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장 29-30절, 롬 4장 1-8절 구원의 황금사슬 (6) 믿음으로 얻는 의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7-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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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와 설교 음성파일은 맨 아래 왼쪽에 파일이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유투브에 온라인 설교 영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힘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1-8)
1. 하나님의 의를 증오한 마틴 루터의 회심
초대교회의 어거스틴의 회심과 더불어 중세 말의 어거스틴 수도회 소속의 마틴 루터의 회심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루터의 회심은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의 해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 말씀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가장 중요한 단어가 하나님의 의이며, 믿음입니다.
루터 자신의 말을 자세히 들어봅시다.
나는 물론 로마서에 나오는 바울사도의 이해를 위한 특별한 열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 이르기까지 마음에 대한 갖는 차가운 감정이 나를 방해했던 것이 아니고,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말 속의 한 단어가 나를 괴롭혔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의’라는 말을 증오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교사들이 이 단어를 사용하는 관례를 따라서 그들이 말하기를 형식적 의, 혹은 적극적인 의라고 부르는 그 단어를 철학적으로 이해하도록 가르침을 받았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기 때문에 불의한 죄인들을 심판하신다는 뜻으로 그들은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수도사로서 비난받을 것 없이 살았었지만, 극도의 불안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느꼈다. 나의 고행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회유당하실 것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죄인을 심판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 오히려 증오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바울과 끈질기게 씨름하면서 사도바울이 알기를 원하였던 그것을 열렬히 알기를 원하였다. 마침내,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밤낮으로 묵상하던 중 이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는 맥락에 주의하게 되었다. 곧 “그(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기록된 바처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의 맥락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하나님의 의란 의인이 하나님의 선물, 곧 믿음에 의해서 살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그 의미하는 바이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의해서 나타나는데, 곧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기시는 수동적인 의에 의해서 나타난다. 이것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기록되어 있는 바이다“ 여기에서 나는 전적으로 중생하였음과 열린 문을 통해서 천국으로 들어갔음을 느꼈던 것이다. 그곳에서 전체 성경의 다른 얼굴이 새롭게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이전에 ‘하나님의 의’라는 단어에 증오하였던 것만큼이나 이제는 그 역으로 사랑을 품고 가장 달콤한 단어로서 그것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서에 있어서 이 구절은 진정으로 나를 위하여 천국에 이르게 하는 문이었다.
로마서 1장 17절의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의 해석이 루터 개인에게는 가장 달콤한 단어이며 천국에 이르는 문이었습니다. 루터 개인만이 아니라 중세 로마 가톨릭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루터의 개인적인 체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이 성경적인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 이신칭의 (Justification by faith alone)의 가르침이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16세기에 법학 박사학위에서 공부하던 장래가 촉망받던 루터가 길을 가다가 무서운 천둥과 번개를 경험하면서 두려움 속에서 광부인 아버지 한스의 광부들의 수호신 성 안나여 나를 구원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수도사로 서원한 이래로 루터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무서운 그리고 의로운 하나님이었습니다. 루터가 아무리 열심히 수도 생활을 해도, 아무리 회개를 해도, 심지어 그 당시 가장 구원을 얻는데 가장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순례를 해도 마음 속에는 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편할 날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몇 주 동안 함께 살펴보고 있는 구원의 황금사슬 교리를 대하면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구원에 대해서 점점 이해하고 더 확신하게 되십니까? 아니면 더 잘 모르는 길로 가고 있습니까? 로마 가톨릭 교회는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사람이 구원을 확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 만이 아니라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주신 복되고 영광스러운 구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는 구원의 황금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에 있습니다.
2. 구원의 황금사슬: 믿음에서 칭의로
지난 주일에는 구원의 황금 사슬 가운데 구원 얻는 믿음을 다루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 다시 기억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지식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지식을 넘어서 동의와 확신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지식과 동의와 확신을 해도 구원 얻지 못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일시적인 믿음, 역사적인 믿음, 기적을 추구하는 믿음은 가짜 믿음이었습니다. 진짜 믿음은 지식과 동의와 확신과 함께 우리의 삶을 맡기는 신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수단으로 우리에게 의롭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칭의, 영어로는 justification입니다.
로마서 8장 29-30절의 구원의 황금사슬에서 칭의는 어느 위치에 있었습니까? 미리 아시고 예지, 미리 정하시고 예정,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소명,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칭의,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구원의 가장 완성인 영화입니다. 칭의의 구원을 가능케 하는 것이 신앙, 믿음입니다. 성경 전체에 나타난 우리의 구원의 황금사슬인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에서 칭의는 다섯번째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 순서는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입니다. 시간적으로 보면 거의 소명, 중생, 회심과 신앙과 칭의가 한꺼번에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으로 유효하게 부르심의 소명, 소명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적인 생명이 우리에게 심겨지는 거듭남의 중생, 거듭나면 이제는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향하는 회개와 믿음을 회심, 회심한 사람에게 이제는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혜의 선물이 의롭다 하시는 칭의입니다. 칭의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핵심이며, 성경 전체의 구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3. 로마서의 칭의의 구원
칭의의 가르침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신약의 본문이 짧은 갈라디아서와 조금 긴 로마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서 4장 1-8절 말씀도 믿음으로 얻는 칭의의 가르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로마서 4장 1-8절 까지 천천히 읽습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1-8)
이 중요한 본문을 살펴보면서 짧지만 중요한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떻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습니까?
2. 아브라함에게 여겨진 의는 아브라함 자신의 의입니까? 아니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의입니까?
3. 아브라함에게 여겨진 의를 위해서 아브라함은 무슨 일을 했습니까?
4. 직장이나 사업에서 열심히 일해서 얻는 소득은 어떤 의미에서 은혜가 아닙니까?
5. 그렇다면 은혜는 무엇입니까?
6. 다윗은 어떻게 불법을 사함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았습니까?
7. 아브라함과 다윗이 은혜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면, 오늘날도 하나님은 동일한 방법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까?
로마서 4장은 로마서 3장 21절의 “이제는”으로 시작된 위대한 반전의 가르침을 계속 다루고 있습니다. 3장 21-22절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로마서 3장 21절 이전까지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8절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의 죄악된 모습을 고발했습니다. 그 고발의 결론이 로마서 3장 9절입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이것이 인간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예외 없이 모두 다 죄 아래에 있습니다. 모두 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은 죄의 엄청난 영향력 아래에 죄의 오염와 죄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다른가요?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은 다른가요? 아브라함도 다윗도 모두 죄 아래에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세상에는 그 어떤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3장 21절의 이제는을 영어 성경으로 본다면 중요한 접속사 But이 있습니다. But now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루터는 하나님의 의를 처음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그에게 하나님의 의는 복음이 아니라 더욱 더 절망케 하는 하나님의 의였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히 보니 그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 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누가 이 하나님의 의를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의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는 세가지 아주 중요한 성격이 있습니다. 구원 얻는 믿음에는 지식, 동의와 확신, 신뢰가 있듯이 하나님의 의를 얻은 칭의에는 아주 중요한 세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4. 첫째, 칭의는 하나님의 법정적인 선언이다.
로마서 4장 1-3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를 살펴봅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습니까?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까?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지식, 동의와 확신, 그리고 신뢰의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지 못한데 의롭다 하심으로, 의가 아닌데 의로 여겨진 바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의롭다 하심, 의로 여겨진 바의 의미는 전적으로 아브라함이 의로운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의로운 사람으로 여겨진 법정적인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의는 아브라함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칭의에서의 의는 거의 모든 경우에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법적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칭의와 연관된 중요한 구약의 본문을 살펴봅니다.
1) 창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은 어떤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아브라함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에서 살다가, 아버지 데라가 죽고나서 그의 나이 75세가 되었을때 하란을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때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동서남북의 모든 땅과 땅의 티끌 같은 큰 자손을 주겠노라고 언약하셨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자손이 없습니다. 그러니 집에서 길리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다시 언약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 15:3-4). 이번에는 하늘의 뭇 별을 보여주시면서 지금은 단 한명도 없지만 네 자손이 하늘의 뭇 별과 같으리라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여겨주셨다는 것은 의가 아닌데 마치 의가 있는 것 처럼 간주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얻은 의는 믿음에서 난 의입니다.
2) 신명기 25장 1절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의인과 악인이 있습니다.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입니까? 재판하여 의인은 의인으로 선언하고, 악인은 악인으로 선언합니다. 의인과 악인은 법정에서 내리는 선언입니다.
3) 이사야 53장 11절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나의 의로운 종인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십니다. 사실은 의롭지 않은 죄악의 사람을 메시야께서 그 죄악을 친히 담당하셔서 의롭게 만드신다는 법정적인 선언입니다.
그러면, 질문합니다. 믿음으로 얻은 의는 그 사람을 실제로 진짜로 의롭게 만듭니까? 아니면 실제로는 의로운 사람이 아닌데 의로운 사람인 것 처럼 여겨주시는 것입니까? 전자 입니까? 후자입니까? 전자라고 생각하고 로마 가톨릭 천주교인이고, 후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개신교인입니다. 천주교에서는 justificaiton의 번역을 칭의라고 하지 않고 의화라고 합니다. 실제로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개신교는 의롭지 않은 사람을 의로운 사람으로 법적으로 선언하신다는 것입니다. 의화가 맞습니까? 칭의가 맞습니까?
5. 둘째, 칭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믿음으로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이다.
의화가 아니라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칭의의 법정적인 선언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그 많은 죄의 오염와 죄책을 그냥 없다고 하실 수 없습니다. 구약의 복음서 이사야 53장 11절 다시 읽습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수고하신 분이 계십니다.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그 모든 죄악을 친히 담당하신 분이 계십니다. 칭의의 의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그래서 의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가 아닌 우리의 부족하고 더러운 의보다 더 나은 의가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구원을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통해서 의를 추구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가 필요합니다. 의의 수준을 비교해본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 정도의 의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부족한 인간의 의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절대 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의가 필요합니다. 누구의 의 인가요? 하나님이 준비하신 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고난 당하시고, 율법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여 얻은 의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빌립보서 3장 9절 바울은 자신이 가진 의를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거저 주십니다. 다만 믿음으로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 5-6절 우리가 어떻게 의를 얻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는 우리가 노력하고 일해서 얻는 의가 아닙니다. 값없이 전적이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얻는 의의 성격을 일과 일해서 얻는 보수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서 얻는 의가 아니라 다만 우리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지 죄인인데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다 선언을 받습니다.
아브라함 만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겨진 것이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자신도 하나님 앞에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는데 하나님께 의로 여겨심을 받은 사람 사람의 행복을 노래합니다. 로마서 4장 7-8절 말씀 입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워짐을 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로마서 4장 7-8절 말씀은 시편 32편 1-2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누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불법이 사함을 받은 사람, 우리의 죄의 오염과 죄의 책임이 가려워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우리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6. 셋째, 칭의의 근거는 우리의 죄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transfer, imputation)의 거룩한 교환입니다.
의롭지 않은 죄인을 의롭다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칭의의 은혜,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칭의의 은혜가 가능하기 위한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도, 우리의 행위도, 우리의 믿음도 아닙니다. 여기에는 거룩한 교환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transfer, imputation 전가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고난의 생애를 사신 것,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세례를 받으신 것,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하시기 위해서 보혈을 흘리주신 그 놀라운 사랑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이것을 이중 전가라고 합니다.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에게 가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옵니다.
다시 이사야 53장 11-12절 읽습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의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것이 영혼의 수고라고 말합니다. 많은 죄인을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자기 영혼을 스스로 버려 죄인이 죽여야 할 사망을 대신 받으셨고, 로마 시대에 가장 큰 죄인이 받아야 하는 수치의 죽임인 치욕의 십자가에서 범죄자로 헤아림을 받으셨고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죄인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그 수고와 그 수치와 그 죽음과 그 기도는 저와 여러분 같은 죄인이 마땅히 당해야 하는 죄에 대한 댓가의 지불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의로운 의의 행동은 마치 우리의 것 인처럼, 마치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인 것 처럼 여겨졌습니다.
7.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의 칭의에 관한 신앙고백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인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 (1563) 제60문은 믿음으로 얻는 의를 너무나 잘 설명합니다.
제60문 어떻게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와질 수 있습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참된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비록 내 양심이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심각하게 범하였다고 그 계명 중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고 그리고 아직도 죄로 향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나를 정죄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아무런 공로가 없어도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치 내가 죄지은 적이 없고 죄인이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순종하셨듯이 마치 내가 완전하게 순종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의로움과 거룩함을 나의 것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믿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제 61문: 왜 믿음으로만 의로와질 수 있다고 말합니까?
답: 내 믿음이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 의로움, 그리고 거룩함이 하나님 앞에서 나를 의롭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서 내가 의로워지는 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8. 칭의의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젊은 수도사 마틴 루터에게 믿음으로 얻는 칭의는 천국으로 활짝 열린 문이었습니다. 그 활짝 열린 문을 통해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얻은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의가 그의 인생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며, 인생의 전부입니다.
갈라디아서, 로마서, 사도 바울의 서신을 읽을 때마다 사도 바울의 모든 가르침은 믿음으로 얻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간절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2019년 8월 25일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를 방문해서 주일 설교를 인도하면서 빌 3장 4-9절의 말씀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난 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말씀 다시 읽으면서 말씀을 맺기 원합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턴 나 의라”
9. 찬송과 기도
이 시간 새찬송가 216장 (통일 찬송가 356장) 성자의 귀한 몸 함께 찬송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얻은 믿음입니까? 믿음으로 얻은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문으로 들어가는 활짝 열린 문입니다. 칭의는 죄인을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이 준비하여 주신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칭의는 죄인을 의롭다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적인 선언이며,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의이며,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에게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전가되는 거룩하고 놀라운 교환입니다. 이것보다 더 한 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만가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버리신 성자의 귀한 그 몸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은혜로 받습니다. 믿음으로 받습니다. 확신으로 받습니다. 이시간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복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받았으니 우리 일평생 이제는 신실한 믿음으로 살게 하시며, 일평생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도 허물과 죄로, 죄의 오염과 죄의 책임으로 말미암아 어찌 할 수 없는 소망없는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의 말씀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구원얻는 믿음으로 우리의 부족한 허물과 죄는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맡기게 하시며, 일한 것이 없이 믿는 자에게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혀 주시는 그 사랑에 감격하게 하시며, 이 험한 세상 이 복된 믿음이 더욱 커져서 칭의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하시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감사와 찬양과 기쁨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이 어지럽고 복잡하고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우리의 의가 되신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붙들며 살아가게 하옵시며, 험한 세상 믿음으로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힘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1-8)
1. 하나님의 의를 증오한 마틴 루터의 회심
초대교회의 어거스틴의 회심과 더불어 중세 말의 어거스틴 수도회 소속의 마틴 루터의 회심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루터의 회심은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의 해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 말씀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가장 중요한 단어가 하나님의 의이며, 믿음입니다.
루터 자신의 말을 자세히 들어봅시다.
나는 물론 로마서에 나오는 바울사도의 이해를 위한 특별한 열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 이르기까지 마음에 대한 갖는 차가운 감정이 나를 방해했던 것이 아니고,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말 속의 한 단어가 나를 괴롭혔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의’라는 말을 증오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교사들이 이 단어를 사용하는 관례를 따라서 그들이 말하기를 형식적 의, 혹은 적극적인 의라고 부르는 그 단어를 철학적으로 이해하도록 가르침을 받았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기 때문에 불의한 죄인들을 심판하신다는 뜻으로 그들은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수도사로서 비난받을 것 없이 살았었지만, 극도의 불안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느꼈다. 나의 고행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회유당하실 것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죄인을 심판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 오히려 증오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바울과 끈질기게 씨름하면서 사도바울이 알기를 원하였던 그것을 열렬히 알기를 원하였다. 마침내,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밤낮으로 묵상하던 중 이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는 맥락에 주의하게 되었다. 곧 “그(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기록된 바처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의 맥락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하나님의 의란 의인이 하나님의 선물, 곧 믿음에 의해서 살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그 의미하는 바이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의해서 나타나는데, 곧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기시는 수동적인 의에 의해서 나타난다. 이것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기록되어 있는 바이다“ 여기에서 나는 전적으로 중생하였음과 열린 문을 통해서 천국으로 들어갔음을 느꼈던 것이다. 그곳에서 전체 성경의 다른 얼굴이 새롭게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이전에 ‘하나님의 의’라는 단어에 증오하였던 것만큼이나 이제는 그 역으로 사랑을 품고 가장 달콤한 단어로서 그것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서에 있어서 이 구절은 진정으로 나를 위하여 천국에 이르게 하는 문이었다.
로마서 1장 17절의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의 해석이 루터 개인에게는 가장 달콤한 단어이며 천국에 이르는 문이었습니다. 루터 개인만이 아니라 중세 로마 가톨릭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루터의 개인적인 체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이 성경적인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 이신칭의 (Justification by faith alone)의 가르침이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16세기에 법학 박사학위에서 공부하던 장래가 촉망받던 루터가 길을 가다가 무서운 천둥과 번개를 경험하면서 두려움 속에서 광부인 아버지 한스의 광부들의 수호신 성 안나여 나를 구원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수도사로 서원한 이래로 루터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무서운 그리고 의로운 하나님이었습니다. 루터가 아무리 열심히 수도 생활을 해도, 아무리 회개를 해도, 심지어 그 당시 가장 구원을 얻는데 가장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순례를 해도 마음 속에는 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편할 날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몇 주 동안 함께 살펴보고 있는 구원의 황금사슬 교리를 대하면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구원에 대해서 점점 이해하고 더 확신하게 되십니까? 아니면 더 잘 모르는 길로 가고 있습니까? 로마 가톨릭 교회는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사람이 구원을 확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 만이 아니라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주신 복되고 영광스러운 구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는 구원의 황금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에 있습니다.
2. 구원의 황금사슬: 믿음에서 칭의로
지난 주일에는 구원의 황금 사슬 가운데 구원 얻는 믿음을 다루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 다시 기억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지식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지식을 넘어서 동의와 확신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지식과 동의와 확신을 해도 구원 얻지 못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일시적인 믿음, 역사적인 믿음, 기적을 추구하는 믿음은 가짜 믿음이었습니다. 진짜 믿음은 지식과 동의와 확신과 함께 우리의 삶을 맡기는 신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수단으로 우리에게 의롭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칭의, 영어로는 justification입니다.
로마서 8장 29-30절의 구원의 황금사슬에서 칭의는 어느 위치에 있었습니까? 미리 아시고 예지, 미리 정하시고 예정,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소명,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칭의,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구원의 가장 완성인 영화입니다. 칭의의 구원을 가능케 하는 것이 신앙, 믿음입니다. 성경 전체에 나타난 우리의 구원의 황금사슬인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에서 칭의는 다섯번째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 순서는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입니다. 시간적으로 보면 거의 소명, 중생, 회심과 신앙과 칭의가 한꺼번에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으로 유효하게 부르심의 소명, 소명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적인 생명이 우리에게 심겨지는 거듭남의 중생, 거듭나면 이제는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향하는 회개와 믿음을 회심, 회심한 사람에게 이제는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혜의 선물이 의롭다 하시는 칭의입니다. 칭의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핵심이며, 성경 전체의 구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3. 로마서의 칭의의 구원
칭의의 가르침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신약의 본문이 짧은 갈라디아서와 조금 긴 로마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서 4장 1-8절 말씀도 믿음으로 얻는 칭의의 가르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로마서 4장 1-8절 까지 천천히 읽습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1-8)
이 중요한 본문을 살펴보면서 짧지만 중요한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떻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습니까?
2. 아브라함에게 여겨진 의는 아브라함 자신의 의입니까? 아니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의입니까?
3. 아브라함에게 여겨진 의를 위해서 아브라함은 무슨 일을 했습니까?
4. 직장이나 사업에서 열심히 일해서 얻는 소득은 어떤 의미에서 은혜가 아닙니까?
5. 그렇다면 은혜는 무엇입니까?
6. 다윗은 어떻게 불법을 사함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았습니까?
7. 아브라함과 다윗이 은혜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면, 오늘날도 하나님은 동일한 방법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까?
로마서 4장은 로마서 3장 21절의 “이제는”으로 시작된 위대한 반전의 가르침을 계속 다루고 있습니다. 3장 21-22절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로마서 3장 21절 이전까지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8절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의 죄악된 모습을 고발했습니다. 그 고발의 결론이 로마서 3장 9절입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이것이 인간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예외 없이 모두 다 죄 아래에 있습니다. 모두 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은 죄의 엄청난 영향력 아래에 죄의 오염와 죄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다른가요?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은 다른가요? 아브라함도 다윗도 모두 죄 아래에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세상에는 그 어떤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3장 21절의 이제는을 영어 성경으로 본다면 중요한 접속사 But이 있습니다. But now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루터는 하나님의 의를 처음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그에게 하나님의 의는 복음이 아니라 더욱 더 절망케 하는 하나님의 의였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히 보니 그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 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누가 이 하나님의 의를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의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는 세가지 아주 중요한 성격이 있습니다. 구원 얻는 믿음에는 지식, 동의와 확신, 신뢰가 있듯이 하나님의 의를 얻은 칭의에는 아주 중요한 세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4. 첫째, 칭의는 하나님의 법정적인 선언이다.
로마서 4장 1-3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를 살펴봅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습니까?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까?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지식, 동의와 확신, 그리고 신뢰의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지 못한데 의롭다 하심으로, 의가 아닌데 의로 여겨진 바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의롭다 하심, 의로 여겨진 바의 의미는 전적으로 아브라함이 의로운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의로운 사람으로 여겨진 법정적인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의는 아브라함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칭의에서의 의는 거의 모든 경우에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법적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칭의와 연관된 중요한 구약의 본문을 살펴봅니다.
1) 창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은 어떤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아브라함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에서 살다가, 아버지 데라가 죽고나서 그의 나이 75세가 되었을때 하란을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때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동서남북의 모든 땅과 땅의 티끌 같은 큰 자손을 주겠노라고 언약하셨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자손이 없습니다. 그러니 집에서 길리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다시 언약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 15:3-4). 이번에는 하늘의 뭇 별을 보여주시면서 지금은 단 한명도 없지만 네 자손이 하늘의 뭇 별과 같으리라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여겨주셨다는 것은 의가 아닌데 마치 의가 있는 것 처럼 간주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얻은 의는 믿음에서 난 의입니다.
2) 신명기 25장 1절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의인과 악인이 있습니다.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입니까? 재판하여 의인은 의인으로 선언하고, 악인은 악인으로 선언합니다. 의인과 악인은 법정에서 내리는 선언입니다.
3) 이사야 53장 11절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나의 의로운 종인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십니다. 사실은 의롭지 않은 죄악의 사람을 메시야께서 그 죄악을 친히 담당하셔서 의롭게 만드신다는 법정적인 선언입니다.
그러면, 질문합니다. 믿음으로 얻은 의는 그 사람을 실제로 진짜로 의롭게 만듭니까? 아니면 실제로는 의로운 사람이 아닌데 의로운 사람인 것 처럼 여겨주시는 것입니까? 전자 입니까? 후자입니까? 전자라고 생각하고 로마 가톨릭 천주교인이고, 후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개신교인입니다. 천주교에서는 justificaiton의 번역을 칭의라고 하지 않고 의화라고 합니다. 실제로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개신교는 의롭지 않은 사람을 의로운 사람으로 법적으로 선언하신다는 것입니다. 의화가 맞습니까? 칭의가 맞습니까?
5. 둘째, 칭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믿음으로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이다.
의화가 아니라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칭의의 법정적인 선언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그 많은 죄의 오염와 죄책을 그냥 없다고 하실 수 없습니다. 구약의 복음서 이사야 53장 11절 다시 읽습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수고하신 분이 계십니다.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그 모든 죄악을 친히 담당하신 분이 계십니다. 칭의의 의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그래서 의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가 아닌 우리의 부족하고 더러운 의보다 더 나은 의가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구원을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통해서 의를 추구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가 필요합니다. 의의 수준을 비교해본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 정도의 의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부족한 인간의 의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절대 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의가 필요합니다. 누구의 의 인가요? 하나님이 준비하신 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고난 당하시고, 율법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여 얻은 의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빌립보서 3장 9절 바울은 자신이 가진 의를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거저 주십니다. 다만 믿음으로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 5-6절 우리가 어떻게 의를 얻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는 우리가 노력하고 일해서 얻는 의가 아닙니다. 값없이 전적이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얻는 의의 성격을 일과 일해서 얻는 보수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서 얻는 의가 아니라 다만 우리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지 죄인인데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다 선언을 받습니다.
아브라함 만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겨진 것이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자신도 하나님 앞에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는데 하나님께 의로 여겨심을 받은 사람 사람의 행복을 노래합니다. 로마서 4장 7-8절 말씀 입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워짐을 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로마서 4장 7-8절 말씀은 시편 32편 1-2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누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불법이 사함을 받은 사람, 우리의 죄의 오염과 죄의 책임이 가려워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우리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6. 셋째, 칭의의 근거는 우리의 죄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transfer, imputation)의 거룩한 교환입니다.
의롭지 않은 죄인을 의롭다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칭의의 은혜,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칭의의 은혜가 가능하기 위한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도, 우리의 행위도, 우리의 믿음도 아닙니다. 여기에는 거룩한 교환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transfer, imputation 전가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고난의 생애를 사신 것,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세례를 받으신 것,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하시기 위해서 보혈을 흘리주신 그 놀라운 사랑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이것을 이중 전가라고 합니다.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에게 가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옵니다.
다시 이사야 53장 11-12절 읽습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의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것이 영혼의 수고라고 말합니다. 많은 죄인을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자기 영혼을 스스로 버려 죄인이 죽여야 할 사망을 대신 받으셨고, 로마 시대에 가장 큰 죄인이 받아야 하는 수치의 죽임인 치욕의 십자가에서 범죄자로 헤아림을 받으셨고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죄인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그 수고와 그 수치와 그 죽음과 그 기도는 저와 여러분 같은 죄인이 마땅히 당해야 하는 죄에 대한 댓가의 지불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의로운 의의 행동은 마치 우리의 것 인처럼, 마치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인 것 처럼 여겨졌습니다.
7.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의 칭의에 관한 신앙고백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인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 (1563) 제60문은 믿음으로 얻는 의를 너무나 잘 설명합니다.
제60문 어떻게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와질 수 있습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참된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비록 내 양심이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심각하게 범하였다고 그 계명 중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고 그리고 아직도 죄로 향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나를 정죄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아무런 공로가 없어도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치 내가 죄지은 적이 없고 죄인이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순종하셨듯이 마치 내가 완전하게 순종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의로움과 거룩함을 나의 것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믿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제 61문: 왜 믿음으로만 의로와질 수 있다고 말합니까?
답: 내 믿음이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 의로움, 그리고 거룩함이 하나님 앞에서 나를 의롭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서 내가 의로워지는 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8. 칭의의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젊은 수도사 마틴 루터에게 믿음으로 얻는 칭의는 천국으로 활짝 열린 문이었습니다. 그 활짝 열린 문을 통해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얻은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의가 그의 인생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며, 인생의 전부입니다.
갈라디아서, 로마서, 사도 바울의 서신을 읽을 때마다 사도 바울의 모든 가르침은 믿음으로 얻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간절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2019년 8월 25일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를 방문해서 주일 설교를 인도하면서 빌 3장 4-9절의 말씀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난 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말씀 다시 읽으면서 말씀을 맺기 원합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턴 나 의라”
9. 찬송과 기도
이 시간 새찬송가 216장 (통일 찬송가 356장) 성자의 귀한 몸 함께 찬송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얻은 믿음입니까? 믿음으로 얻은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문으로 들어가는 활짝 열린 문입니다. 칭의는 죄인을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이 준비하여 주신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칭의는 죄인을 의롭다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적인 선언이며,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의이며,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에게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전가되는 거룩하고 놀라운 교환입니다. 이것보다 더 한 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만가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버리신 성자의 귀한 그 몸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은혜로 받습니다. 믿음으로 받습니다. 확신으로 받습니다. 이시간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복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받았으니 우리 일평생 이제는 신실한 믿음으로 살게 하시며, 일평생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도 허물과 죄로, 죄의 오염과 죄의 책임으로 말미암아 어찌 할 수 없는 소망없는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의 말씀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구원얻는 믿음으로 우리의 부족한 허물과 죄는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맡기게 하시며, 일한 것이 없이 믿는 자에게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혀 주시는 그 사랑에 감격하게 하시며, 이 험한 세상 이 복된 믿음이 더욱 커져서 칭의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하시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감사와 찬양과 기쁨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이 어지럽고 복잡하고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우리의 의가 되신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붙들며 살아가게 하옵시며, 험한 세상 믿음으로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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