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장 29-30절 마 13장 1-9절 구원의 황금사슬 (5) 구원얻는 믿음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7-05 16:54
Views
1229
주일 예배와 설교 음성파일은 맨 아래 왼쪽에 파일이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유투브에 온라인 설교 영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그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르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 13:1-9)
1. 청년 스펄전의 고민과 회심
신학대학원에 진학을 해서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제가 가진 취미 중의 하나는 기독교 서적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 서적 가운데 특별히 신앙인의 전기를 읽는 것이 저에게 영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신앙인의 전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그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회심했는지의 기록이 있습니다. 신앙인의 회심 이야기를 읽으면 읽고있는 저도 늘 마음이 뜨거워짐을 경험합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어거스틴의 회심체험은 기독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어거스틴의 회심과 함께 오늘은 19세기의 영국의 챨스 스펄전 목사님의 회심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스펄전의 전기를 보면, 그의 나이 20세에 그는 큰 영적인 고민과 고통을 5년동안 지속적으로 경험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나의 세계는 태양 없는 하늘이었다. 하나님 앞에 내 죄가 너무 중하여 아무런 소망이 없어보였다. 나는 기도했다. 내가 얼마나 기도했는지 하나님은 아신다. 그러나 응답은 희미한 별빛만큼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성경 말씀을 부지런히 읽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약속은 성경의 무서운 경고보다 더욱 더 내 마음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누리는 복락이었고 죄인인 내게는 전혀 관계없는 사실임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심연(深淵)속으로 곤두박질해 들어갔다. 내가 느끼는 고통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도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려주었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멸망을 깨닫게 했고, 내가 죄인인 것을 가르쳐 주었으나 내게 복음을 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위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서 기독교 국가에서 살았지만 비록 어린 아이라도 깨달을 수 있고 누구든지 값없이 받을 수 있는 복음의 단순성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는 말씀이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관절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스펄전 목사님은 기독교 가정에서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냥 모태신앙인이 아니라, 아버지는 목사님이시고, 할아버지는 프랑스 개혁교회 위그노 교회의 목사인 대대로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2살때부터 할아버지 목사님의 서재에 있는 온갖 종류의 기독교 서적을 읽으면서 경건하게 자라왔습니다. 그러나 스펄전은 젊은 시절 5년동안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고민하고,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세례도 받고, 하나님 말씀도 들었지만 그가 살고 있는 세계는 마치 태양이 없는 세계처럼 답답하고 소망없고 불안함이 가득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지 알 도리가 없는 것이 답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지 정확히 알고, 정확히 알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믿고 있는 믿음을 확신하고, 믿음을 확신할 뿐만 아니라 그 믿음에 여러분의 삶을 전적으로 맡기고 신뢰하십니까? 주일마다 구원의 황금사슬의 구원의 교리를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지적인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구원, 여러분의 자녀의 구원을 위해서 말씀을 전합니다.
2. 구원의 황금사슬: 회심에서 믿음으로
지난 주일에는 구원의 황금 사슬 가운데 회심을 다루었습니다. 회심은 영어로 Conversion: 방향전환입니다. 우리의 지독한 자기 중심의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여, 하나님을 믿는, 회개와 믿음을 합쳐서 회심이라고 합니다. 회개와 믿음을 합쳐서 회심이라고 한다면, 회심의 회개 다음에는 믿음이 와야합니다. 로마서 8장의 구원의 황금사슬인 예지와 예정, 소명과 칭의, 영화 다섯가지에 더해서 우리 구원의 황금사슬을 순서대로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구원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소중회, 신칭수, 성견영, 그리스도와의 연합.
하나님께서 예지하시고 예정하신 사람이 하나님의 때가 되어 우리를 구원으로 효과적으로 부르시는 부르심의 소명이 있습니다. 소명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신비한 영적인 생명이 우리 안에 심겨지는 중생, 거듭남의 구원을 받습니다. 거듭남의 구원을 받으면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어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던 죄를 버리고 아버지 품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일생 일대의 최초의 회개를 하게 됩니다.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향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 천천히 읽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For 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 – and this not from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 not by works, so that no one can boast.)
우리의 구원은 내가 내 지성과 내 의지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무엇을 통해서 얻습니까? Through faith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해서, 믿음을 수단으로 얻습니다.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너희에게서 너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자랑할 수가 없고 다만 감사하고 찬양할 뿐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얻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데 여기서 말하는 구원얻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내가 믿는다고 말할때 나는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이것은 믿음의 내용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믿음의 내용을 어떻게 믿는가? 구원얻는 참된 믿음에는 반드시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구원얻는 회심에도 세 가지 요소가 있었습니다. 지적인 돌아섬, 감정적인 돌아섬, 의지적인 돌아섬의 세 가지 요소가 있듯이 구원얻는 믿음에도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지식, 둘째는 동의와 확신, 셋째는 신뢰입니다. 구원얻는 믿음에 지식, 동의와 확신, 신뢰가 있다면, 구원얻지 못하는 믿음에는 이 세가지 요소 가운데 무엇인가가 빠져있습니다.
3. 구원얻는 믿음 (Saving Faith): 지식(notitia), 동의와 확신(assensus), 그리고 신뢰 (fiducia)
오늘 본문 마태복음 13장 유명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13장 전체가 하나님 나라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1-9절 오늘 본문 말씀 여러번 읽어본 말씀이지만 다시 한번 읽습니다.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 13:1-9)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보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1. 예수님께 나아온 큰 무리는 누구입니까?
2. 씨를 뿌리는 자는 누구입니까?
3. 길가에 떨어진 씨를 먹은 새들은 누구입니까?
4.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왜 말라버렸습니까?
5. 가시떨기에 떨어진 가시는 무엇입니까?
6. 유일하게 결실한 좋은 땅은 무엇을 말합니까?
성경의 모든 비유의 말씀에 해석이 다 있지는 않지만, 씨 뿌리는 비유에는 예수님의 친절한 해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큰 무리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직접 예수님의 은혜로운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날도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무한히 열려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듣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일차적으로 지금 큰 무리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 오늘도 말씀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 말씀 사역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지는 곳에는 반드시 떨어진 씨를 먹는 악한 새들이 있습니다. 19절 악한 새들이 누구인지 말씀하십니다.“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말씀이 뿌려지는 현장에는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악한 자가 있습니다.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오지만 뿌리가 없으니 말라버립니다. 20-21절 해석을 보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듣지만, 뿌리가 없으니 오래가지 못하고,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 곧 넘어집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를 자라지 못하게 하는 가시가 있습니다. 22절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은혜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가시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입니다. 병행본문 누가복음 8장 14절에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에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가시는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입니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결실하는 좋은 땅이 있습니다. 똑같은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을 받지만 길가, 돌밭,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을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좋은 땅은 23절을 보면 이렇게 해석해주고 있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말씀을 듣고 깨달아 결실하는 자를 누가복음 8장 15절은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누가 결실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가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모든 무리가 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까?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까? 돌밭과도 같은 마음을 가진 자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까?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까?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만일 그들에게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은 구원얻는 믿음인가요? 구원얻는 믿음이 있습니다. 구원을 얻지 못하는 불행한 믿음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구원얻는 참된 믿음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4. 구원얻는 믿음에는 지식(notitia, knowledge)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뿌려진 첫번째 길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그 들은 말씀을 악한 자가 와서 빼앗았습니다. 구원얻는 믿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첫째는 지식입니다. 무엇을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0장 13-17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구원을 얻기 위해서 꼭 필요하고, 우리가 반드시 듣고 알고 배워야 하는 지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믿어야 구원을 얻습니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의 바른 지식이 없이 믿는 믿음이 맹목적인 믿음입니다. 맹신 – 아무것도 모르고 덮어놓고 믿는 믿음입니다.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 중세 유럽의 교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교회에서 태어나서 모든 사람들이 다 교회에서 죽습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는 것입니까?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습니까? 믿음에는 특별한 지식이 필요없다고 가르쳤습니다. 무엇을 믿는지 몰라도 그냥 교회에 붙어있으면 다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제 말이 아니라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년이 넘은 1563년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정리한 믿음에서 “보통의 신자들은 교회에 의해 제안된 신앙의 모든 조항들을 이해할 수 없기에 그들은 그것을 확실한 믿음으로 다 파악할 필요는 없다. 만일 있다면 교회가 가르치는 것을 단지 수긍하고 찬동하는 정도의 맹목적 믿음” (fides implicita)이면 족하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이 단지 교회가 가르치는 것을 수긍하고 찬동하는 정도의 믿음이라면 그 믿음이 맹목적인 믿음입니다.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예배드리면,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말씀 들으면 다 구원을 받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구원얻는 믿음에는 바른 지식이 꼭 필요합니다. 내가 무엇을 믿는지 알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의 기독교 강요 제3권, 2장 7절을 보면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의에 대한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진 약속의 진리에 근거한 것이며, 성령에 의해 우리 정신에 계시되고 우리 마음에 인쳐진 것이다” 믿음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고 있는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배 시간마다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I believe in God, in Jesus Christ,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내가 믿는 내가 믿고 고백하는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이 사도신경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사도신경은 우리가 믿는 내용, 구원얻는 믿음을 가진 자의 가장 기본적인 지식이 담겨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는 믿습니다. 전능하셔서 천지를 만드신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지식입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외아들 –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입고,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서 탄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후에 하늘에 승천하셨고,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지금 앉아 계셔서 이 땅의 교회를 통하여 통치하시다가 이 땅에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재림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전 세계의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 받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몸이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삶이 우리가 죽은 이후에도 끝나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주일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신앙고백이 입술만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의 확실하고 확고한 지식이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있는 견고한 믿음의 내용, 믿음의 지식에 대해서 모호하거나, 흔들리거나, 누군가에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사도신경같은 기초적인 신앙의 지식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구약도 배우고, 신약도 배우고, 구원론 같은 기독교 신앙의 체계적인 교리도 배우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종말에 관한 가르침, 기독교 역사도 배우고, 기독교 2000년 역사 가운데 종교개혁시대와 종교개혁이후에 잘 정리된 신앙의 고백서들인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도르트 신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체계적인 믿음의 지식을 배워야합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읽을 수 있는지도 배우고, 신앙의 가정에서는 어떻게 자녀도 믿음으로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는지도 배워야 합니다.
지난 2주간 바쁜 중에도 강영안 교수님의 <읽는다는 것> 세미나 참석도 하고, 틈틈히 밤 늦도록 책도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얼마나 저의 믿음을 풍성하게 하는지요! 교회를 정의할 때 헬라어로는 에클레시아,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자어로 번역할 때는 교회 (敎會 – 가르칠 교, 모일 회)라는 말로 너무 잘 번역했습니다. 교회는 가르치고 배우는 모임입니다. 교회의 목사는 일평생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 배우는 자이고, 교회의 성도는 일평생 제대로 배워서 가르치는 제자입니다.
4. 구원얻는 참된 믿음에는 동의, 확신(assensus, assurance)이 있습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와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생기고, 지식을 넘어선 동의와 확신이 있습니다. 지식을 넘어서 동의와 확신이 일어나면 사람의 감정에 변화가 생깁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기쁘고, 감사함이 생깁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마음의 동의와 확신과 기쁨이 오래 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이는 믿음이지만 나중에 보니 일시적인 믿음(temporary faith)입니다.
일시적인 믿음은 믿음이 전혀 없거나,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좋은 믿음이지만 문제는 그 좋은 믿음에 아무런 결실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예기치 않게 갑가지 찾아온 환난에 넘어집니다. 믿음에 조그만한 박해가 찾아와도 넘어집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세상이 주는 쾌락인 향락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리고는 마치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됩니다. 일시적인 믿음은 구원얻는 믿음일까요? 아닙니다.
요한복음 6장 66절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 때로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한때는 열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랐지만,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떠나갔습니다. 어떤 믿음일까요? 한때는 믿음의 지식도 있고, 동의와 확신도 있지만 일시적인 믿음입니다. 일시적인 믿음의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엇이 빠졌습니다.
일시적인 믿음과 함께 아주 위험한 믿음도 있습니다. 기적을 추구하는 믿음도 위험하고, 역사적인 믿음도 위험합니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입술로는 주여 주여 믿음을 고백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도 전하는 선지자 역할도 하고, 심지어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도 행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들을 모릅니다. 이들의 믿음은 기적을 추구하는 믿음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에 AD 1545년 3월 8일에 태어나서 AD 1598년 11월19일에 돌아가신 영웅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입니다. 1592년 그의 나이 48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거북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1598년 11월 19일에 노량진 해전에서 전사한 영웅이신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아는 것 처럼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인 사실만 알고 믿는 믿음도 구원얻는 믿음이 아닌 가짜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 말씀에서는 구원얻는 믿음이 아닌 믿음도 있음을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도 귀신같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선 오신 주님이시며 구원자 아신 것도 압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입니다.
일시적인 믿음, 기적을 추구하는 믿음, 역사적인 믿음에는 믿음의 지식, 동의와 확신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믿음에서의 전 인격을 맡기고 의탁하는 신뢰가 없습니다.
5. 구원얻는 참된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 인격적 신뢰 (fiducia, trust)입니다.
지식, 동의와 확신도 필요하지만, 지식과 동의와 확신만 있는 믿음은 맹목적인 믿음, 일시적인 믿음, 역사적인 믿음, 기적을 추구하는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구원얻는 믿음에는 지식과 동의와 확신도 필요하지만, 여기에 우리의 전 인격을 맡기고 의탁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합니다. 좋은 땅은 착하고 좋은 마음입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깨달아 지키어 인내로 결실합니다. 이 믿음에서는 듣고 깨달아 끝까지 인내합니다. 끝까지 인내하여 마침내 열매를 맺습니다.
누가 전 인격적인 신뢰를 할 수 있습니까? 삶이 평안할때도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삶이 어렵고 힘들 때에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건강할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아플 때에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릴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경제적으로 파산의 위기에서도 하나님만 신뢰합니다. 삶의 어느 한 면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아갑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니 예수님처럼 말에서, 삶에서, 사역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열매를 맺어갑니다.
믿음에서의 전 인격적인 신뢰를 시편을 보면, 발견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 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18:1) 고백합니다. 언제 이런 신뢰와 사랑의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사방에서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할 때입니다. 죽음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에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입니다” (시편 18:3-4 사역). 그런데 그때에도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시편 18:29). 죽을 만큼 힘든 순간에도 주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전폭적으로 맡기고 신뢰하고 적군을 향해서 달려가며, 인생의 위기의 담도 뛰어넘습니다.
2차 세계대전중에 독일의 천재적인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가 기록한 편지와 일기의 내용이 강영안 교수님의 <읽는다는 것>에 인용이 되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4:21”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는 사도 바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주는 부탁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록한 1939년 6월 29일 일기였습니다. 본 회퍼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미국의 신학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본 회퍼를 죽음의 위기 가운데 있는 독일이 아니라 안전한 미국에 남겨두려고 합니다. 본 회퍼의 일기장에서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하루 종일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전선에서 휴가를 받아 귀가했다가 모든 예상되는 일을 무릅쓰고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는 군인과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전선에서 도망해선 안된다. 이는 우리가 필요해서도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쓸모가 있어서도 아니다. 우리의 목숨이 그곳에 있으니, 우리가 그 한가운데 있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경건한 어떠한 것이 아니라 다소 치명적인 충동에 훨씬 가깝다. 그러나 하나님은 경건한 감정을 통해서는 물론이고 치명적인 충동을 통해서도 활동하신다. 겨울이 가기 전에 너는 속히 오라. 내가 이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나에게 그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다면, 이는 성경의 오용이 아닐 것이다” 이 말씀을 지금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본 회퍼는 미국에서 다시 죽음의 위기가 있는 독일로 돌아갑니다. 미국에 그냥 머물렀다면 엄청난 신학 작업을 할 수 있었을텐데, 1939년 다시 독일로 돌아가서, 독일 고백교회에서 히틀러 저항운동을 하다가 1945년 4월 9일 2차세계대전 종전 한달을 앞두고 교수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본 회퍼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의탁합니다. 죽음의 위기 가운데 다시 독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염려도 목숨도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가장 본질적인 신뢰, 의지, 의탁입니다.
6.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의 구원얻는 믿음에 관한 신앙고백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인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 (1563) 제21문은 구원얻는 믿음을 잘 설명합니다. 제21문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내가 진실되다고 아는 참된 지식이며, 또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전적인 신뢰는 복음을 통하여 성령께서 내 안에 창조하신 것으로 죄를 용서하고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하여 남들과 함께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순전히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진 은혜의 선물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48) 제14장 구원하는 믿음에 대해서
1. 믿음의 은혜는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자기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은혜는 그들의 마음 안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사역이고, 통상적으로 말씀 사역에 의해 작용하며, 또한 그것과 성례 시행, 기도에 의하여 증가되고 강화된다.
2. 이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인은 말씀 안에 계시된 것이라면 어떠한 것이라도 참되다고 믿는데, 그것은 거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권위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포함된 각 구절을 좇아 행동이 달라지는데, 명령에 순종하고, 두려움에 떨고, 금생과 내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구원하는 믿음의 주된 작용은 은혜 언약의 효력에 의한 칭의, 성화, 영생에 대하여 오직 그리스도만을 인정하고, 영접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3. 이 믿음은 약하거나 강하거나 그 정도가 다른데, 자주 여러 모양으로 공격받으며 약화되기도 하지만, 승리를 얻는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한 확신에 이르도록 여러 면에서 성장하는데,그분은 우리 믿음의 창조주이시고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6. 챨스 스펄전의 회심 이야기 결론
말씀을 시작하면서 언급한 스펄젼은 20살의 회심의 기록을 남기면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는 말씀을 어떻게 깨달아 구원을 얻게 되었지는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그 날, 일요일 아침. 나는 교회로 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나빠 가던 도중에서 계획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큰 눈바람을 보내주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도 그 어둠과 실망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에 한 교회로 가고 있었다. 골목길을 지나서 한 작은 감리교회의 예배당으로 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열 네 다섯명의 사람이 있었다. 목사님은 그 날 아침에 오지 않으셨다. 아마도 눈 때문에 길이 막혔던 것 같다. 결국 매우 말라 보이는 한 남자가 설교를 하러 단 위로 올라갔는데, 그는 구두쟁이이거나 재단사 같은 종류의 직업이 있는 사람 같았다. 이 사람은 정말 어리숙하게 보였다. 그는 자신이 정한 구절에만 집착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그것 이외에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설교의 주제는 이사야 45장 22절의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였다.
그는 단어의 발음조차 정확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구절 속에 나를 위한 한 줄기 희망이 있었다. 그 설교자는 이렇게 시작했다. " 이것은 사실 매우 간단한 구절입니다. 성경은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는 것은 많은 고통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발이나 손을 움직이게 하지 않습니다. 단지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바라보는 것을 배우기 위해 대학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바보 중의 바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누구나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이들조차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오늘의 말씀은 '나를 바라보라' 고 말씀합니다"라고 강조하며 힘주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다음에 그 훌륭한 설교자는 다음의 말씀으로 이어갔다. " 나를 바라보라. 내가 수많은 핏방울을 흘리고 있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죽었고 묻혔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다시 일어났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하늘로 들리움을 받았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있노라. 불쌍한 죄인들이여, 나를 바라보라. 나를 바라보라!"
그는 마치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나에게 눈을 고정시키며 말했다. “젊은이여 당신은 매우 비참해 보이는군요.” 나는 실제로 그랬다. 그 말은 내 마음의 정곡을 찌르는 충격이었다. 그는 계속 말씀했다. "당신은 앞으로도 항상 비참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구절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여전히 비참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이 말씀에 복종한다면 당신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손을 위로 올리고는 "젊은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당신이 할 일은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 뿐입니다."
나는 그때에 즉시 구원을 보았다…나는 수십가지의 일을 하기 위해 기다려 왔지만 '바라보라'는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얼마나 감미로왔는지! 나는 눈이 빠져나갈 정도로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내 구름이 걷히었다. 어둠이 물러가고 태양이 비추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순간 일어나서 그들 중에 가장 열정적인 사람들과도 같이 그리스도의 소중한 피와 그리스도 자신만을 바라보라는 간단한 진리를 찬송하고픈 생각이 절로 났다. 그 누군가 전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이었음을 이제야 느낄 수 있었으며 나는 이제 이렇게 찬송할 수 있다.
7. 찬송과 기도
이 시간 새찬송가 546장 (통일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함께 찬송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구원얻는 믿음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구원은 확실합니까? 이 시간 함께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의 믿음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한지요? 길가와 같이 마음이 단단한 돌처럼 굳은 마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뿌려도 단단한 길가와 같이 말씀을 받지 못하고 악한 자에게 빼앗겨버립니다. 흙이 얇은 돌밭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는 넘어집니다. 가시같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세상의 염려와 근심, 재물의 유혹과 세상의 쾌락에 넘어지고 결실하지 못하는 일시적인 믿음도 있습니다. 구원얻는 참된 믿음에는 확실한 지식이 있습니다. 동의와 확신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내 모든 삶을 맡기고 의탁하는 전 인격적인 신뢰가 있습니다. 이 시간 기도합니다. 밝게 빛나는 태양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반응하게 하시며, 말씀을 듣고 깨달아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소망없는 죄인들을 사랑하시어 믿음의 은혜를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회개와 믿음으로 받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확실하고 확고한 지식이 되게 하시며, 동의하며 확신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를 담아 전 인격적으로 신뢰하며 의탁하며 의지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악한 자가 역사하는 세상에서, 환난과 박해가 일어나는 세상에서, 세상의 염려와 근심과 유혹과 쾌락이 넘치는 세상에서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믿음으로 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게 하시며, 깨닫게 하시며,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구원얻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그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르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 13:1-9)
1. 청년 스펄전의 고민과 회심
신학대학원에 진학을 해서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제가 가진 취미 중의 하나는 기독교 서적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 서적 가운데 특별히 신앙인의 전기를 읽는 것이 저에게 영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신앙인의 전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그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회심했는지의 기록이 있습니다. 신앙인의 회심 이야기를 읽으면 읽고있는 저도 늘 마음이 뜨거워짐을 경험합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어거스틴의 회심체험은 기독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어거스틴의 회심과 함께 오늘은 19세기의 영국의 챨스 스펄전 목사님의 회심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스펄전의 전기를 보면, 그의 나이 20세에 그는 큰 영적인 고민과 고통을 5년동안 지속적으로 경험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나의 세계는 태양 없는 하늘이었다. 하나님 앞에 내 죄가 너무 중하여 아무런 소망이 없어보였다. 나는 기도했다. 내가 얼마나 기도했는지 하나님은 아신다. 그러나 응답은 희미한 별빛만큼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성경 말씀을 부지런히 읽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약속은 성경의 무서운 경고보다 더욱 더 내 마음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누리는 복락이었고 죄인인 내게는 전혀 관계없는 사실임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심연(深淵)속으로 곤두박질해 들어갔다. 내가 느끼는 고통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도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려주었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멸망을 깨닫게 했고, 내가 죄인인 것을 가르쳐 주었으나 내게 복음을 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위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서 기독교 국가에서 살았지만 비록 어린 아이라도 깨달을 수 있고 누구든지 값없이 받을 수 있는 복음의 단순성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는 말씀이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관절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스펄전 목사님은 기독교 가정에서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냥 모태신앙인이 아니라, 아버지는 목사님이시고, 할아버지는 프랑스 개혁교회 위그노 교회의 목사인 대대로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2살때부터 할아버지 목사님의 서재에 있는 온갖 종류의 기독교 서적을 읽으면서 경건하게 자라왔습니다. 그러나 스펄전은 젊은 시절 5년동안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고민하고,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세례도 받고, 하나님 말씀도 들었지만 그가 살고 있는 세계는 마치 태양이 없는 세계처럼 답답하고 소망없고 불안함이 가득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지 알 도리가 없는 것이 답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지 정확히 알고, 정확히 알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믿고 있는 믿음을 확신하고, 믿음을 확신할 뿐만 아니라 그 믿음에 여러분의 삶을 전적으로 맡기고 신뢰하십니까? 주일마다 구원의 황금사슬의 구원의 교리를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지적인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구원, 여러분의 자녀의 구원을 위해서 말씀을 전합니다.
2. 구원의 황금사슬: 회심에서 믿음으로
지난 주일에는 구원의 황금 사슬 가운데 회심을 다루었습니다. 회심은 영어로 Conversion: 방향전환입니다. 우리의 지독한 자기 중심의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여, 하나님을 믿는, 회개와 믿음을 합쳐서 회심이라고 합니다. 회개와 믿음을 합쳐서 회심이라고 한다면, 회심의 회개 다음에는 믿음이 와야합니다. 로마서 8장의 구원의 황금사슬인 예지와 예정, 소명과 칭의, 영화 다섯가지에 더해서 우리 구원의 황금사슬을 순서대로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구원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소중회, 신칭수, 성견영, 그리스도와의 연합.
하나님께서 예지하시고 예정하신 사람이 하나님의 때가 되어 우리를 구원으로 효과적으로 부르시는 부르심의 소명이 있습니다. 소명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신비한 영적인 생명이 우리 안에 심겨지는 중생, 거듭남의 구원을 받습니다. 거듭남의 구원을 받으면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어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던 죄를 버리고 아버지 품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일생 일대의 최초의 회개를 하게 됩니다.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향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 천천히 읽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For 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 – and this not from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 not by works, so that no one can boast.)
우리의 구원은 내가 내 지성과 내 의지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무엇을 통해서 얻습니까? Through faith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해서, 믿음을 수단으로 얻습니다.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너희에게서 너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자랑할 수가 없고 다만 감사하고 찬양할 뿐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얻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데 여기서 말하는 구원얻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내가 믿는다고 말할때 나는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이것은 믿음의 내용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믿음의 내용을 어떻게 믿는가? 구원얻는 참된 믿음에는 반드시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구원얻는 회심에도 세 가지 요소가 있었습니다. 지적인 돌아섬, 감정적인 돌아섬, 의지적인 돌아섬의 세 가지 요소가 있듯이 구원얻는 믿음에도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지식, 둘째는 동의와 확신, 셋째는 신뢰입니다. 구원얻는 믿음에 지식, 동의와 확신, 신뢰가 있다면, 구원얻지 못하는 믿음에는 이 세가지 요소 가운데 무엇인가가 빠져있습니다.
3. 구원얻는 믿음 (Saving Faith): 지식(notitia), 동의와 확신(assensus), 그리고 신뢰 (fiducia)
오늘 본문 마태복음 13장 유명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13장 전체가 하나님 나라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1-9절 오늘 본문 말씀 여러번 읽어본 말씀이지만 다시 한번 읽습니다.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 13:1-9)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보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1. 예수님께 나아온 큰 무리는 누구입니까?
2. 씨를 뿌리는 자는 누구입니까?
3. 길가에 떨어진 씨를 먹은 새들은 누구입니까?
4.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왜 말라버렸습니까?
5. 가시떨기에 떨어진 가시는 무엇입니까?
6. 유일하게 결실한 좋은 땅은 무엇을 말합니까?
성경의 모든 비유의 말씀에 해석이 다 있지는 않지만, 씨 뿌리는 비유에는 예수님의 친절한 해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큰 무리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직접 예수님의 은혜로운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날도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무한히 열려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듣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일차적으로 지금 큰 무리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 오늘도 말씀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 말씀 사역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지는 곳에는 반드시 떨어진 씨를 먹는 악한 새들이 있습니다. 19절 악한 새들이 누구인지 말씀하십니다.“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말씀이 뿌려지는 현장에는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악한 자가 있습니다.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오지만 뿌리가 없으니 말라버립니다. 20-21절 해석을 보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듣지만, 뿌리가 없으니 오래가지 못하고,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 곧 넘어집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를 자라지 못하게 하는 가시가 있습니다. 22절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은혜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가시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입니다. 병행본문 누가복음 8장 14절에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에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가시는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입니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결실하는 좋은 땅이 있습니다. 똑같은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을 받지만 길가, 돌밭,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을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좋은 땅은 23절을 보면 이렇게 해석해주고 있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말씀을 듣고 깨달아 결실하는 자를 누가복음 8장 15절은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누가 결실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가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모든 무리가 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까?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까? 돌밭과도 같은 마음을 가진 자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까?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까?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만일 그들에게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은 구원얻는 믿음인가요? 구원얻는 믿음이 있습니다. 구원을 얻지 못하는 불행한 믿음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구원얻는 참된 믿음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4. 구원얻는 믿음에는 지식(notitia, knowledge)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뿌려진 첫번째 길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그 들은 말씀을 악한 자가 와서 빼앗았습니다. 구원얻는 믿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첫째는 지식입니다. 무엇을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0장 13-17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구원을 얻기 위해서 꼭 필요하고, 우리가 반드시 듣고 알고 배워야 하는 지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믿어야 구원을 얻습니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의 바른 지식이 없이 믿는 믿음이 맹목적인 믿음입니다. 맹신 – 아무것도 모르고 덮어놓고 믿는 믿음입니다.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 중세 유럽의 교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교회에서 태어나서 모든 사람들이 다 교회에서 죽습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는 것입니까?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습니까? 믿음에는 특별한 지식이 필요없다고 가르쳤습니다. 무엇을 믿는지 몰라도 그냥 교회에 붙어있으면 다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제 말이 아니라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년이 넘은 1563년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정리한 믿음에서 “보통의 신자들은 교회에 의해 제안된 신앙의 모든 조항들을 이해할 수 없기에 그들은 그것을 확실한 믿음으로 다 파악할 필요는 없다. 만일 있다면 교회가 가르치는 것을 단지 수긍하고 찬동하는 정도의 맹목적 믿음” (fides implicita)이면 족하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이 단지 교회가 가르치는 것을 수긍하고 찬동하는 정도의 믿음이라면 그 믿음이 맹목적인 믿음입니다.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예배드리면,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말씀 들으면 다 구원을 받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구원얻는 믿음에는 바른 지식이 꼭 필요합니다. 내가 무엇을 믿는지 알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의 기독교 강요 제3권, 2장 7절을 보면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의에 대한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진 약속의 진리에 근거한 것이며, 성령에 의해 우리 정신에 계시되고 우리 마음에 인쳐진 것이다” 믿음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고 있는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배 시간마다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I believe in God, in Jesus Christ,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내가 믿는 내가 믿고 고백하는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이 사도신경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사도신경은 우리가 믿는 내용, 구원얻는 믿음을 가진 자의 가장 기본적인 지식이 담겨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는 믿습니다. 전능하셔서 천지를 만드신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지식입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외아들 –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입고,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서 탄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후에 하늘에 승천하셨고,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지금 앉아 계셔서 이 땅의 교회를 통하여 통치하시다가 이 땅에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재림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전 세계의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 받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몸이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삶이 우리가 죽은 이후에도 끝나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주일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신앙고백이 입술만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의 확실하고 확고한 지식이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있는 견고한 믿음의 내용, 믿음의 지식에 대해서 모호하거나, 흔들리거나, 누군가에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사도신경같은 기초적인 신앙의 지식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구약도 배우고, 신약도 배우고, 구원론 같은 기독교 신앙의 체계적인 교리도 배우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종말에 관한 가르침, 기독교 역사도 배우고, 기독교 2000년 역사 가운데 종교개혁시대와 종교개혁이후에 잘 정리된 신앙의 고백서들인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도르트 신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체계적인 믿음의 지식을 배워야합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읽을 수 있는지도 배우고, 신앙의 가정에서는 어떻게 자녀도 믿음으로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는지도 배워야 합니다.
지난 2주간 바쁜 중에도 강영안 교수님의 <읽는다는 것> 세미나 참석도 하고, 틈틈히 밤 늦도록 책도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얼마나 저의 믿음을 풍성하게 하는지요! 교회를 정의할 때 헬라어로는 에클레시아,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자어로 번역할 때는 교회 (敎會 – 가르칠 교, 모일 회)라는 말로 너무 잘 번역했습니다. 교회는 가르치고 배우는 모임입니다. 교회의 목사는 일평생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 배우는 자이고, 교회의 성도는 일평생 제대로 배워서 가르치는 제자입니다.
4. 구원얻는 참된 믿음에는 동의, 확신(assensus, assurance)이 있습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와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생기고, 지식을 넘어선 동의와 확신이 있습니다. 지식을 넘어서 동의와 확신이 일어나면 사람의 감정에 변화가 생깁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기쁘고, 감사함이 생깁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마음의 동의와 확신과 기쁨이 오래 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이는 믿음이지만 나중에 보니 일시적인 믿음(temporary faith)입니다.
일시적인 믿음은 믿음이 전혀 없거나,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좋은 믿음이지만 문제는 그 좋은 믿음에 아무런 결실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예기치 않게 갑가지 찾아온 환난에 넘어집니다. 믿음에 조그만한 박해가 찾아와도 넘어집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세상이 주는 쾌락인 향락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리고는 마치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됩니다. 일시적인 믿음은 구원얻는 믿음일까요? 아닙니다.
요한복음 6장 66절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 때로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한때는 열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랐지만,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떠나갔습니다. 어떤 믿음일까요? 한때는 믿음의 지식도 있고, 동의와 확신도 있지만 일시적인 믿음입니다. 일시적인 믿음의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엇이 빠졌습니다.
일시적인 믿음과 함께 아주 위험한 믿음도 있습니다. 기적을 추구하는 믿음도 위험하고, 역사적인 믿음도 위험합니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입술로는 주여 주여 믿음을 고백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도 전하는 선지자 역할도 하고, 심지어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도 행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들을 모릅니다. 이들의 믿음은 기적을 추구하는 믿음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에 AD 1545년 3월 8일에 태어나서 AD 1598년 11월19일에 돌아가신 영웅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입니다. 1592년 그의 나이 48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거북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1598년 11월 19일에 노량진 해전에서 전사한 영웅이신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아는 것 처럼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인 사실만 알고 믿는 믿음도 구원얻는 믿음이 아닌 가짜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 말씀에서는 구원얻는 믿음이 아닌 믿음도 있음을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도 귀신같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선 오신 주님이시며 구원자 아신 것도 압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입니다.
일시적인 믿음, 기적을 추구하는 믿음, 역사적인 믿음에는 믿음의 지식, 동의와 확신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믿음에서의 전 인격을 맡기고 의탁하는 신뢰가 없습니다.
5. 구원얻는 참된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 인격적 신뢰 (fiducia, trust)입니다.
지식, 동의와 확신도 필요하지만, 지식과 동의와 확신만 있는 믿음은 맹목적인 믿음, 일시적인 믿음, 역사적인 믿음, 기적을 추구하는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구원얻는 믿음에는 지식과 동의와 확신도 필요하지만, 여기에 우리의 전 인격을 맡기고 의탁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합니다. 좋은 땅은 착하고 좋은 마음입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깨달아 지키어 인내로 결실합니다. 이 믿음에서는 듣고 깨달아 끝까지 인내합니다. 끝까지 인내하여 마침내 열매를 맺습니다.
누가 전 인격적인 신뢰를 할 수 있습니까? 삶이 평안할때도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삶이 어렵고 힘들 때에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건강할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아플 때에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릴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경제적으로 파산의 위기에서도 하나님만 신뢰합니다. 삶의 어느 한 면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아갑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니 예수님처럼 말에서, 삶에서, 사역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열매를 맺어갑니다.
믿음에서의 전 인격적인 신뢰를 시편을 보면, 발견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 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18:1) 고백합니다. 언제 이런 신뢰와 사랑의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사방에서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할 때입니다. 죽음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에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입니다” (시편 18:3-4 사역). 그런데 그때에도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시편 18:29). 죽을 만큼 힘든 순간에도 주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전폭적으로 맡기고 신뢰하고 적군을 향해서 달려가며, 인생의 위기의 담도 뛰어넘습니다.
2차 세계대전중에 독일의 천재적인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가 기록한 편지와 일기의 내용이 강영안 교수님의 <읽는다는 것>에 인용이 되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4:21”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는 사도 바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주는 부탁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록한 1939년 6월 29일 일기였습니다. 본 회퍼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미국의 신학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본 회퍼를 죽음의 위기 가운데 있는 독일이 아니라 안전한 미국에 남겨두려고 합니다. 본 회퍼의 일기장에서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하루 종일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전선에서 휴가를 받아 귀가했다가 모든 예상되는 일을 무릅쓰고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는 군인과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전선에서 도망해선 안된다. 이는 우리가 필요해서도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쓸모가 있어서도 아니다. 우리의 목숨이 그곳에 있으니, 우리가 그 한가운데 있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경건한 어떠한 것이 아니라 다소 치명적인 충동에 훨씬 가깝다. 그러나 하나님은 경건한 감정을 통해서는 물론이고 치명적인 충동을 통해서도 활동하신다. 겨울이 가기 전에 너는 속히 오라. 내가 이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나에게 그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다면, 이는 성경의 오용이 아닐 것이다” 이 말씀을 지금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본 회퍼는 미국에서 다시 죽음의 위기가 있는 독일로 돌아갑니다. 미국에 그냥 머물렀다면 엄청난 신학 작업을 할 수 있었을텐데, 1939년 다시 독일로 돌아가서, 독일 고백교회에서 히틀러 저항운동을 하다가 1945년 4월 9일 2차세계대전 종전 한달을 앞두고 교수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본 회퍼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의탁합니다. 죽음의 위기 가운데 다시 독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염려도 목숨도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가장 본질적인 신뢰, 의지, 의탁입니다.
6.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의 구원얻는 믿음에 관한 신앙고백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인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 (1563) 제21문은 구원얻는 믿음을 잘 설명합니다. 제21문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내가 진실되다고 아는 참된 지식이며, 또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전적인 신뢰는 복음을 통하여 성령께서 내 안에 창조하신 것으로 죄를 용서하고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하여 남들과 함께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순전히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진 은혜의 선물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48) 제14장 구원하는 믿음에 대해서
1. 믿음의 은혜는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자기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은혜는 그들의 마음 안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사역이고, 통상적으로 말씀 사역에 의해 작용하며, 또한 그것과 성례 시행, 기도에 의하여 증가되고 강화된다.
2. 이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인은 말씀 안에 계시된 것이라면 어떠한 것이라도 참되다고 믿는데, 그것은 거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권위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포함된 각 구절을 좇아 행동이 달라지는데, 명령에 순종하고, 두려움에 떨고, 금생과 내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구원하는 믿음의 주된 작용은 은혜 언약의 효력에 의한 칭의, 성화, 영생에 대하여 오직 그리스도만을 인정하고, 영접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3. 이 믿음은 약하거나 강하거나 그 정도가 다른데, 자주 여러 모양으로 공격받으며 약화되기도 하지만, 승리를 얻는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한 확신에 이르도록 여러 면에서 성장하는데,그분은 우리 믿음의 창조주이시고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6. 챨스 스펄전의 회심 이야기 결론
말씀을 시작하면서 언급한 스펄젼은 20살의 회심의 기록을 남기면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는 말씀을 어떻게 깨달아 구원을 얻게 되었지는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그 날, 일요일 아침. 나는 교회로 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나빠 가던 도중에서 계획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큰 눈바람을 보내주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도 그 어둠과 실망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에 한 교회로 가고 있었다. 골목길을 지나서 한 작은 감리교회의 예배당으로 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열 네 다섯명의 사람이 있었다. 목사님은 그 날 아침에 오지 않으셨다. 아마도 눈 때문에 길이 막혔던 것 같다. 결국 매우 말라 보이는 한 남자가 설교를 하러 단 위로 올라갔는데, 그는 구두쟁이이거나 재단사 같은 종류의 직업이 있는 사람 같았다. 이 사람은 정말 어리숙하게 보였다. 그는 자신이 정한 구절에만 집착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그것 이외에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설교의 주제는 이사야 45장 22절의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였다.
그는 단어의 발음조차 정확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구절 속에 나를 위한 한 줄기 희망이 있었다. 그 설교자는 이렇게 시작했다. " 이것은 사실 매우 간단한 구절입니다. 성경은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는 것은 많은 고통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발이나 손을 움직이게 하지 않습니다. 단지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바라보는 것을 배우기 위해 대학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바보 중의 바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누구나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이들조차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오늘의 말씀은 '나를 바라보라' 고 말씀합니다"라고 강조하며 힘주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다음에 그 훌륭한 설교자는 다음의 말씀으로 이어갔다. " 나를 바라보라. 내가 수많은 핏방울을 흘리고 있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죽었고 묻혔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다시 일어났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하늘로 들리움을 받았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있노라. 불쌍한 죄인들이여, 나를 바라보라. 나를 바라보라!"
그는 마치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나에게 눈을 고정시키며 말했다. “젊은이여 당신은 매우 비참해 보이는군요.” 나는 실제로 그랬다. 그 말은 내 마음의 정곡을 찌르는 충격이었다. 그는 계속 말씀했다. "당신은 앞으로도 항상 비참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구절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여전히 비참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이 말씀에 복종한다면 당신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손을 위로 올리고는 "젊은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당신이 할 일은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 뿐입니다."
나는 그때에 즉시 구원을 보았다…나는 수십가지의 일을 하기 위해 기다려 왔지만 '바라보라'는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얼마나 감미로왔는지! 나는 눈이 빠져나갈 정도로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내 구름이 걷히었다. 어둠이 물러가고 태양이 비추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순간 일어나서 그들 중에 가장 열정적인 사람들과도 같이 그리스도의 소중한 피와 그리스도 자신만을 바라보라는 간단한 진리를 찬송하고픈 생각이 절로 났다. 그 누군가 전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이었음을 이제야 느낄 수 있었으며 나는 이제 이렇게 찬송할 수 있다.
7. 찬송과 기도
이 시간 새찬송가 546장 (통일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함께 찬송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구원얻는 믿음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구원은 확실합니까? 이 시간 함께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의 믿음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한지요? 길가와 같이 마음이 단단한 돌처럼 굳은 마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뿌려도 단단한 길가와 같이 말씀을 받지 못하고 악한 자에게 빼앗겨버립니다. 흙이 얇은 돌밭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는 넘어집니다. 가시같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세상의 염려와 근심, 재물의 유혹과 세상의 쾌락에 넘어지고 결실하지 못하는 일시적인 믿음도 있습니다. 구원얻는 참된 믿음에는 확실한 지식이 있습니다. 동의와 확신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내 모든 삶을 맡기고 의탁하는 전 인격적인 신뢰가 있습니다. 이 시간 기도합니다. 밝게 빛나는 태양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반응하게 하시며, 말씀을 듣고 깨달아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소망없는 죄인들을 사랑하시어 믿음의 은혜를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회개와 믿음으로 받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확실하고 확고한 지식이 되게 하시며, 동의하며 확신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를 담아 전 인격적으로 신뢰하며 의탁하며 의지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악한 자가 역사하는 세상에서, 환난과 박해가 일어나는 세상에서, 세상의 염려와 근심과 유혹과 쾌락이 넘치는 세상에서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믿음으로 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게 하시며, 깨닫게 하시며,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구원얻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Total Reply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