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장 29-30절, 요 3장 1-10절 구원의 황금사슬 (3) 거듭나야 합니다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6-2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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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와 설교 음성파일은 맨 아래 왼쪽에 파일이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Youtube에 설교 동영상을 올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요 3:1-10).
1. 거듭남과 죄 사함의 비밀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조금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거듭나셨으면 언제 거듭나셨습니까? 거듭나셨다면 그 분명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제 질문이 아니라, 지금도 많은 분들을 어렵게 만드는 구원파의 질문입니다. 우리 알버커키에도 구원파 교회가 있습니다. 기쁜소리선교회, 국제청소년연합 (IYF), 무료성경세미나, 대한예수교침례회 라는 이름의 선교회와 교회가 있습니다. 선교회와 교회라는 이름이지만, 한국교회에서는 구원론과 연관된 구원파 이단입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유명한 유병언과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박옥수가 대표적인 구원파입니다. 구원파는 이단이지만, 구원파에서 질문하는 내용은 아주 아주 중요하면서, 기존의 성도들을 미혹케 합니다. 다시 한번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거듭나셨다면 언제 거듭나셨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질문을 받으신다면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구원파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이상한 분들이 아닙니다. 윤리적으로 훌륭한 분도 계시고, 헌신적인 분들도 계십니다. 그중에서 과거 우리교회에 다니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지난 번 한인회에서 우리 지역의 시니어 분들에게 음식 배달을 했는데 우리교회에서 5분도 안되는 아주 가까운 Chelwood Park에 있는 시니어 아파트에 사시는 어르신들 가운데 구원파 교회에 다니시는 몇 분들을 만났습니다. 구원파 교회에 다니시는 것이 너무 좋다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기존에 교회에 다닐 때는 잘 모르던 구원의 비밀을 구원파 교회를 다니면서 확실해졌다고 좋아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요!!! 구원파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확신하고 있는 죄 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에서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거듭남의 비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시는 중요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거듭남을 다른 말로 중생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8장 29-30절에서 우리는 구원의 다섯 가지 황금사슬이 있다고 살펴보았습니다. 미리 아심의 예지, 미리 정하심의 예정, 부르심의 소명, 의롭다 하심의 칭의,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의 영화입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구원은 너무 포괄적인 개념이어서, 로마서 8장의 5가지가 아니라 10가지의 중요한 구원의 개념이 있었습니다. 예지와 예정은 창세 전에 일어난 일이고, 이 땅에서 우리에게 적용되기 시작한 구원은 부르심의 소명입니다. 부르심의 소명과 의롭다하심의 칭의 사이에 중생, 회심, 신앙이 있습니다. 10가지 중요한 구원의 개념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소중회, 신칭수, 성견영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소명은 부르심 (calling), 중생은 거듭남 (regeneration), 회심은 돌아섬 (conversion), 신앙은 믿음 (faith), 칭의는 의롭다 하심 (justification), 수양은 양자삼음 (adoption), 성화는 거룩해짐(sanctification), 견인은 우리의 구원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glorification) 까지 이끌어가심 (perseverance),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입니다.
2. 예수님의 거듭남의 가르침: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오늘 요한복음 3장 말씀은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니고데모가 어떤 사람인지 말씀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1-2절 말씀을 보면,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또한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은밀하게 예수님을 찾아왔을 수도 있고, 예수님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밤에 찾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는 말이 예수님을 랍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이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도 할 수 없는 표적이라고 인정합니다. 예수님을 존경하고, 예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관원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 정도로 예수님을 인정할 정도면 예수님이 칭찬할 말한 훌륭한 신앙인이 아닙니까?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모세오경과 유대교 전통으로 해석한 율법의 모든 세부조항까지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했던 존경받던 소위 평신도 율법운동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한 전문 종교인들인 대제사장들과 사두개파 사람들, 서기관들은 종교적인 위선자들이라고 경멸해도, 바리새인들의 그 종교적인 탁월한 열심은 존경했습니다. 유대교 전통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율법의 가르침을 스스로 철저하게 지키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게 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철저하게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알고 믿고 가르치던 방식과 다른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 많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척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해도,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배우려고 찾아왔습니다.
게다가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선생, 유대인의 지도자라는 존경받는 산헤드린 공의회 71명의 회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로마의 식민지 시대이지만, 로마는 유대인에게는 산헤드린 공의회를 두어서 유대인 스스로의 종교와 관습에 관한 것을 판단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71명의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이며, 바리새인 이라는 것은 당시 유대교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인정하며 예수님을 통해서 배우려고 합니다. 우리 예수님에게 그런 존경받는 사람이 찾아왔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니고데모를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5절-8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니고데모를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금 니고네모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이 말씀이 아멘 아멘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진정 그렇다면 아멘하지만, 예수님은 두 번이나 반복적으로 이제 하는 말이 진리의 말씀이니 아멘 아멘으로 시작합니다. 니고데모에게 말씀합니다. 니고데모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니고데모는 받아들이고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니고데모는 거듭남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습니다. 4절 거듭남의 말씀을 들은 니고데모의 반응입니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어머니 뱃 속에서 태어나는 것 처럼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어머니 뱃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까 질문합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남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에 그저 놀랄 뿐입니다. 9절 니고데모의 반응입니다.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사랑하는 여러분, 니고데모는 구원받은 사람입니까? 구원에 있어서 거듭남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3.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하늘로부터,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구원파에서 말하는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17세기 영국의 윌리엄 퍼킨슨이 로마서 8장 29-30절의 가르침으로 구원의 황금사슬이라는 책을 기록했다면, 동 시대의 스티븐 차녹은 당신의 거듭남, 확실합니까라는 탁월한 책을 썼습니다. 거듭남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다보니, 대학교 1학년 때 저에게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과 거듭남의 말씀을 전해주신 저희 은사 목사님이신 서울 진리교회 강문진 목사님께서 쓰신 소중한 책이 있었습니다. 2019년 12월 31일에 거듭남, 새로운 시작: 거듭남은 신앙생활의 첫 출발이다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자세히 읽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3장 1-15절을 자세히 풀어서 36번으로 설교한 거듭남에 관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 담겨있습니다. 제목과 목차만 읽어보아야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요!
우리는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본문을 자세히 관찰하면, 거듭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3절의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나는 것의 헬라어의 원래 의미는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중요한 동사의 형태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입니다. 내가 내 힘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태어나지는 것입니다. 처음 태어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중에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로부터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어나는 것은 내 의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는 것도 거듭나 지는 것이지, 내가 스스로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첫번째 태어나는 것이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육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면, 하늘로부터 거듭나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이 씨앗이 우리 안에 심겨져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그런데 같은 하늘로부터 거듭나는 것이 6절은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8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여기서 물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물 하면 자동적으로 물로 세례 받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니 거듭나기 위해서는 물로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물로 세례를 받으면 반드시 거듭납니까? 물로 세례를 받지 않으면 반드시 거듭나지 못합니까? 제가 유신고등학교 1학년 4월에 학교에서 교회를 다니지도 않는데 합동으로 세례를 받았으니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세례를 받았으니 거듭난 것입니까?
사도행전 8장을 보면, 마술사 시몬이 나옵니다. 전도자 빌립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들은 시몬은 빌립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은 이후에 빌립을 통한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전에 행하던 마술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서 자신도 성령을 통한 표적과 능력을 행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찾아왔을 때 자신도 성령의 능력을 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돈을 드리려고 합니다. 마술사 시몬이 세례를 받았지만 거듭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도 외적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물은 꼭 세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물과 성령으로” 이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방편으로서 죄를 씻어주시는 의미의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경에서 성령은 때로는 불로, 때로는 바람으로, 때로는 물로 나타납니다. 성령은 마치 불 처럼 우리에게 역사하시어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성령은 마치 물처럼 우리를 죄에서 씻어주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마치 바람처럼 우리에게 불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에스겔 36장 25-26절 구약에서 새 언약을 예언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명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 시내산 언약, 옛 언약 대신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에는 새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우리의 돌 같은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고 새로운 언약을 예언하십니다. 새 영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맑은 물이 뿌려지는 것과 같습니다. 맑은 물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새로운 성령의 사역입니다.
물 세례가 거듭나는 것에 있어서 그토록 중요하다면, 5절 만이 아니라 6절에서도, 8절에서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해야 하지만, 6절과 8절은 그냥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물 세례가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8절 성령은 어떻게 거듭나게 하십니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는 방법은 마치 바람이 부는 것과 같습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할 때 정확하게 거듭나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주권적인 사역으로 일어납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신비롭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구원파에서 말하는 언제 거듭났습니까? 정확히 몇월 몇일에 거듭나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바람처럼 역사하시는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은혜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분명히 아는 것은 바람이 불었다면 바람이 분 증거가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소리도 나고,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있습니다.
4.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의 거듭남: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은 영혼을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은혜를 우리가 잘 몰라도 반드시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는 우리의 거듭남의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CRC (Christian Reformed Church) 교단은 세 가지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를 교단의 신앙고백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561년의 벨직 신앙고백서, 1563년의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1618-1619년의 도르트신경를 보면 거듭남, 중생에 관한 개혁주의 Reformed 가르침이 있습니다.
벨직신앙고백서 제24조 죄인의 성화 (Article 24 The Sanctification of Sinners) 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는 이 참된 신앙, 즉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 안에 생겨난 이 신앙이 우리를 거듭 태어나게 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우리로 죄의 종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을 믿는다.”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안에 거듭나게 하는 역사를 행하여, 우리 안에 믿음이 생겨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We believe that this true faith, produced in us by the hearing of God’s Word and b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regenerates us and makes us new creatures, causing us to live a new life and freeing us from the slavery of sin.)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제7문과 8문을 보면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7문 그러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어디서 왔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불순종하여 타락함으로 비롯되었습니다. 그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본성이 부패되어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잉태되어 태어나게 됩니다. 제8문 그렇다면 우리는 너무나 부패하여 어떠한 선함도 행할 수 없고 오직 모든 악을 향해 기울어질 뿐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도르트신경 제3, 4번째 신조의 12항 초자연적 중생의 역사와 13항 중생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역사에서 중생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12 항 초자연적 중생의 역사: “중생은 성경이 밝히 가르치는 바, 새로운 창조세계로 거듭남이며 죽음으로부터 일어남인데, 우리 안에 일어나는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중생은 도덕적인 설득과 같은 외적인 가르침으로 이루어지거나, 또는, 하나님의 일이 끝나고 난 후에, 그것이 중생이거나 회개이거나 결국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치부되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아니한다. 중생은 온전히 초자연적인 역사로 일어난다. 그것은 가장 강력하고, 가장 만족스럽고, 경이롭고, 비밀에 숨겨져서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로서 창조에서의 하나님의 능력이나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에 견주어 적지 아니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이다. 이것이 그 동일한 능력으로 영감된 저자들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이다. 이러한 경이로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마음에 작용하는 사람들은 그 결과로 분명하게, 변함없이, 효과적으로 거듭나며 실제로 믿게 된다. 그래서 그 중생된 마음은 하나님에 의하여 작동되고 움직여질 뿐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작동됨 안에서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사람들은 그들이 받은 은혜를 따라서 하지만, 그들이 또한 스스로 믿고 회개해야 한다고 말함도 옳은 것이다.” 13 항 중생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역사: “우리는 중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그들이 구세주를 실제로 마음으로 믿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경험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5. 그러면, 왜 반드시 거듭나야 하는가? 인간의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었기에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면,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까?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배 속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지금 그 상태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이 반드시 거듭나야 하겠습니까? 에베소서 2장 1-5절 말씀은 사람이 왜 거듭나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거듭나기 전의 인간의 상태는 펠라기우스, 세미펠라기우스, 아르미니우스의 견해처럼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거듭나기 전의 인간의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씀합니다.
미국에서 장례식을 진행할 때 영혼이 떠난 육체를 잘 화장해서 관에 둡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움직여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거듭나기 전의 인간의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하늘로부터 성령으로 거듭나야 영적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의 상태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행하며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갑니다. 여기서 세상 풍조는 세상의 유행과 세상의 방식입니다.
세상이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한다면, 나도 그 견해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동성애는 죄라고 말씀합니다. 롬 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세상의 풍조와 정신을 따라가야 합니까? 아니면 진리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까?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은 인간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고, 그저 세상의 정신과 세상의 유행과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갑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자유로운 삶 인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사단,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강력하게 역사하는 영인 사단의 세력 아래 놓인 영적인 죽음 상태에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가운데 살아가는 삶은 우리 육체의 남은 죄의 세력 아래 놓여 영적인 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중립되어 있어서 자기가 좋을 대로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견해였습니다. 세미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병들었으나, 그래도 복음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였습니다.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는 비록 인간은 부분적으로 부패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충분한 은혜를 주셔서 누구든지 복음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충분한 은혜와 협력하여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견해였습니다. Reformed 개혁주의 견해는 우리는 본성상 전적으로 죄 가운데 영적으로 죽어있어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은혜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영적으로 다시 살려주시기 전까지는 복음의 부르심에 대해서 응답할 수 없다는 견해였습니다.
오늘 살펴본 요한복음 3장과 에베소서 2장의 하나님 말씀을 읽고, 관찰하고, 해석하면 어느 견해가 맞는 것 같습니까? 거듭나기 전의 인간의 영적인 상태는 물속에 빠져있는데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런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 물속으로 들어와서 우리를 건져주어야 합니다. 스스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6. 찬송가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와 합심 기도
이 시간 새찬송가 288장 (통일 찬송가 204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찬송을 가사를 만든 크로스비 여사는 태어난지 6주만에 의사의 잘못된 약물치료로 앞이 안보이게 되었습니다. 95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평생을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백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이 불러야 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흘러 나오는 거듭남의 은혜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함께 찬송하길 원합니다.
이 시간 함께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어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거듭날 수 없지만, 그러나, 바람처럼 역사하시는 물처럼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성령의 거듭남의 은혜를 구할 수는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듭나셨는지요?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거듭나야 이 세상에서 하늘의 영광을 감사하고, 누리며,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간증할 수 있습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했다면 그 어떤 다른 은혜보다 거듭나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 어려서부터 거듭남의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무엇보다 우리 가족들, 거듭남의 은혜를 더하시며,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성도님들, 형식적인 신앙으로 만족하지 않게 하시며,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세상에서는 존경받는 니고데모를 향하여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우리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의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성령으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우리에게 심겨주시는 신비롭고 놀랍고 그러나 분명한 성령 하나님의 바람처럼 불어오는 거듭남의 은혜를 이 시간 말씀 듣는 모든 성도들에게 허락하여주옵소서. 이 땅에서 거듭난 난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가슴벅찬 찬송을 우리도 하나님께 올려드리게 하옵시며, 우리 사랑하는 갈릴리 장로교회 성도님들, 그 마음에 거듭남의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서 하늘의 충만한 기쁨과 영광을 맛보게 하시며, 우리 삶의 모든 어렵고 힘든 형편 속에서도 감사하게 하시며 찬송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확신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요 3:1-10).
1. 거듭남과 죄 사함의 비밀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조금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거듭나셨으면 언제 거듭나셨습니까? 거듭나셨다면 그 분명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제 질문이 아니라, 지금도 많은 분들을 어렵게 만드는 구원파의 질문입니다. 우리 알버커키에도 구원파 교회가 있습니다. 기쁜소리선교회, 국제청소년연합 (IYF), 무료성경세미나, 대한예수교침례회 라는 이름의 선교회와 교회가 있습니다. 선교회와 교회라는 이름이지만, 한국교회에서는 구원론과 연관된 구원파 이단입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유명한 유병언과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박옥수가 대표적인 구원파입니다. 구원파는 이단이지만, 구원파에서 질문하는 내용은 아주 아주 중요하면서, 기존의 성도들을 미혹케 합니다. 다시 한번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거듭나셨다면 언제 거듭나셨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질문을 받으신다면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구원파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이상한 분들이 아닙니다. 윤리적으로 훌륭한 분도 계시고, 헌신적인 분들도 계십니다. 그중에서 과거 우리교회에 다니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지난 번 한인회에서 우리 지역의 시니어 분들에게 음식 배달을 했는데 우리교회에서 5분도 안되는 아주 가까운 Chelwood Park에 있는 시니어 아파트에 사시는 어르신들 가운데 구원파 교회에 다니시는 몇 분들을 만났습니다. 구원파 교회에 다니시는 것이 너무 좋다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기존에 교회에 다닐 때는 잘 모르던 구원의 비밀을 구원파 교회를 다니면서 확실해졌다고 좋아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요!!! 구원파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확신하고 있는 죄 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에서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거듭남의 비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시는 중요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거듭남을 다른 말로 중생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8장 29-30절에서 우리는 구원의 다섯 가지 황금사슬이 있다고 살펴보았습니다. 미리 아심의 예지, 미리 정하심의 예정, 부르심의 소명, 의롭다 하심의 칭의,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의 영화입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구원은 너무 포괄적인 개념이어서, 로마서 8장의 5가지가 아니라 10가지의 중요한 구원의 개념이 있었습니다. 예지와 예정은 창세 전에 일어난 일이고, 이 땅에서 우리에게 적용되기 시작한 구원은 부르심의 소명입니다. 부르심의 소명과 의롭다하심의 칭의 사이에 중생, 회심, 신앙이 있습니다. 10가지 중요한 구원의 개념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소중회, 신칭수, 성견영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소명은 부르심 (calling), 중생은 거듭남 (regeneration), 회심은 돌아섬 (conversion), 신앙은 믿음 (faith), 칭의는 의롭다 하심 (justification), 수양은 양자삼음 (adoption), 성화는 거룩해짐(sanctification), 견인은 우리의 구원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glorification) 까지 이끌어가심 (perseverance),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입니다.
2. 예수님의 거듭남의 가르침: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오늘 요한복음 3장 말씀은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니고데모가 어떤 사람인지 말씀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1-2절 말씀을 보면,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또한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은밀하게 예수님을 찾아왔을 수도 있고, 예수님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밤에 찾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는 말이 예수님을 랍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이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도 할 수 없는 표적이라고 인정합니다. 예수님을 존경하고, 예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관원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 정도로 예수님을 인정할 정도면 예수님이 칭찬할 말한 훌륭한 신앙인이 아닙니까?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모세오경과 유대교 전통으로 해석한 율법의 모든 세부조항까지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했던 존경받던 소위 평신도 율법운동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한 전문 종교인들인 대제사장들과 사두개파 사람들, 서기관들은 종교적인 위선자들이라고 경멸해도, 바리새인들의 그 종교적인 탁월한 열심은 존경했습니다. 유대교 전통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율법의 가르침을 스스로 철저하게 지키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게 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철저하게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알고 믿고 가르치던 방식과 다른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 많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척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해도,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배우려고 찾아왔습니다.
게다가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선생, 유대인의 지도자라는 존경받는 산헤드린 공의회 71명의 회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로마의 식민지 시대이지만, 로마는 유대인에게는 산헤드린 공의회를 두어서 유대인 스스로의 종교와 관습에 관한 것을 판단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71명의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이며, 바리새인 이라는 것은 당시 유대교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인정하며 예수님을 통해서 배우려고 합니다. 우리 예수님에게 그런 존경받는 사람이 찾아왔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니고데모를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5절-8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니고데모를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금 니고네모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이 말씀이 아멘 아멘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진정 그렇다면 아멘하지만, 예수님은 두 번이나 반복적으로 이제 하는 말이 진리의 말씀이니 아멘 아멘으로 시작합니다. 니고데모에게 말씀합니다. 니고데모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니고데모는 받아들이고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니고데모는 거듭남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습니다. 4절 거듭남의 말씀을 들은 니고데모의 반응입니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어머니 뱃 속에서 태어나는 것 처럼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어머니 뱃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까 질문합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남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에 그저 놀랄 뿐입니다. 9절 니고데모의 반응입니다.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사랑하는 여러분, 니고데모는 구원받은 사람입니까? 구원에 있어서 거듭남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3.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하늘로부터,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구원파에서 말하는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17세기 영국의 윌리엄 퍼킨슨이 로마서 8장 29-30절의 가르침으로 구원의 황금사슬이라는 책을 기록했다면, 동 시대의 스티븐 차녹은 당신의 거듭남, 확실합니까라는 탁월한 책을 썼습니다. 거듭남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다보니, 대학교 1학년 때 저에게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과 거듭남의 말씀을 전해주신 저희 은사 목사님이신 서울 진리교회 강문진 목사님께서 쓰신 소중한 책이 있었습니다. 2019년 12월 31일에 거듭남, 새로운 시작: 거듭남은 신앙생활의 첫 출발이다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자세히 읽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3장 1-15절을 자세히 풀어서 36번으로 설교한 거듭남에 관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 담겨있습니다. 제목과 목차만 읽어보아야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요!
우리는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본문을 자세히 관찰하면, 거듭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3절의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나는 것의 헬라어의 원래 의미는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중요한 동사의 형태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입니다. 내가 내 힘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태어나지는 것입니다. 처음 태어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중에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로부터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어나는 것은 내 의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는 것도 거듭나 지는 것이지, 내가 스스로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첫번째 태어나는 것이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육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면, 하늘로부터 거듭나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이 씨앗이 우리 안에 심겨져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그런데 같은 하늘로부터 거듭나는 것이 6절은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8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여기서 물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물 하면 자동적으로 물로 세례 받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니 거듭나기 위해서는 물로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물로 세례를 받으면 반드시 거듭납니까? 물로 세례를 받지 않으면 반드시 거듭나지 못합니까? 제가 유신고등학교 1학년 4월에 학교에서 교회를 다니지도 않는데 합동으로 세례를 받았으니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세례를 받았으니 거듭난 것입니까?
사도행전 8장을 보면, 마술사 시몬이 나옵니다. 전도자 빌립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들은 시몬은 빌립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은 이후에 빌립을 통한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전에 행하던 마술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서 자신도 성령을 통한 표적과 능력을 행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찾아왔을 때 자신도 성령의 능력을 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돈을 드리려고 합니다. 마술사 시몬이 세례를 받았지만 거듭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도 외적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물은 꼭 세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물과 성령으로” 이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방편으로서 죄를 씻어주시는 의미의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경에서 성령은 때로는 불로, 때로는 바람으로, 때로는 물로 나타납니다. 성령은 마치 불 처럼 우리에게 역사하시어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성령은 마치 물처럼 우리를 죄에서 씻어주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마치 바람처럼 우리에게 불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에스겔 36장 25-26절 구약에서 새 언약을 예언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명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 시내산 언약, 옛 언약 대신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에는 새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우리의 돌 같은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고 새로운 언약을 예언하십니다. 새 영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맑은 물이 뿌려지는 것과 같습니다. 맑은 물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새로운 성령의 사역입니다.
물 세례가 거듭나는 것에 있어서 그토록 중요하다면, 5절 만이 아니라 6절에서도, 8절에서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해야 하지만, 6절과 8절은 그냥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물 세례가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8절 성령은 어떻게 거듭나게 하십니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는 방법은 마치 바람이 부는 것과 같습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할 때 정확하게 거듭나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주권적인 사역으로 일어납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신비롭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구원파에서 말하는 언제 거듭났습니까? 정확히 몇월 몇일에 거듭나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바람처럼 역사하시는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은혜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분명히 아는 것은 바람이 불었다면 바람이 분 증거가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소리도 나고,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있습니다.
4.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의 거듭남: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은 영혼을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은혜를 우리가 잘 몰라도 반드시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는 우리의 거듭남의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CRC (Christian Reformed Church) 교단은 세 가지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를 교단의 신앙고백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561년의 벨직 신앙고백서, 1563년의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1618-1619년의 도르트신경를 보면 거듭남, 중생에 관한 개혁주의 Reformed 가르침이 있습니다.
벨직신앙고백서 제24조 죄인의 성화 (Article 24 The Sanctification of Sinners) 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는 이 참된 신앙, 즉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 안에 생겨난 이 신앙이 우리를 거듭 태어나게 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우리로 죄의 종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을 믿는다.”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안에 거듭나게 하는 역사를 행하여, 우리 안에 믿음이 생겨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We believe that this true faith, produced in us by the hearing of God’s Word and b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regenerates us and makes us new creatures, causing us to live a new life and freeing us from the slavery of sin.)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제7문과 8문을 보면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7문 그러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어디서 왔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불순종하여 타락함으로 비롯되었습니다. 그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본성이 부패되어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잉태되어 태어나게 됩니다. 제8문 그렇다면 우리는 너무나 부패하여 어떠한 선함도 행할 수 없고 오직 모든 악을 향해 기울어질 뿐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도르트신경 제3, 4번째 신조의 12항 초자연적 중생의 역사와 13항 중생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역사에서 중생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12 항 초자연적 중생의 역사: “중생은 성경이 밝히 가르치는 바, 새로운 창조세계로 거듭남이며 죽음으로부터 일어남인데, 우리 안에 일어나는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중생은 도덕적인 설득과 같은 외적인 가르침으로 이루어지거나, 또는, 하나님의 일이 끝나고 난 후에, 그것이 중생이거나 회개이거나 결국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치부되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아니한다. 중생은 온전히 초자연적인 역사로 일어난다. 그것은 가장 강력하고, 가장 만족스럽고, 경이롭고, 비밀에 숨겨져서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로서 창조에서의 하나님의 능력이나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에 견주어 적지 아니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이다. 이것이 그 동일한 능력으로 영감된 저자들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이다. 이러한 경이로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마음에 작용하는 사람들은 그 결과로 분명하게, 변함없이, 효과적으로 거듭나며 실제로 믿게 된다. 그래서 그 중생된 마음은 하나님에 의하여 작동되고 움직여질 뿐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작동됨 안에서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사람들은 그들이 받은 은혜를 따라서 하지만, 그들이 또한 스스로 믿고 회개해야 한다고 말함도 옳은 것이다.” 13 항 중생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역사: “우리는 중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그들이 구세주를 실제로 마음으로 믿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경험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5. 그러면, 왜 반드시 거듭나야 하는가? 인간의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었기에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면,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까?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배 속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지금 그 상태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이 반드시 거듭나야 하겠습니까? 에베소서 2장 1-5절 말씀은 사람이 왜 거듭나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거듭나기 전의 인간의 상태는 펠라기우스, 세미펠라기우스, 아르미니우스의 견해처럼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거듭나기 전의 인간의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씀합니다.
미국에서 장례식을 진행할 때 영혼이 떠난 육체를 잘 화장해서 관에 둡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움직여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거듭나기 전의 인간의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하늘로부터 성령으로 거듭나야 영적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의 상태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행하며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갑니다. 여기서 세상 풍조는 세상의 유행과 세상의 방식입니다.
세상이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한다면, 나도 그 견해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동성애는 죄라고 말씀합니다. 롬 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세상의 풍조와 정신을 따라가야 합니까? 아니면 진리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까?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은 인간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고, 그저 세상의 정신과 세상의 유행과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갑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자유로운 삶 인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사단,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강력하게 역사하는 영인 사단의 세력 아래 놓인 영적인 죽음 상태에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가운데 살아가는 삶은 우리 육체의 남은 죄의 세력 아래 놓여 영적인 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중립되어 있어서 자기가 좋을 대로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견해였습니다. 세미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병들었으나, 그래도 복음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였습니다.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는 비록 인간은 부분적으로 부패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충분한 은혜를 주셔서 누구든지 복음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충분한 은혜와 협력하여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견해였습니다. Reformed 개혁주의 견해는 우리는 본성상 전적으로 죄 가운데 영적으로 죽어있어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은혜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영적으로 다시 살려주시기 전까지는 복음의 부르심에 대해서 응답할 수 없다는 견해였습니다.
오늘 살펴본 요한복음 3장과 에베소서 2장의 하나님 말씀을 읽고, 관찰하고, 해석하면 어느 견해가 맞는 것 같습니까? 거듭나기 전의 인간의 영적인 상태는 물속에 빠져있는데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런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 물속으로 들어와서 우리를 건져주어야 합니다. 스스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6. 찬송가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와 합심 기도
이 시간 새찬송가 288장 (통일 찬송가 204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찬송을 가사를 만든 크로스비 여사는 태어난지 6주만에 의사의 잘못된 약물치료로 앞이 안보이게 되었습니다. 95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평생을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백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이 불러야 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흘러 나오는 거듭남의 은혜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함께 찬송하길 원합니다.
이 시간 함께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어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거듭날 수 없지만, 그러나, 바람처럼 역사하시는 물처럼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성령의 거듭남의 은혜를 구할 수는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듭나셨는지요?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거듭나야 이 세상에서 하늘의 영광을 감사하고, 누리며,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간증할 수 있습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했다면 그 어떤 다른 은혜보다 거듭나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 어려서부터 거듭남의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무엇보다 우리 가족들, 거듭남의 은혜를 더하시며,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성도님들, 형식적인 신앙으로 만족하지 않게 하시며,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세상에서는 존경받는 니고데모를 향하여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우리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의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성령으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우리에게 심겨주시는 신비롭고 놀랍고 그러나 분명한 성령 하나님의 바람처럼 불어오는 거듭남의 은혜를 이 시간 말씀 듣는 모든 성도들에게 허락하여주옵소서. 이 땅에서 거듭난 난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가슴벅찬 찬송을 우리도 하나님께 올려드리게 하옵시며, 우리 사랑하는 갈릴리 장로교회 성도님들, 그 마음에 거듭남의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서 하늘의 충만한 기쁨과 영광을 맛보게 하시며, 우리 삶의 모든 어렵고 힘든 형편 속에서도 감사하게 하시며 찬송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확신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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