈루병 걸린 자, 귀신들린 자, 심지어는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주셨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는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그 표적을 보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닌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 4:46-48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을 따라다닌 무리들의 동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표적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적에 관심이 있습니다. 병 고침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오직 병만 고쳐준다면, 이적과 표적을 행한다면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때에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고, 신기하게도 기도 하면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기도 응답을 여러번 체험했습니다. 하루는 고등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밤 12시에 집으로 돌아가야하는데 집으로 가는 밴이 떠나버리고, 버스도 끊기고 주머니는 돈도 하나도 없는데 마음은 담대합니다. 하나님께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기도를 한 후에 갑자기 택시가 서더니 학생 집이 어디야 묻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무사히 데려다주는데 돈도 안 받고 그냥 가십니다. 마음속에 기도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해주신다는 믿음과 확신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구한 담대한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심각하게, 응답해 주실 줄로 확신하면서 표적을 구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살아계시면, 제 키가 더두 말고, 덜두 말고, 딱 10cm 만 크게 해주세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정말 심각했습니다. 제 방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간절하게 확신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10cm.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겠습니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응답해 주셨냐면요? 말씀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16:7)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시라, 중심을 보신다는 응답의 말씀이셨습니다. 만일, 제가 정말 기도한 대로 키가 10cm 만 더 컸으면 표적을 구한 기도에 응답해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20년이 지나서 언젠가, 칼빈 세미너리 공부하시던 친한 목사님 두 분께서 제 이야기를 하다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김민순 목사는 키가 10cm만 더 컸어도 신학 공부 안 했을꺼야...사랑하는 여러분!!! 그때 10cm 안 큰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렇게 말씀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럼에도, 표적에만, 이적에만, 외적으로 나타나는 신기한 응답에만 관심을 두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얼마나 잘못된 동기로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두번째 동기도 보입니다. 요한복음 6장 26절입니다.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라.”
이 무리들은 누구입니까? 이들에게는 표적도 중요하지만 떡을 먹고 배부른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6장 초반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니, 남자만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였습니다.
그러기에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요 6:14-15절 말씀을 보면,“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닌 동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들의 동기와 목적은 오직 떡에 있습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십시오.“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절) 이들은 잘 먹고 잘 살게만 해주다면 사기꾼 같은 경제 대통령도 뽑을 사람들이며, 무시무시한 독재로 권력을 유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입니다. 경제적 메시야, 정치적 메시야를 추구하며 이 땅에서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사는 유토피아 낙원을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눈에 이 사람은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가난한 형편에, 예수님을 따라 떡을 먹고 육신의 배를 채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 나쁩니까? 그러나 문제는 예수님을 따라 다녀도 떡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떡이 나오냐? 예수님을 열심히 믿으면 잘 사는 축복을 받습니까? 날마다 도우시고 힘 주시는 은혜를 부어주시어 감사한 삶을 살아가지만, 모든 신실한 제자들이 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헌신된 성도 가운데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내 생활이 이렇게 어려운데, 주님을 위해서 헌신 했는데, 그 결과가 무엇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열심히 믿다가 사업이 망해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다가 자녀의 진로가 막혀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셋번째 동기도 있습니다. 마 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이 아니함일러라.”
이들은 예수님의 너무나도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기가 막힌 성경의 해석을 들었고, 서기관들과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 감동적인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음에 감동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열심히 좇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복음 6:60절의 말씀을 보면, 오늘은 그리 쉽고 재미있는 말씀이 아니라 어려운 말씀입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이들은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에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나도 어려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말씀, 도무지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은 곧 예수님 자신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표적에 관한 말씀도 아니고, 떡에 관한 말씀도 아니고, 유모 가득한 가르침의 말도 아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살과 예수님의 피를 마신 자만이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살리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며, 이 생명의 떡을 먹은 자만이 영원히 산다는 영생의 복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6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복음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입니다. 기적이 아니라, 떡이 아니라, 은혜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들었기에 이들은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이들은 제자가 아닙니다. 무리입니다.
한때는 헌신적으로 누구보다 열심으로 신앙생활 잘 하시다가도 시험에 들어 예수님을 떠나는 분들이 계십니다. 왜냐하면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뜻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나에게 우리 가정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라고 질문을 하면서 실망 하면서 예수님을 떠납니다.
한 신학교 교수님 한 분이 5대 독자를 잃었습니다. 여름 수련회때 아이들 수영 지도하다가 5대 독자 아들이 심장마비로 죽은 겁니다.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교수님은 그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저는 왜 제 아들을 데려가셨나요? 라고 묻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5대 독자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제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때가 있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으니 하나님을 탓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야 합니까?" 하나님께 따지고 질문하고 싶은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럴 때가 가장 중요합니다.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내가 예수님을 믿는 진짜 이유와 동기는 무엇인가?”“내가 주님앞에 지금까지 헌신하고 신앙생활 한 진정한 동기는 무엇인가?” 우리가 이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깨닫는 교훈이 있습니다.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그 잘못된 동기를 수정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예수님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제자가 아니라 무리입니다. 제자가 아닌 무리, 저는 그러한 분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잘못된 동기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왜 교회 다니십니까? 자식들을 위해서 다니지요. 자식 잘 되게 해 달라구요. 왜 예수 믿습니까? 예수 믿고 건강해 지려구요. 예수 믿고, 물질의 축복 많이 받아서 부자 되려구요...왜 교회 다니십니까? 결혼 적령기가 되었는데, 배우자를 만나려구요...아닙니다. 오늘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서 질문합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3.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와는 다르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가장 중요한 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시몬 베드로는 담대하고 고백합니다.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68-69절) 다시 한번 이 말씀 다 같이 한 목소리로 고백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기적과 표적이 아니어도, 육신의 떡이 아니어도, 달고 은혜로운 말씀이 아니어도 우리 예수님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께 반문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주님, 주님 외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영생의 말씀이십니다. 주님만이 영생의 말씀이시기에 우리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제자 베드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떠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다른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6:3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바른 신앙을 고백하며, 우리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 중에 예수님이 거절하신 분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고 부른 한 강도의 고백에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리입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위험한 자리에 있습니다. 제자입니까? 그렇다면, 지금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주 예수님을 떠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제자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실수투성이여도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의 고백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그 분 메시야이시기에 결코 우리 주님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복음서에서 우리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신 순간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가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라.” 언제 이 기쁘고 감사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부족한 제자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셨을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 예수님을 향해서 진실되이 이 고백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무리가 아니라 제자입니다. 참된 우리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고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그의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체험적인 신앙입니다. 참된 신앙은 믿음으로만 알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분명한 영생의 확신을 가지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 베드로는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확신있게 말씀합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를 만나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는 그냥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기쁨이 제자들에게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제자들에게는 이미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4.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사랑하는 여러분!!! 무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요, 그리스도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음으로 고백하시는 여러분은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이 땅에서 기억할 세가지 다짐이 있습니다.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이 땅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아간 윌리엄 보든 선교사의 전기 제목을 보았습니다. 남김없이 (No Reserves), 후퇴없이 (No Retreats), 그리고 후회없이 (No Regrets)
윌리엄 보든은1913년 25세의 젋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887년 오늘날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미국 최대의 낙농그룹 보든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세계 여행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유럽과 아시아, 중동을 여행하면서 윌리엄은 복음이 닿지 않는 곳으로 찾아가라는 하나님의 강한 부르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을 위한 선교에 일생을 바치겠다는 편지를 부모님에게 보내고 나서 자신의 성경책에 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남김없이”
아버지의 강권으로 예일대학에 들어간 첫 해에 그는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한 친구와 함께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윌리엄과 함께 예일대학에 성경 읽기와 기도 모임이 하나씩 생기면서 윌리엄이 대학 4학년이 되자 예일대학에 성경읽기와 기도 모임이 1000여개가 생겼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졸업하면서 그는 성경책의 뒷 면에 다시 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후퇴없이” 윌리엄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고등학교 졸업때 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서 중국 간쑤성에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하고, 중국에 들어가기 가전에 아랍어를 먼저 배우고 이슬람 지역 선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이집트로 건너가 선교 훈련을 하던중 그곳에서 척수막염에 걸려 스물다섯의 안타까운 나이에 카이로에 묻혔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발견된 그의 성경책에는 세 개의 문장이 기록되었습니다. 남김없이 (No Reserves), 후퇴없이 (No Retreats), 그리고 후회없이 (No Regrets).
윌리엄의 낡은 수첩에는 그의 믿음이 담긴 문구가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언제나 자신에게는 노라고 말하고, 예수님께는 예스라고 말하라. 이것이 힘든가? 힘들게 오르는 가파른 길인가? 그러나 이 길을 가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은 바로 곁에서 동행해주신다.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포기했다 할지라도 그분의 임재가 보상해준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보좌와 십자가가 있다.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시면 나의 자아는 십자가에 달린다. 그러나 나의 자아가 보좌에 앉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다.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시면 나는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따라가게 된다.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은 나의 삶의 모든 부분과 모든 사역을 영화롭게 하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사는 인생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이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한때 그리스도를 따랐던 무리가 아니라,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시는 우리 주님의 제자로 기억될수만 있다면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찬양과 결단의 기도
찬송가 519장 <십자가를 질 수있나?> 우리의 믿음의 결단을 고백하며 찬송합니다.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며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아니면 무리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도 보고, 예수님이 주시는 떡도 먹었고, 예수님의 은혜로운 가르침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주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결단코 우리 주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오직 우리 주님께만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거룩하신 메시야이십니다. 이제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윌리엄 보든처럼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분의 나라를 위하여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 주님 제가 우리 자녀가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무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하옵소서 이 시간 함께 힘다하여 합심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아무런 자격없고 부족하고 허물과 죄악이 가득한 죄인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하여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삼아 영생의 복락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욕심과 이익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무리로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우리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며, 우리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제자의 길을 걸어가길 원합니다. 윌리엄 보든의 결심이 우리의 결심이 되게 하옵소서.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살아가는 우리 주님의 제자의 삶을 살게하옵소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우리 주님의 복된 명령을 기억하며 주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을 늘 우리 주님께만 바치며 살게하옵소서. 제자의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갈 때에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시고,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때로부터 그의 제자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요 6:66-71)
1. 무리인가 제자인가?
2013년 12월 특집으로 시사주간지 Time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을 미친 100명의 인물을 소개했습니다. 누가 포함이 되었을까요? 역사신학을 전공한 제가 좋아하는 신학자들도 있었습니다. 99위 16세기 스위스 종교개혁자 존 칼빈, 90위 중세의 천사박사라 불리우는 토마스 아퀴나스, 72위 초대교회의 신학을 집대성 한 어거스틴, 17위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있습니다. 10위부터 우리가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10위 토마스 제퍼슨, 9위 알렉산더 대왕, 8위 아리스토텔레스, 7위 아돌프 히틀러, 6위 조지 워싱턴, 5위 아브라함 링컨, 4위 윌리엄 세익스피어, 3위 무하마드, 2위 나폴레옹, 그리고 마지막 1위는 누구였을까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예수님이었습니다.
타임즈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신 예수님을 여러분도 좋아하십니까? 오늘 이 시간도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로 2000여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약 21억명이고, 세계 인구의 33%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2015년 통계청의 공식기록을 찾아보니 전체 인구의 28%인 1340만명, 개신교인은 20%인 970만명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 동안 사역하셨을 당시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는지 예수님은 식사하실 겨를도 없으셨고, 주무실 시간도 부족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1-2절을 보면,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녀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식사할 시간이 되어서 사람들을 세어보니 남자만 약 5천명정도입니다.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최소 2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식사하는 자리에까지 동참하는 5천명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예수님을 따라서 갈릴리 바다까지 건너온 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그냥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이며, 예수님의 팬입니다. 이들은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그냥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무리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질문을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답변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좋아하고 따라다니는 무리입니까? 무리와 제자는 어떻게 구분이 됩니까?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예수님의 열두제자 가운데 포함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처럼 보였지만 그는 단 한번도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64절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70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오늘 봉독한 본문 요 6장 67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향해서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도 가려느냐?” 66절 말씀부터 보면, “그때로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고 따르다가, 많이 물러갔고, 거의 다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스스로 제자라고 생각하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갔고,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들이 12명의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12제자들을 향해서 직접 질문하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도 이 사람들처럼 나를 떠나고 싶지 않느냐?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기독교와 교회가 인기가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개독으로 불리는 시대이며, 한국의 어느 식당문에 붙인 “당분간 교회다니는 사람은 이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이 대세인 시대처럼 보입니다. 교회, 기독교인, 교인, 목사 라는 말은 오늘날 전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비추어지고, 신천지 이단이나 기독교나 별로 다를 것이 없어보이는 오늘날은 전도가 막혀버린 불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일하게 교회를 떠났고, 교회를 떠나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안티 기독교가 대세인 시대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것이 대세인데,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까? 떠나야 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누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인지 보여줍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무리입니가?
2. 예수님의 제자됨의 중요한 시금석은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입니다.
우리는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는지 그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아야합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닌 수 많은 무리들이 왜 예수님을 따랐는지 그 동기를 알면, 그들이 왜 예수님을 떠났는지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렇게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모여든 몇 가지 동기가 있습니다.
첫번째 동기는 요한복음 6장 1-2절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그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을 고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소경을 고치셨고, 앉은뱅이도 고치셨고, 절뚝발이, 혈루병 걸린 자, 귀신들린 자, 심지어는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주셨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는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그 표적을 보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닌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 4:46-48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을 따라다닌 무리들의 동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표적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적에 관심이 있습니다. 병 고침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오직 병만 고쳐준다면, 이적과 표적을 행한다면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때에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고, 신기하게도 기도 하면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기도 응답을 여러번 체험했습니다. 하루는 고등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밤 12시에 집으로 돌아가야하는데 집으로 가는 밴이 떠나버리고, 버스도 끊기고 주머니는 돈도 하나도 없는데 마음은 담대합니다. 하나님께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기도를 한 후에 갑자기 택시가 서더니 학생 집이 어디야 묻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무사히 데려다주는데 돈도 안 받고 그냥 가십니다. 마음속에 기도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해주신다는 믿음과 확신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구한 담대한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심각하게, 응답해 주실 줄로 확신하면서 표적을 구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살아계시면, 제 키가 더두 말고, 덜두 말고, 딱 10cm 만 크게 해주세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정말 심각했습니다. 제 방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간절하게 확신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10cm.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겠습니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응답해 주셨냐면요? 말씀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16:7)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시라, 중심을 보신다는 응답의 말씀이셨습니다. 만일, 제가 정말 기도한 대로 키가 10cm 만 더 컸으면 표적을 구한 기도에 응답해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20년이 지나서 언젠가, 칼빈 세미너리 공부하시던 친한 목사님 두 분께서 제 이야기를 하다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김민순 목사는 키가 10cm만 더 컸어도 신학 공부 안 했을꺼야...사랑하는 여러분!!! 그때 10cm 안 큰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렇게 말씀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럼에도, 표적에만, 이적에만, 외적으로 나타나는 신기한 응답에만 관심을 두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얼마나 잘못된 동기로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두번째 동기도 보입니다. 요한복음 6장 26절입니다.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라.”
이 무리들은 누구입니까? 이들에게는 표적도 중요하지만 떡을 먹고 배부른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6장 초반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니, 남자만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였습니다.
그러기에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요 6:14-15절 말씀을 보면,“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닌 동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들의 동기와 목적은 오직 떡에 있습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십시오.“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절) 이들은 잘 먹고 잘 살게만 해주다면 사기꾼 같은 경제 대통령도 뽑을 사람들이며, 무시무시한 독재로 권력을 유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입니다. 경제적 메시야, 정치적 메시야를 추구하며 이 땅에서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사는 유토피아 낙원을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눈에 이 사람은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가난한 형편에, 예수님을 따라 떡을 먹고 육신의 배를 채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 나쁩니까? 그러나 문제는 예수님을 따라 다녀도 떡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떡이 나오냐? 예수님을 열심히 믿으면 잘 사는 축복을 받습니까? 날마다 도우시고 힘 주시는 은혜를 부어주시어 감사한 삶을 살아가지만, 모든 신실한 제자들이 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헌신된 성도 가운데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내 생활이 이렇게 어려운데, 주님을 위해서 헌신 했는데, 그 결과가 무엇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열심히 믿다가 사업이 망해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다가 자녀의 진로가 막혀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셋번째 동기도 있습니다. 마 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이 아니함일러라.”
이들은 예수님의 너무나도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기가 막힌 성경의 해석을 들었고, 서기관들과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 감동적인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음에 감동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열심히 좇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복음 6:60절의 말씀을 보면, 오늘은 그리 쉽고 재미있는 말씀이 아니라 어려운 말씀입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이들은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에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나도 어려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말씀, 도무지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은 곧 예수님 자신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표적에 관한 말씀도 아니고, 떡에 관한 말씀도 아니고, 유모 가득한 가르침의 말도 아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살과 예수님의 피를 마신 자만이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살리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며, 이 생명의 떡을 먹은 자만이 영원히 산다는 영생의 복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6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복음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입니다. 기적이 아니라, 떡이 아니라, 은혜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들었기에 이들은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이들은 제자가 아닙니다. 무리입니다.
한때는 헌신적으로 누구보다 열심으로 신앙생활 잘 하시다가도 시험에 들어 예수님을 떠나는 분들이 계십니다. 왜냐하면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뜻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나에게 우리 가정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라고 질문을 하면서 실망 하면서 예수님을 떠납니다.
한 신학교 교수님 한 분이 5대 독자를 잃었습니다. 여름 수련회때 아이들 수영 지도하다가 5대 독자 아들이 심장마비로 죽은 겁니다.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교수님은 그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저는 왜 제 아들을 데려가셨나요? 라고 묻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5대 독자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제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때가 있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으니 하나님을 탓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야 합니까?" 하나님께 따지고 질문하고 싶은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럴 때가 가장 중요합니다.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내가 예수님을 믿는 진짜 이유와 동기는 무엇인가?”“내가 주님앞에 지금까지 헌신하고 신앙생활 한 진정한 동기는 무엇인가?” 우리가 이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깨닫는 교훈이 있습니다.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그 잘못된 동기를 수정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예수님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제자가 아니라 무리입니다. 제자가 아닌 무리, 저는 그러한 분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잘못된 동기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왜 교회 다니십니까? 자식들을 위해서 다니지요. 자식 잘 되게 해 달라구요. 왜 예수 믿습니까? 예수 믿고 건강해 지려구요. 예수 믿고, 물질의 축복 많이 받아서 부자 되려구요...왜 교회 다니십니까? 결혼 적령기가 되었는데, 배우자를 만나려구요...아닙니다. 오늘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서 질문합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3.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와는 다르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가장 중요한 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시몬 베드로는 담대하고 고백합니다.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68-69절) 다시 한번 이 말씀 다 같이 한 목소리로 고백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기적과 표적이 아니어도, 육신의 떡이 아니어도, 달고 은혜로운 말씀이 아니어도 우리 예수님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께 반문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주님, 주님 외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영생의 말씀이십니다. 주님만이 영생의 말씀이시기에 우리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제자 베드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떠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다른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6:3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바른 신앙을 고백하며, 우리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 중에 예수님이 거절하신 분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고 부른 한 강도의 고백에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리입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위험한 자리에 있습니다. 제자입니까? 그렇다면, 지금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주 예수님을 떠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제자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실수투성이여도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의 고백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그 분 메시야이시기에 결코 우리 주님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복음서에서 우리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신 순간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가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라.” 언제 이 기쁘고 감사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부족한 제자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셨을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 예수님을 향해서 진실되이 이 고백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무리가 아니라 제자입니다. 참된 우리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고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그의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체험적인 신앙입니다. 참된 신앙은 믿음으로만 알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분명한 영생의 확신을 가지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 베드로는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확신있게 말씀합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를 만나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는 그냥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기쁨이 제자들에게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제자들에게는 이미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4.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사랑하는 여러분!!! 무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요, 그리스도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음으로 고백하시는 여러분은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이 땅에서 기억할 세가지 다짐이 있습니다.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이 땅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아간 윌리엄 보든 선교사의 전기 제목을 보았습니다. 남김없이 (No Reserves), 후퇴없이 (No Retreats), 그리고 후회없이 (No Regrets)
윌리엄 보든은1913년 25세의 젋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887년 오늘날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미국 최대의 낙농그룹 보든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세계 여행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유럽과 아시아, 중동을 여행하면서 윌리엄은 복음이 닿지 않는 곳으로 찾아가라는 하나님의 강한 부르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을 위한 선교에 일생을 바치겠다는 편지를 부모님에게 보내고 나서 자신의 성경책에 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남김없이”
아버지의 강권으로 예일대학에 들어간 첫 해에 그는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한 친구와 함께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윌리엄과 함께 예일대학에 성경 읽기와 기도 모임이 하나씩 생기면서 윌리엄이 대학 4학년이 되자 예일대학에 성경읽기와 기도 모임이 1000여개가 생겼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졸업하면서 그는 성경책의 뒷 면에 다시 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후퇴없이” 윌리엄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고등학교 졸업때 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서 중국 간쑤성에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하고, 중국에 들어가기 가전에 아랍어를 먼저 배우고 이슬람 지역 선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이집트로 건너가 선교 훈련을 하던중 그곳에서 척수막염에 걸려 스물다섯의 안타까운 나이에 카이로에 묻혔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발견된 그의 성경책에는 세 개의 문장이 기록되었습니다. 남김없이 (No Reserves), 후퇴없이 (No Retreats), 그리고 후회없이 (No Regrets).
윌리엄의 낡은 수첩에는 그의 믿음이 담긴 문구가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언제나 자신에게는 노라고 말하고, 예수님께는 예스라고 말하라. 이것이 힘든가? 힘들게 오르는 가파른 길인가? 그러나 이 길을 가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은 바로 곁에서 동행해주신다.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포기했다 할지라도 그분의 임재가 보상해준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보좌와 십자가가 있다.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시면 나의 자아는 십자가에 달린다. 그러나 나의 자아가 보좌에 앉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다.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시면 나는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따라가게 된다.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은 나의 삶의 모든 부분과 모든 사역을 영화롭게 하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사는 인생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이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한때 그리스도를 따랐던 무리가 아니라,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시는 우리 주님의 제자로 기억될수만 있다면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찬양과 결단의 기도
찬송가 519장 <십자가를 질 수있나?> 우리의 믿음의 결단을 고백하며 찬송합니다.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며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아니면 무리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도 보고, 예수님이 주시는 떡도 먹었고, 예수님의 은혜로운 가르침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주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결단코 우리 주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오직 우리 주님께만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거룩하신 메시야이십니다. 이제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윌리엄 보든처럼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분의 나라를 위하여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 주님 제가 우리 자녀가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무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하옵소서 이 시간 함께 힘다하여 합심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아무런 자격없고 부족하고 허물과 죄악이 가득한 죄인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하여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삼아 영생의 복락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욕심과 이익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무리로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우리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며, 우리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제자의 길을 걸어가길 원합니다. 윌리엄 보든의 결심이 우리의 결심이 되게 하옵소서.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살아가는 우리 주님의 제자의 삶을 살게하옵소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우리 주님의 복된 명령을 기억하며 주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을 늘 우리 주님께만 바치며 살게하옵소서. 제자의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갈 때에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시고,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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