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장 29-30절, 눅 15장 11-24절 구원의 황금사슬 (4) 돌아오라 (구원의 회심)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6-2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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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와 설교 음성파일은 맨 아래 왼쪽에 파일이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Youtube에 설교 동영상을 올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29-30)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눅 15:11-24).
1. 6 25 한국 전쟁 70주년 조국으로 돌아온 147명의 유해
지난 주 목요일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전사한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가 북한에서 하와이로, 하와이에서 다시 조국으로 70년만에 돌아왔습니다. 동시에 미군 전사자 유해 6구를 미국으로 봉송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오는 전사자를 위해서 한국에서는 영웅에게, Salute to the Heroes라는 주제로 한국전쟁 70주년 기념 행사를 가졌습니다. 한국 전쟁 70주년 기념 행사를 보면서 조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70년만에 조국으로 돌아오는 유해를 보면서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요.
“오랜 시간 먼 길 거쳐 오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히 호위하겠습니다.” 625전쟁 참전 조종사의 손자 조종사의 특별한 엄호 비행이 있었습니다. 돌아온 비행기를 배경으로 전쟁 참전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70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147명의 여정을 그린 잘 준비된 퍼포먼스와 드론으로 표시된 태극기가 정말 멋있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온 147명의 전우들과 같은 미 7사단 17연대 소속으로 참전한 류영봉 이등중사의 감동적인 복귀신고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전쟁에 참여하여 군인을 파병한 유엔의 22개국 정상의 메시지와 20대 초반의 친구같은 나이의 유승호의 헌정사를 듣고 보면서 많은 감동도 받았습니다.
유승호의 헌정사 가운데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친구여, 그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어떻게 건뎠습니까? 매일 밤마다 찾아오는 두려움은 어찌 이겨내셨습니까? 포탄처럼 날아드는 번뇌와 서글픔은 또 어찌 삼키셨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순간엔, 누굴 떠올리며 눈을 감으셨습니까?”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던 것 처럼, 우리도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70년만에 조국으로 돌아오는 147구의 전사자 유해를 보면서, 그리고 비록 지금은 산화하였지만 조국의 평화을 위해서 아주 젊은 나이에 전사한 그들을 최대한 예우하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코로나 시대에 조국의 국격이 많이 향상된 자부심과 함께, 전쟁 7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분단된 조국의 안타가운 현실이 마음 아팠습니다.
2. 구원의 돌아옴 회심 (conversion): 회개(repentance)와 믿음(belief)
조국으로 돌와온 147명의 유해를 보면서 오늘 전할 말씀의 주제인 구원의 돌아옴 혹은 돌이킴의 회심의 주제가 생각났습니다. 우리도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구원을 회심이라고 합니다. 회심은 영어로는 conversion이라고 합니다. 회심은 구원의 황금사슬 가운데 예지, 예정, 소명, 칭의, 영화 가운데 소명과 칭의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면 소명과 칭의 사이에 지난 주일에 배운 중요한 구원의 황금사슬은 무엇이었습니까?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구원이 있습니다.
회심 Conversion은 인생의 방향전환입니다. 회심 이전에 영적으로 타락한 인생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이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기가 오직 자기 사랑입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자기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고, 거듭나기 전의 사람의 삶의 목표는 오직 자신, 자기 자신에서 조금 넓히면 자기 가족입니다. 그런데 오직 자기만 사랑하며 살아가던 사람이 이제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놀라운 방향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돌아옴, 돌이킴의 회심입니다.
성경에 회심이라는 말은 없지만, 우리는 회심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회심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회심의 일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것입니다. 불교에는 회심가, 회심곡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찬송가, 복음성가를 부르는데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에 달려있으니, 허랑방탕하게 살던 사람이 자기 마음을 고쳐 먹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노래가 회심가, 회심곡입니다.
기독교의 구원론에서 회심은 단순히 자기 마음을 고쳐 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에서 있어서 회심은 일생 일대의 최초의 회개 (repentance)와 믿음 (faith)을 합쳐서 회심 (conversion)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회심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인간 스스로 회심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회심케 해 주셔야 하는 것입니까?
구원의 황금사슬에서 예지와 예정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지와 예정된 사람을 구원으로 효과적으로 소명, 부르시는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영적으로 죽어있던 사람을 중생, 거듭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명과 중생을 받은 사람만이 회개와 믿음으로 자신의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방향을 전환할 수 있으니, 회심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며,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께 방향을 전환해서 돌아가는 일이니 우리의 일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끊임없이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돌아오라는 말씀을 듣고 누가 돌아와야 합니까? 우리가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되 우리의 죄에서 돌이켜 아버지께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행위가 바로 회심의 시작인 회개입니다.
구약성경 요엘 선지서 2장 12-14절 말씀은 바벨론 포로 전 남 유다 백성들을 향한 회개의 촉구입니다. 구약의 파노라마에서 배운 선지자 왈: 회개하라, 아니하면 쫓겨나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구약의 5권의 대 선지서와 12권의 소 선지서의 말씀의 핵심은 돌아오라,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회개의 말씀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서 말라기 3장 7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돌아오라, 내게로 돌아오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질문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3.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의 회개: 지적, 감정적, 의지적 회개
오늘 본문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 탕부 하나님의 비유를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지,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를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2020년 시작하면서 설교한 누가복음 15장 말씀의 두 편의 설교 말씀을 기억하며, 참된 회개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세 가지 요소를 발견합니다. 누가복음 15장 17-2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일어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구원의 황금 사슬의 윌리엄 퍼킨슨, 당신의 거듭남 확실합니까?의 스티븐 차녹, 회개의 경종: 돌이켜 회개하라 (An Alarm to the Unconverted)의 조셉 얼라인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성경적인 구원의 교리를 강조한 영국의 17세기 청교도들이었습니다. 영국의 빛나던 시대는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간 시대였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빛나던 영적인 시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볼 수 있는 산위의 동네, 언덕위의 도시를 세우고자 구원에 있어서 회심을 강조했던 초기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이었습 니다. 이들은 구원을 피상적으로 가볍게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구원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했고, 가르쳤고, 그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아버지께 돌아가려는 둘째 아들의 고백을 자세히 살펴보면 참된 회개에서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세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첫째, 참된 회개에는 지적인 돌아섬이 있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둘째 아들은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져서야 자신의 현재의 형편이 얼마나 비참한지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비참한 형편과 달리 아버지의 집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얼마나 아버지의 은혜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합니다. 자신이 아버지의 유산을 달라해서, 아버지를 떠난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깨우칩니다. 회개는 생각의 변화입니다. 비로서 비정상적인 생각에서 돌이켜 정상적인 생각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왜 아버지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생각을 했을까요? 아버지를 떠나기 전에는 아버지가 얼마나 은혜로운 잘 몰랐습니다. 심지어 아버지 집에서 일하는 품꾼들도 넉넉하게 먹여주시는 아버지가 얼마나 좋으신 아버지인지 집 떠나서 고생을 해 보니 비로소 알게되었습니다.
딤후 2:24-26절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에게 주시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NIV 영어성경을 보면 25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Those who oppose him he must gently instruct, in the hope that God will grant them repentance leading them to a knowledge of the truth”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진리의 지식에 이르는 회개를 주실 소망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온유함으로 가르치라. 회개는 그냥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그냥 잘못했어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는 나의 과거의 생각과 지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고 생각을 바꾸는 지적인 돌아섬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날마다 바꾸는 사람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꼰대입니다. 꼰대 들어보셨습니까? 꼰대라는 말은 원래 아버지나 선생님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은어였지만, 최근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꼰대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합니다. 자신의 정치와 이념성향이 항상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 하루 불안하고 힘든 청년들에게 나의 관점이 옳고 너의 관점은 틀리다는 흑백논리로 젊은이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충고하고 지적합니다.
회개한 믿음의 사람의 생각은 마치 꼰대가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이전에는 고집만 부리던 사람이 깨닫는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과거에는 생각이 강팍한 사람이 이제는 언제든지 생각을 바꾸고 고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뵙는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생각하고 주장한 것이 잘못된 것이 얼마나 많을까요!!!
둘째, 참된 회개에는 감정적인 돌아섬이 있습니다.
18-19절 둘째 아들의 생각만 변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마음과 그의 입이 변했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둘째 아들의 마음에는 자신이 아버지께 지은 죄에 대한 안타까운 슬픔과 후회가 있습니다. 참된 회개에는 감정의 변화가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안타까워하고, 그 안타까움을 입술로 고백합니다. 참된 회개가 마음에 일어나면 눈물이 나고 콧물도 납니다.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께 돌아온 분들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찬양을 부르는 중에, 하나님 말씀을 듣는 중에, 기도하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 흘리는 눈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회개의 은혜입니다. 한홍 목사님의 칼럼을 읽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찾아오라는 러시아의 한 동화를 소개하셨는데 인상이 깊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회개하는 사람의 눈물입니다.
고후 7:9-11절을 보면 고린도 교회의 회개를 경험한 사도 바울의 기록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사도 바울은 10절에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말씀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세상적인 슬픔과 후회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인생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스트레스 가득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죄인인지 깨닫는 경건한 슬픔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서 떠나 죄악 가운데 있는지 편지를 통해서 책망했습니다. 그 책망의 편지를 받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근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근심이 하나님 앞에 회개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구원에 이르는 회개에 이른 고린도교회의 열매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범한 죄에 대해서 얼마나 간절하게 되었는지, 얼마나 분하게 느끼는지, 얼마나 두렵게 만들었는지 회개하였습니다.
셋째, 참된 회개에는 의지적인 돌아섬이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생각만하고, 마음에 죄를 뉘우치고 눈물 흘리면서 후회만 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중요한 요소는 의지적인 돌아섬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회개에서 있어서 의지는 죄를 미워하고, 슬퍼하고, 뉘우치는 것만이 아니라 죄를 끊어내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잘못된 것이며, 잘못된 것을 슬퍼해도, 죄를 끊어내지 않으면 회개가 아닙니다. 일어나야 겠다 생각만 하지 않습니다. 그냥 슬픔 가운데 주저 앉아 있지 않습니다.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방향을 전환해서 돌아가니라.
4. 전인격적인 회개: 후회와 회개의 차이점
회개의 지적 돌아섬, 감정적 돌아섬, 의지적인 돌아섬의 세 가지 요소를 보면, 어떤 회개가 진정한 회개인지, 진정한 회개가 아닌 가짜 회개인지 알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가장 안타까운 두 사람이 나옵니다. 구약은 사울, 신약은 가룟 유다입니다. 사울과 다윗을 비교해 보면 사울은 항상 후회만 하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가룟 유다와 사도 베드로를 비교해 보면, 가룟 유다는 후회만 한 인생이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지만 돌이켜 회개합니다. 후회와 회개는 비슷하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습니다. 후회는 실패한 과거만 돌아보고 한탄하고 슬퍼하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누우치고 방향을 전환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마태복음 27장 3절을 보면 가룟 유다의 회개가 아닌 후회가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심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놓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 27:3-5).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고, 예수님이 당하신 정죄를 보고 누우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감당하지 못해서 스스로 목을 메어 자살합니다. 가룟 유다는 회개가 아니라 후회로 그칩니다. 후회로 그치는 사람이 맺는 열매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다릅니다. 회개는 지적으로, 감정적으로, 의지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의 마음에는 충만한 기쁨과 충만한 감사가 있습니다.
아버지께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은 그 이후에 아버지 집에 살면서 죄를 안 지었을까요? 한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은 더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이단이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구원파 이단입니다. 일생 일대의 최초의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은 한번만 회개 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살지 못한 삶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서 코람데오: 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면 얼마나 우리가 죄인인지 더욱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죄는 점점 사라지고, 그러나 죄 의식은 점점 커져갑니다. 이 땅에서 성도의 삶은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의 첫번째 조항에 있는대로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심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성도의 삶은 날마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삶입니다.
5.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생명에 이르는 진정한 회개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인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 (1563) 제88문, 89문, 90문은 참된 회개를 잘 설명합니다.
제88문 사람의 진정한 회개는 무엇입니까?
답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제89문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을 진노케 한 우리의 죄를 마음으로 슬퍼하고, 더욱더 미워하고, 피하는 것입니다.
제90문 새 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마음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48) 대소요리 문답 제76문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무엇입니까?
생명에 이르는 회개란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에 의해서 죄인의 마음 속에 이루어지는 구원의 은혜이다. 그로서 자기의 죄의 위험성과 더러움과 추악함을 보고 느끼고 통회하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닫고 자기 죄를 몹시 슬퍼하고 미워하는 나머지 그 모든 죄를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와 범사에 새로 순종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끊임없이 동행하기로 목적하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를 설교 시간에 인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구원을 성경으로 이해하고, 기억하고, 다시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로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벨직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겨두신 보화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이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신앙고백서를 잘 공부하면 이단의 가르침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6. 어거스틴의 회심과 회심의 기쁨
기독교 역사에 386년은 중요합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기억하고 회심 기념일은 일년에 딱 두번입니다. 첫째는 1월 25일 사도 바울의 회심일이고, 둘째는 386년 5월 5일 어거스틴의 회심 기념일입니다. 386년에 어거스틴은 밀란의 정원에서 극적인 회심을 경험하였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회심의 기록을 참회록에 자세히 남겼습니다.
통곡과 결정적 회심 사건
내 영혼 깊숙이 숨겨져 있는 내 인생의 비참함이 그대로 내 눈 앞에 드러났고, 강한 폭풍이 내 영혼을 흔들더니 내 눈에서는 눈물이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통곡하고 싶었습니다. 홀로 조용히 통곡하고 싶었습니다…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무화과 나무 아래 땅에 엎드렸고 내 눈에는 눈물이 폭포처럼 흘렀으니 그것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벧전 2:5)가 되었습니다…나는 진실로 그 죄악 때문에 괴롬과 고통 중에서 부르짖었습니다. “오 주님! 언제까지 ‘내일 내일’ 할 것입니까? 왜 지금은 안됩니까? 왜 나의 더러운 생활을 이 순간에 깨끗이 끝내지 못합니까?” (참회록 8.12.28) “그처럼 말하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참회하고 나는 울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이웃집에서 한 음성이 내 귀에 들려 왔습니다…계속해서 반복되는 노랫의 가삿말과 같았습니다. “집어들고 읽어라. 집어들고 읽어라.(Tolle lege, Tolle lege)” 그 순간 나의 얼굴은 변했고…나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고 땅바닥에서 일어섰습니다. 그 음성은 분명히 내게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나는 속히 집으로 가서 성경책을 펴들고 제일 처음에 눈에 띄는 곳을 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해석했습니다…그래서 나는 알리피우스가 앉았던 장소로 돌아가서 거기에 둔 사도 바울의 서신을 펴들고 제일 먼저 내 눈길이 닿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나는 더 읽지 않았습니다. 더 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광명한 확신의 빛으로 내 마음을 비추어 내 속에 있던 모든 의심의 어두움을 물리쳐 주었기 때문입니다.”(참회록 8.12.29)
회심 후 어머니 모니카와의 만남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은 집을 달려가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좋아하셨겠습니까! 우리는 일어난 모든 일들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고 어머니는 한없는 승리와 기쁨에 도취하셨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주님을 찬양했습니다…당신은 그의 눈물과 탄식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축복을 내게 보다도 그에게 더욱 베푸셨습니다. 이제 당신은 나를 변화시키셨고 나의 희망은 여인이나 아내나 세속적 정욕이 아니었습니다. 수년 전에 주님께서 어머니에게 환상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과 같이 이제 나는 믿음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참회록 8.12.30)
7. 찬송과 기도
이 시간 새찬송가 279장 (통일 찬송가 337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함께 찬송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회심하셨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는 회심했습니까? 이 시간 함께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아버지는 우리 하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라 끊임없이 범죄한 영혼을 향한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청이며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참된 회개, 생명얻는 참된 회개로 반응해야 합니다. 돌아오라 하시니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지적으로 회개합니다. 감정적으로 회개합니다. 그리고 의지적으로 회개합니다. 이제 아버지께 돌아왔사오니, 다시는 아버지 품을 떠나지 않게 하시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날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아버지의 사랑안에 거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은혜와 사랑과 긍휼함이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돌아오라 말씀하시는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우리의 죄를 회개함으로, 그러나 다함이 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실 우리 아버지 품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용서하시는 아버지 품으로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땅에서 목적없는 삶을 살아가며, 방황하지 않으며, 이제는 더이상 우리의 죄를 후회하지 않으며, 생각으로 마음으로 의지로 회개하며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를 위하여 제일 좋은 옷을 입혀주시고, 손에 가락지를 끼어주시고, 발에 신을 신겨주시며,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하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에 매어 이제는 죄로 죽은 삶이 아니라 새 사람을 입어 새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로 인하여 또한 멀어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회개하게 하시며 날마다 회개함으로 더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죄인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29-30)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눅 15:11-24).
1. 6 25 한국 전쟁 70주년 조국으로 돌아온 147명의 유해
지난 주 목요일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전사한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가 북한에서 하와이로, 하와이에서 다시 조국으로 70년만에 돌아왔습니다. 동시에 미군 전사자 유해 6구를 미국으로 봉송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오는 전사자를 위해서 한국에서는 영웅에게, Salute to the Heroes라는 주제로 한국전쟁 70주년 기념 행사를 가졌습니다. 한국 전쟁 70주년 기념 행사를 보면서 조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70년만에 조국으로 돌아오는 유해를 보면서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요.
“오랜 시간 먼 길 거쳐 오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히 호위하겠습니다.” 625전쟁 참전 조종사의 손자 조종사의 특별한 엄호 비행이 있었습니다. 돌아온 비행기를 배경으로 전쟁 참전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70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147명의 여정을 그린 잘 준비된 퍼포먼스와 드론으로 표시된 태극기가 정말 멋있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온 147명의 전우들과 같은 미 7사단 17연대 소속으로 참전한 류영봉 이등중사의 감동적인 복귀신고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전쟁에 참여하여 군인을 파병한 유엔의 22개국 정상의 메시지와 20대 초반의 친구같은 나이의 유승호의 헌정사를 듣고 보면서 많은 감동도 받았습니다.
유승호의 헌정사 가운데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친구여, 그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어떻게 건뎠습니까? 매일 밤마다 찾아오는 두려움은 어찌 이겨내셨습니까? 포탄처럼 날아드는 번뇌와 서글픔은 또 어찌 삼키셨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순간엔, 누굴 떠올리며 눈을 감으셨습니까?”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던 것 처럼, 우리도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70년만에 조국으로 돌아오는 147구의 전사자 유해를 보면서, 그리고 비록 지금은 산화하였지만 조국의 평화을 위해서 아주 젊은 나이에 전사한 그들을 최대한 예우하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코로나 시대에 조국의 국격이 많이 향상된 자부심과 함께, 전쟁 7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분단된 조국의 안타가운 현실이 마음 아팠습니다.
2. 구원의 돌아옴 회심 (conversion): 회개(repentance)와 믿음(belief)
조국으로 돌와온 147명의 유해를 보면서 오늘 전할 말씀의 주제인 구원의 돌아옴 혹은 돌이킴의 회심의 주제가 생각났습니다. 우리도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구원을 회심이라고 합니다. 회심은 영어로는 conversion이라고 합니다. 회심은 구원의 황금사슬 가운데 예지, 예정, 소명, 칭의, 영화 가운데 소명과 칭의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면 소명과 칭의 사이에 지난 주일에 배운 중요한 구원의 황금사슬은 무엇이었습니까?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구원이 있습니다.
회심 Conversion은 인생의 방향전환입니다. 회심 이전에 영적으로 타락한 인생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이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기가 오직 자기 사랑입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자기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고, 거듭나기 전의 사람의 삶의 목표는 오직 자신, 자기 자신에서 조금 넓히면 자기 가족입니다. 그런데 오직 자기만 사랑하며 살아가던 사람이 이제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놀라운 방향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돌아옴, 돌이킴의 회심입니다.
성경에 회심이라는 말은 없지만, 우리는 회심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회심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회심의 일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것입니다. 불교에는 회심가, 회심곡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찬송가, 복음성가를 부르는데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에 달려있으니, 허랑방탕하게 살던 사람이 자기 마음을 고쳐 먹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노래가 회심가, 회심곡입니다.
기독교의 구원론에서 회심은 단순히 자기 마음을 고쳐 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에서 있어서 회심은 일생 일대의 최초의 회개 (repentance)와 믿음 (faith)을 합쳐서 회심 (conversion)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회심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인간 스스로 회심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회심케 해 주셔야 하는 것입니까?
구원의 황금사슬에서 예지와 예정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지와 예정된 사람을 구원으로 효과적으로 소명, 부르시는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영적으로 죽어있던 사람을 중생, 거듭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명과 중생을 받은 사람만이 회개와 믿음으로 자신의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방향을 전환할 수 있으니, 회심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며,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께 방향을 전환해서 돌아가는 일이니 우리의 일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끊임없이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돌아오라는 말씀을 듣고 누가 돌아와야 합니까? 우리가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되 우리의 죄에서 돌이켜 아버지께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행위가 바로 회심의 시작인 회개입니다.
구약성경 요엘 선지서 2장 12-14절 말씀은 바벨론 포로 전 남 유다 백성들을 향한 회개의 촉구입니다. 구약의 파노라마에서 배운 선지자 왈: 회개하라, 아니하면 쫓겨나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구약의 5권의 대 선지서와 12권의 소 선지서의 말씀의 핵심은 돌아오라,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회개의 말씀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서 말라기 3장 7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돌아오라, 내게로 돌아오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질문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3.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의 회개: 지적, 감정적, 의지적 회개
오늘 본문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 탕부 하나님의 비유를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지,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를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2020년 시작하면서 설교한 누가복음 15장 말씀의 두 편의 설교 말씀을 기억하며, 참된 회개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세 가지 요소를 발견합니다. 누가복음 15장 17-2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일어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구원의 황금 사슬의 윌리엄 퍼킨슨, 당신의 거듭남 확실합니까?의 스티븐 차녹, 회개의 경종: 돌이켜 회개하라 (An Alarm to the Unconverted)의 조셉 얼라인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성경적인 구원의 교리를 강조한 영국의 17세기 청교도들이었습니다. 영국의 빛나던 시대는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간 시대였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빛나던 영적인 시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볼 수 있는 산위의 동네, 언덕위의 도시를 세우고자 구원에 있어서 회심을 강조했던 초기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이었습 니다. 이들은 구원을 피상적으로 가볍게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구원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했고, 가르쳤고, 그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아버지께 돌아가려는 둘째 아들의 고백을 자세히 살펴보면 참된 회개에서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세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첫째, 참된 회개에는 지적인 돌아섬이 있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둘째 아들은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져서야 자신의 현재의 형편이 얼마나 비참한지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비참한 형편과 달리 아버지의 집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얼마나 아버지의 은혜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합니다. 자신이 아버지의 유산을 달라해서, 아버지를 떠난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깨우칩니다. 회개는 생각의 변화입니다. 비로서 비정상적인 생각에서 돌이켜 정상적인 생각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왜 아버지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생각을 했을까요? 아버지를 떠나기 전에는 아버지가 얼마나 은혜로운 잘 몰랐습니다. 심지어 아버지 집에서 일하는 품꾼들도 넉넉하게 먹여주시는 아버지가 얼마나 좋으신 아버지인지 집 떠나서 고생을 해 보니 비로소 알게되었습니다.
딤후 2:24-26절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에게 주시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NIV 영어성경을 보면 25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Those who oppose him he must gently instruct, in the hope that God will grant them repentance leading them to a knowledge of the truth”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진리의 지식에 이르는 회개를 주실 소망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온유함으로 가르치라. 회개는 그냥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그냥 잘못했어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는 나의 과거의 생각과 지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고 생각을 바꾸는 지적인 돌아섬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날마다 바꾸는 사람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꼰대입니다. 꼰대 들어보셨습니까? 꼰대라는 말은 원래 아버지나 선생님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은어였지만, 최근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꼰대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합니다. 자신의 정치와 이념성향이 항상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 하루 불안하고 힘든 청년들에게 나의 관점이 옳고 너의 관점은 틀리다는 흑백논리로 젊은이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충고하고 지적합니다.
회개한 믿음의 사람의 생각은 마치 꼰대가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이전에는 고집만 부리던 사람이 깨닫는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과거에는 생각이 강팍한 사람이 이제는 언제든지 생각을 바꾸고 고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뵙는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생각하고 주장한 것이 잘못된 것이 얼마나 많을까요!!!
둘째, 참된 회개에는 감정적인 돌아섬이 있습니다.
18-19절 둘째 아들의 생각만 변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마음과 그의 입이 변했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둘째 아들의 마음에는 자신이 아버지께 지은 죄에 대한 안타까운 슬픔과 후회가 있습니다. 참된 회개에는 감정의 변화가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안타까워하고, 그 안타까움을 입술로 고백합니다. 참된 회개가 마음에 일어나면 눈물이 나고 콧물도 납니다.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께 돌아온 분들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찬양을 부르는 중에, 하나님 말씀을 듣는 중에, 기도하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 흘리는 눈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회개의 은혜입니다. 한홍 목사님의 칼럼을 읽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찾아오라는 러시아의 한 동화를 소개하셨는데 인상이 깊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회개하는 사람의 눈물입니다.
고후 7:9-11절을 보면 고린도 교회의 회개를 경험한 사도 바울의 기록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사도 바울은 10절에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말씀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세상적인 슬픔과 후회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인생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스트레스 가득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죄인인지 깨닫는 경건한 슬픔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서 떠나 죄악 가운데 있는지 편지를 통해서 책망했습니다. 그 책망의 편지를 받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근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근심이 하나님 앞에 회개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구원에 이르는 회개에 이른 고린도교회의 열매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범한 죄에 대해서 얼마나 간절하게 되었는지, 얼마나 분하게 느끼는지, 얼마나 두렵게 만들었는지 회개하였습니다.
셋째, 참된 회개에는 의지적인 돌아섬이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생각만하고, 마음에 죄를 뉘우치고 눈물 흘리면서 후회만 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중요한 요소는 의지적인 돌아섬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회개에서 있어서 의지는 죄를 미워하고, 슬퍼하고, 뉘우치는 것만이 아니라 죄를 끊어내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잘못된 것이며, 잘못된 것을 슬퍼해도, 죄를 끊어내지 않으면 회개가 아닙니다. 일어나야 겠다 생각만 하지 않습니다. 그냥 슬픔 가운데 주저 앉아 있지 않습니다.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방향을 전환해서 돌아가니라.
4. 전인격적인 회개: 후회와 회개의 차이점
회개의 지적 돌아섬, 감정적 돌아섬, 의지적인 돌아섬의 세 가지 요소를 보면, 어떤 회개가 진정한 회개인지, 진정한 회개가 아닌 가짜 회개인지 알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가장 안타까운 두 사람이 나옵니다. 구약은 사울, 신약은 가룟 유다입니다. 사울과 다윗을 비교해 보면 사울은 항상 후회만 하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가룟 유다와 사도 베드로를 비교해 보면, 가룟 유다는 후회만 한 인생이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지만 돌이켜 회개합니다. 후회와 회개는 비슷하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습니다. 후회는 실패한 과거만 돌아보고 한탄하고 슬퍼하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누우치고 방향을 전환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마태복음 27장 3절을 보면 가룟 유다의 회개가 아닌 후회가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심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놓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 27:3-5).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고, 예수님이 당하신 정죄를 보고 누우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감당하지 못해서 스스로 목을 메어 자살합니다. 가룟 유다는 회개가 아니라 후회로 그칩니다. 후회로 그치는 사람이 맺는 열매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다릅니다. 회개는 지적으로, 감정적으로, 의지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의 마음에는 충만한 기쁨과 충만한 감사가 있습니다.
아버지께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은 그 이후에 아버지 집에 살면서 죄를 안 지었을까요? 한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은 더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이단이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구원파 이단입니다. 일생 일대의 최초의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은 한번만 회개 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살지 못한 삶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서 코람데오: 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면 얼마나 우리가 죄인인지 더욱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죄는 점점 사라지고, 그러나 죄 의식은 점점 커져갑니다. 이 땅에서 성도의 삶은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의 첫번째 조항에 있는대로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심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성도의 삶은 날마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삶입니다.
5.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생명에 이르는 진정한 회개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인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 (1563) 제88문, 89문, 90문은 참된 회개를 잘 설명합니다.
제88문 사람의 진정한 회개는 무엇입니까?
답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제89문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을 진노케 한 우리의 죄를 마음으로 슬퍼하고, 더욱더 미워하고, 피하는 것입니다.
제90문 새 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마음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48) 대소요리 문답 제76문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무엇입니까?
생명에 이르는 회개란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에 의해서 죄인의 마음 속에 이루어지는 구원의 은혜이다. 그로서 자기의 죄의 위험성과 더러움과 추악함을 보고 느끼고 통회하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닫고 자기 죄를 몹시 슬퍼하고 미워하는 나머지 그 모든 죄를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와 범사에 새로 순종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끊임없이 동행하기로 목적하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를 설교 시간에 인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구원을 성경으로 이해하고, 기억하고, 다시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로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벨직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겨두신 보화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이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신앙고백서를 잘 공부하면 이단의 가르침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6. 어거스틴의 회심과 회심의 기쁨
기독교 역사에 386년은 중요합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기억하고 회심 기념일은 일년에 딱 두번입니다. 첫째는 1월 25일 사도 바울의 회심일이고, 둘째는 386년 5월 5일 어거스틴의 회심 기념일입니다. 386년에 어거스틴은 밀란의 정원에서 극적인 회심을 경험하였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회심의 기록을 참회록에 자세히 남겼습니다.
통곡과 결정적 회심 사건
내 영혼 깊숙이 숨겨져 있는 내 인생의 비참함이 그대로 내 눈 앞에 드러났고, 강한 폭풍이 내 영혼을 흔들더니 내 눈에서는 눈물이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통곡하고 싶었습니다. 홀로 조용히 통곡하고 싶었습니다…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무화과 나무 아래 땅에 엎드렸고 내 눈에는 눈물이 폭포처럼 흘렀으니 그것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벧전 2:5)가 되었습니다…나는 진실로 그 죄악 때문에 괴롬과 고통 중에서 부르짖었습니다. “오 주님! 언제까지 ‘내일 내일’ 할 것입니까? 왜 지금은 안됩니까? 왜 나의 더러운 생활을 이 순간에 깨끗이 끝내지 못합니까?” (참회록 8.12.28) “그처럼 말하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참회하고 나는 울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이웃집에서 한 음성이 내 귀에 들려 왔습니다…계속해서 반복되는 노랫의 가삿말과 같았습니다. “집어들고 읽어라. 집어들고 읽어라.(Tolle lege, Tolle lege)” 그 순간 나의 얼굴은 변했고…나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고 땅바닥에서 일어섰습니다. 그 음성은 분명히 내게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나는 속히 집으로 가서 성경책을 펴들고 제일 처음에 눈에 띄는 곳을 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해석했습니다…그래서 나는 알리피우스가 앉았던 장소로 돌아가서 거기에 둔 사도 바울의 서신을 펴들고 제일 먼저 내 눈길이 닿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나는 더 읽지 않았습니다. 더 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광명한 확신의 빛으로 내 마음을 비추어 내 속에 있던 모든 의심의 어두움을 물리쳐 주었기 때문입니다.”(참회록 8.12.29)
회심 후 어머니 모니카와의 만남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은 집을 달려가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좋아하셨겠습니까! 우리는 일어난 모든 일들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고 어머니는 한없는 승리와 기쁨에 도취하셨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주님을 찬양했습니다…당신은 그의 눈물과 탄식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축복을 내게 보다도 그에게 더욱 베푸셨습니다. 이제 당신은 나를 변화시키셨고 나의 희망은 여인이나 아내나 세속적 정욕이 아니었습니다. 수년 전에 주님께서 어머니에게 환상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과 같이 이제 나는 믿음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참회록 8.12.30)
7. 찬송과 기도
이 시간 새찬송가 279장 (통일 찬송가 337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함께 찬송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회심하셨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는 회심했습니까? 이 시간 함께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아버지는 우리 하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라 끊임없이 범죄한 영혼을 향한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청이며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참된 회개, 생명얻는 참된 회개로 반응해야 합니다. 돌아오라 하시니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지적으로 회개합니다. 감정적으로 회개합니다. 그리고 의지적으로 회개합니다. 이제 아버지께 돌아왔사오니, 다시는 아버지 품을 떠나지 않게 하시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날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아버지의 사랑안에 거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은혜와 사랑과 긍휼함이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돌아오라 말씀하시는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우리의 죄를 회개함으로, 그러나 다함이 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실 우리 아버지 품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용서하시는 아버지 품으로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땅에서 목적없는 삶을 살아가며, 방황하지 않으며, 이제는 더이상 우리의 죄를 후회하지 않으며, 생각으로 마음으로 의지로 회개하며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를 위하여 제일 좋은 옷을 입혀주시고, 손에 가락지를 끼어주시고, 발에 신을 신겨주시며,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하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에 매어 이제는 죄로 죽은 삶이 아니라 새 사람을 입어 새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로 인하여 또한 멀어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회개하게 하시며 날마다 회개함으로 더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죄인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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