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롬 8장 29-30절 히 11장 13-16절 구원의 황금사슬 (10)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8-0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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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29-30)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13-16)

1. 우리의 고향과 더 나은 본향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다시 돌아갈수만 있다면,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까? 미시간을 떠나오면서 저희집 둘째 딸 가은이와 통화를 했는데, 가은이는 나중에 커서 꼭 다시 미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알버커키에 적응하고 살면 미시간 생각이 안 날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만2살에 미시간에 와서 14년을 살았으니 미시간이 정말 고향 같은 곳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 저의 생각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이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32살에 미시간으로 유학을 오기까지 태어나고 자란 저희 고향 수원시 팔달구 지동입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어린시절 수원의 모습은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개울가의 냇물이 흐르고, 그 냇가와 산과 들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고향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수원에는 조선의 정조왕이 지은 동서남북의 4대문이 있고, 저희 집 바로 뒤에는 동쪽의 문인 창룡문이 있고, 어린시절에는 창룡문과 수원성을 놀이터로 삼아서 마음껏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이 되어 해마다 엄청난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어린시절 고향은 어떠셨는지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고향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 믿음의 사람에게는 두 개의 본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나온 바 본향이 있고, 그리고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이 있습니다.

2. 더 나은 본향과 구원의 마지막 영화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1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하여 예비하신 한 성이라고 말씀합니다. 더 나은 본향,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성 모두 우리 구원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구원의 영화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에서 영화는 구원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지난 10주동안 살펴본 로마서 8장 29-30절 말씀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예지, 예정, 소명, 칭의, 그리고 마지막은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영화입니다. 구원의 황금사슬에서 우리 구원은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와 견인 다음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입니다.

영화의 단계를 잘 설명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구원은 너무나 포괄적인 개념이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의 과거가 있고, 구원을 이루라는 현재가 있고, 앞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미래가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원죄의 노예로 태어나서 하나님의 구원의 부르심을 듣고 소명, 거듭나서 중생, 회개와 믿음으로 인생의 방향을 돌이키는 회심에 이르게 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여기까지가 이미 받은 과거의 구원입니다. 과거의 구원으로 끝이 아니라 성화의 구원이 시작되어 우리가 이땅의 삶을 마무리할 때까지 점진적인 성화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성화의 구원입니다. 성화가 끝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보존하시고 확신케 하시는 견인으로 우리는 마지막 구원의 완성인 미래의 영화에 이르게 됩니다. 영화의 구원을 웨인 그루뎀은 잘 정의해 놓았습니다. “영화란 구원의 적용에 있어 마지막 단계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그 동안에 죽은 신자들의 육체를 죽음에서 살리시어 그들의 영혼과 결합하게 하고 살아있는 모든 신자들의 육체를 변화시켜 모든 신자들이 동시에 그리스도와 같은 완전한 부활의 몸을 입게 할때 발생한다”

3. 영화의 구원의 특징

우리 구원의 영화를 비유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는 본문이 히브리서 11장 13-16절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입니다. 모든 믿음의 성도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믿음의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믿음의 명예의 전당의 모습입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같은 탁월한 믿음의 사람의 공통점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에 새기면서 다시 한번 천천히 읽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13-16)

본문 이해를 돕기 위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1. 우리의 구원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는 언제 이루어 집니까? 영화는 우리가 이땅에서 살아있는 동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죽은 이후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서 죽은 이후에 바로 영화가 이루어집니까? 아닙니다.
2. 영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거쳐야 하는 과정은 무엇입니까? (히 11:13) 영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먼저는 육신의 죽음, 죽은 이후에는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낙원,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때 이루어지는 우리 몸의 부활 때 우리 구원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영화는 우리 구원의 마지막이며 동시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과 세상의 완성입니다.
3. 구원의 영화에 이를 때까지 이 땅에서 우리 믿는 성도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히 11:13)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우리는 이 땅에서는 영원한 외국인이며, 영원한 나그네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누리고 소유하고 있는 것이 전부인 사람은 비참한 사람입니다.
4. 히 11장에서 우리 구원의 영화를 어떤 표현으로 비유하고 있습니까? (히 11:14-16)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우리가 나온 본향보다 더 나은 비교할 수 없는 더 나은 본향이 있습니다. 더 나은 본향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해주시는 한 성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영화와 관련된 비유의 말씀이 정말 풍성합니다.“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엡 1:18), “생명의 면류관”“영광의 면류관”(벧전 5:4).“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 (약 2:5). 우리가 이미 살펴본 로마서 8장 17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마지막에 받을 영광이 곧 영화입니다. 로마서 8장 23절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의 양자됨이 완성되는 그 날은 우리의 몸의 부활이 이루어지는 영화의 구원을 말합니다.

4. 영화의 구원의 중요한 단계

우리가 우리의 구원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4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번째 단계는 우리 육신의 죽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이 땅을 살아간 구약의 탁월한 믿음의 조상들,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오른 믿음의 영웅들도 다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죽음 이후의 더 나은 본향이 있음을 믿고 이 땅을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빌립보서 1장 23절 사도 바울의 고민이 있습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이 땅을 살아가는 삶과 차리리 죽어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고후 5:8).

믿음의 성도에게 이 땅의 삶은 고향같은 곳이 아니라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불편하고 힘이 들고 상처가 가득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해도, 우리의 성화가 완성되지 않기에 우리의 죄, 세상의 죄로 인하여 피곤하고 힘이 들고 살기가 힘이 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를 경험하니 코로나 이전 시대가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 시대에도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경험이 많았는지요?

수원에서만 살던 제가 천당 바로 아래 분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정말 분당은 수원에 비한다면 천당 같았습니다. 그 좋은 천당 아래의 분당은 서울도 가깝고, 모든 것이 다 있고, 편리하고, 살기 좋았지만 제가 가르치던 학생들, 학생들의 부모님들에게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혹독하게 감당해야 하는 입시 지옥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도시에 항상 손에 꼽히는 미시간 앤아버에서 살다오신 분이 계시는데, 미시간 앤아버에 살면 정말 모든 것이 다 완벽한가요? 아닙니다. 미시간에 살면서 겨울마다 고민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고 추운 곳에서 살아야 하는가 매년 고민합니다.

이 땅의 삶은 천국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 천국을 잠시 맛보고 경험하는 곳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순간 회개한 강도에게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paradise)에 있으리라” (눅 23:43). 예수님이 약속하신 낙원 (paradise)는 이 땅에서는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가 죽어서 경험하는 곳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문답 37질문과 답변이 있습니다. 신자가 죽을 때에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는가? 신자가 죽을 때에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중에 들어가고 그 몸은 여전히 그리스도께 연합하여 부활 때까지 무덤에서 쉰다.

영화의 첫번째 단계는 믿는 성도 우리의 죽음입니다. 믿는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이 아니라 복된 죽음입니다.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계 14:13).

두번째 단계는 우리 몸의 부활입니다.

성도의 죽음이 영화의 첫번째 단계이지만, 영화는 우리가 죽는 순간에 바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하나님과 함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낙원에 이르지만 낙원이 곧 영화의 완성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화는 믿는 성도들의 몸의 부활때에 완성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빌 3:20-21).

마지막 날에 우리 육신의 부활과 함께 우리의 낙원에 있는 영혼과 부활된 육체가 결합되어 완전히 영광스러운 상태에 들어가게 하시는 영화는 육체의 부활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화는 육체의 부활과 함께 이루어지며 이 땅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차별이 없이 동일하게 그리고 동시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마지막 완성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이 믿음장이면,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 말씀 우리 몸의 부활이 영화의 구원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영화의 순간에 우리의 이 땅의 썩은 몸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몸, 영광스러운 몸, 강한 몸, 신령한 몸, 영의 몸을 입습니다. 이것이 영화의 비밀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전 15:51-52).

외국인과 나그네 같은 우리의 이 땅의 삶에는 반드시 육체의 연약함이 찾아오고, 육체의 생노병사를 경험합니다. 나이가 들면 주름도 생기고, 노안도 찾아오고, 허리에 문제도 생기고,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도 온갖 종류의 질병이 찾아옵니다. 이 땅에서 영화의 구원은 없습니다. 우리 영화의 구원은 우리 몸의 부활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6-17).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그 날이 있습니다.

세번째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심판의 그 날입니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그날은 언제입니까? 이 땅에 처음 오실 때는 아기 예수로 연약한 몸으로, 비천한 몸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마지막 심판의 그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며, 그 날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 2:12). 우리에게는 그 날이 있습니다. 그날은 우리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우리 예수님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 날입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셔서 믿는 자는 의롭다 선언하시는 칭의가 완성되는 그 날입니다. 그날은 우리 인생이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 25:21, 25:23) 선언하시는 그 날입니다.

마지막 네번째 단계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 영원한 천국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이 되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곳이 바로 우리가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더 나은 본향,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한 성인 영원한 천국입니다. 우리의 영화의 완성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천국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이며, 새 예루살렘이며, 믿는 성도가 양자가 되어 기업으로 상속받을 그 나라입니다. 그날이 성경의 마지막 요한계시록 21장에서 그려주는 그 나라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 완성된 영원한 천국의 모습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 21:1-2).

5.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아프리카에서 일하던 어느 선교사님은 여러 해 동안 많은 열정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 열매를 많이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두 아들이 아프리카 풍토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두 아들을 땅에 묻고 선교사의 아내인 어머니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역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교사님은 슬픔과 비참한 심정을 이기지 못해 끝내 선교를 포기하고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에는 휴가를 얻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 일행이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했을 때 해군 군악대의 연주와 예포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대통령 일행이 내리자 붉은 주단이 깔려졌습니다. 그들이 내리고 다른 승객들이 내렸습니다. 마지막에 선교사님이 힘없이 내렸을 때는 붉은 주단이 걷혀진 다음이었고 해군 군악대도 떠나간 다음이었습니다. 쓸쓸한 바닷가를 거닐며 하나님 앞에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휴가를 얻어서 사냥을 즐기고 돌아오는 대통령 일행은 저렇게 엄청난 환영을 받는데 낯설고 물설은 땅에 내 사랑하는 가족을 묻어두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내게는 환영하는 사람도, 날 반겨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진정 공평한 인생입니까?" 그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종아, 이 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니라. 네가 진정으로 내 진정한 고향에 돌아올 때에 해군 군악대의 아름다운 연주가 아니라 천군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너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붉은 주단이 아니라 내 아들의 몸을 찢어 만든 십자가의 붉은 보혈의 주단을 깔아서 너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네가 잃어버린 그 아들, 네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랑하는 아내가 하늘나라에서 천사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변화된 모습으로 너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종아 아들아, 이것이 네 삶의 마지막이 아니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이 땅의 고향이 아닌 더 나은 본향, 진정한 우리의 본향을 사모하십니까? 이것이 영화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경험하는 마지막 구원이며, 우리 몸의 부활이 이루어지는 구원이며, 우리 예수님이 심판하시는 그 날이며, 이 땅에서 이미 시작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영원한 천국의 그 날입니다. 거기까지 이르러야 이 땅에서 시작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됩니다.

6. 찬송과 기도

이 시간 새찬송가 491장 더 높은 곳을 향하여 함께 찬송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저 높은 곳이 있습니다. 우리의 태어난 고향보다 더 나은 본향이 있습니다. 오 주님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주사 그곳에 있게 하옵소서. 날마다 그 날, 그 나라를 사모하며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 날을 바라보면 날마다 깨어 기도하며, 이 땅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 하나님이 사용하라고 맡겨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사랑하며, 섬기며, 나누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괴롬과 죄가 있지만 빛나고 높은 저 곳을 날마다 바라보며, 때로는 의심의 안개에 있지만 기쁘고 참된 평화가 가득한 그 나라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를 위해서 예배하신 구원의 마지막 완성 영화의 구원을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이 땅의 삶이 곤고하고, 괴롭고, 상처받고, 아프고, 가난하고, 외롭고, 어려울지라도, 우리의 구원의 마지막인 영화 glorification의 그날을 사모하며, 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길 원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죽음이 전부가 아니라, 참 좋은 낙원, 영생의 삶을 사모하며, 우리 몸의 온전한 부활과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 날을 사모하며, 하나님이 지으시고 완성하시는 새 하늘 새 땅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소망하며 안일하고 나태하게 이기적으로 살지 않게 하시며 오직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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