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장 29-30절, 마 11:28-30절 구원의 황금사슬 (2) 구원의 부르심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6-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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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와 설교 음성파일은 맨 아래 왼쪽에 파일이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Youtube에 설교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 11:28-30).
1. First Class로 부르는 은혜
지난 주 목요일 알버커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밤 늦게 미시간에 잘 도착했습니다. 알버커키 공항에서 달라스 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Passenger Minsoon Kim, please come to the desk. 처음에는 잘 못 들었는데 몇 번이고 계속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부르는 소리를 확실히 듣고 데스크를 가 보니, 저에게 변경된 비행기 티켓을 주었습니다. Group 1, Priority Firs Class, 넘버 1A 자리 티켓이었습니다. 제 생에에 처음으로 first class 1번 자리에 앉아서 편안하게 몇 시간 기분좋고 감사하게 비행기를 탔습니다. 지금도 왜 제 이름을 불렀는지, 왜 비행기 티켓이 first class로 업그레이드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제 이름이 불려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부르심은 아주 중요합니다. 지난 주일부터 살펴보고 있는 로마서 8장 29-30절 다시 한번 천천히 읽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장의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묵상을 하면, 그 깊으신 구원의 은혜에 압도됩니다. 다섯 가지 구원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미리 아심 – 예지, 미리 정하심 – 예정, 부르시고 – 소명, 의롭다 하시고 – 칭의,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영화입니다. 예지, 예정, 소명, 칭의, 영화의 구원의 다섯가지 교리가 마치 하나의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17세기 청교도 신학자이며 설교자인 윌리엄 퍼킨스는 이 말씀을 구원의 황금사슬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원의 황금사슬 얼마나 우리의 구원을 탁월하게 설명하는지요! 이 다섯 가지의 구원의 고리는 따로 따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 예지가 예정으로, 예정이 부르심으로, 부르심이 의롭다하심으로, 의롭다하심이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경우에만 해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지와 예정부터 부르심과 칭의는 궁극적인 영화까지 함께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이 있습니다. 미리 아신 그들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셨습니다.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셨습니다.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2. 구원의 황금사슬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 그리고 연합)
구원의 황금사슬 가운데 오늘은 구원의 부르심, 소명을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창세 전에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셨습니다.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신 구원의 예지와 예정의 은혜를 우리에게 첫번째로 적용하시는 은혜는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적용되기 시작되는 구원의 첫번째 단계는 부르심입니다. 로마서 본문에는 5가지 구원의 황금사슬이 있지만,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구원의 황금사슬은 5개가 아니라 10개입니다. 소중회, 신칭수, 성견영 –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 그리고 한가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야기 할 때 한가지로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너무 포괄적이고 커다란 개념이고, 이 구원이라는 커다란 은혜 속에는 부르심인 소명의 은혜, 거듭남인 중생의 은혜, 돌이킴의 회심의 은혜, 돌이킨 자들에게 주시는 믿음의 신앙의 은혜, 믿음이 있는 자에게 주시는 의롭다 하심의 칭의의 은혜, 의롭다 하신 자를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시는 성화의 은혜, 성화된 자를 구원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까지 이끌어가시는 견인의 은혜, 마지막 구원의 최종 완성인 성화의 은혜이며, 아홉가지 구원의 근간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있습니다. 소중회, 신칭수, 성견영 그리고 연합은 우리의 놀라운 구원을 설명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 하나 다 기억하고, 정확히 알고, 우리의 구원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첫번째가 부르심, 소명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부르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누구를 부르십니까? 성경의 부르심에 관한 수많은 말씀 가운데 몇 구절을 함께 살펴봅니다.
1) 딤후 1:9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소명으로 부르십니다. 우리를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영원 전인 창세전에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2)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들을 다 내게로 오라 부르시며, 내게로 오는 자들을 쉬게 하신다고 부르십니다.
3) 계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령님도 오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도, 목마른 인생을 살아가는 가도 다 오라고 부르십니다. 여기서 신부는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인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의 사명도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함께 오라 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부르심의 초청을 세상을 향해서 말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부르심의 체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어떻게 반응해서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습니까? 저에게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수원에서 중학교를 너무 힘들게 다녔습니다. 집에서 20분 걸어서, 버스를 타고 한시간 거리를 가는데 버스가 늘 만원버스여서 중학교를 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집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고등학교를 가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집에서 걸어서 20분만 가면 되는 수원 유신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유신고등학교는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군 생활을 같이 한 육군 대령 출신의 이사장이 계셨던 학교였지만 유신: 넉넉할 유, 믿음 신의 넉넉한 믿음의 학생을 배출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미션 스쿨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두 가지 첫째는 세례를 받고, 둘째는 교회를 다녀야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4월에 학교에서 합동 세례를 받았습니다. 수업시간에 성경과목이 있었습니다. 성경과목 내신 성적을 위해서 교회 출석 확인을 위한 주보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친한 친구에게 교회 주보를 부탁했는데, 2주간 주보를 받지 못해서 더럽고 치사해서 교회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학교를 걸어가던 동네 친구가 "우리 교회 갈래?" 라고 합니다. 교회 갈래? 친구를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친구와 함께 교회 간 첫날 아침 7시 30분에 만나 교회를 갔습니다. 교회 간 첫날 친구가 노래 좋아하니? 하며 노래 연습하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한 시간 노래 연습하고, 가운을 입고 고등부 예배당에 들어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께서 오늘 교회 처음 온 친구 일어나라고 해서 찬양대 가운을 입고 일어나 인사를 했습니다. 예배후에 성경공부를 하고, 점심으로 맛있는 국수를 먹고, 친구들과 농구 시합을 하고, 다시 교회로 와서 찬양대 연습을 2시간 하고, 또 저녁을 먹고, 저녁 예배를 드리고, 저녁 예배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기도회를 했습니다. 첫날 교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10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즐거운 교회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즐거운 교회 생활이었지만, 목사님의 설교 말씀과 성경공부 시간의 하나님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 하루에 성경을 10장씩 읽으라고 해서 성경을 열심이 읽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 기도제목은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면, 믿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1년을 매주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열심히 교회를 다니니, 고등부 300명 학생회 임원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목사님께서 임원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갔습니다. 수련회를 참여하면서 제 기도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면, 이제는 믿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갑자기 저의 과거를 돌아보니 저는 지금 죽으면 그동안 제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갈 것이 확실하는 생각이 들어 괴로워 눈물이 났습니다. 제 생애에 그렇게 울어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었는데 그동안 그토록 많이 들었던 예수님의 십자가가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와같은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방법임이 한 순간 깨달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의 안개같은 구름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믿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으로 부르시는 부르심이 확실해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삶이 달라졌습니다. 의무적으로 읽는 성경이 아닌, 저를 사랑하고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을 알고 싶어서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궁금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수업을 시작하는 자율학습시간에 성경을 읽기 시작해서 창세기, 출애굽기, 어려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말씀을 읽었고, 신약의 마지막 요한계시록 말씀까지 다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저를 사랑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을 친구들에게 전하기 시작했고,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같은 반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서 더 성경을 읽었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성경을 읽던 저를 보시고 고 2 담임선생님이 하루는 부르시더니 왜 성경을 그렇게 읽느냐고 물어보시더니 매주 토요일 학교 수업이 끝나고 일대일로 성경공부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저를 부르신 하나님을 더욱 알게되고,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유신고등학교 1학년 동기가 960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몇 명이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을까요? 960명 모두 외적으로는 세례도 받고, 교회도 다녀야했고,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정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반응하여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훨씬 적습니다. 하나님의 외적인 부르심 가운데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내적인 소명을 받은 effective calling 효과적인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1장 7절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창세전에 예지하시고, 예정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반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이 유효한 부르심입니다.
4.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왜 하나님 말씀을 받고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똑같이 들었는데,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3장 3-9절 말씀의 비유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사람의 마음이 마치 길가 같은 사람, 흙이 얇은 돌밭 같은 사람, 가시떨기 같은 사람, 좋은 땅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뿌려집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마태복음 13장 9절은 이 길가에 떨어진 씨를 해석하면서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외적인 부르심이 있었는데, 그 부르심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유효한 부르심이 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백배, 육십배, 삼심배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분명한 열매를 맺습니다.
5. 펠라기우스, 세미-펠라기우스, 아르미니우스 그리고 개혁주의의 유효한 부르심
똑같은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거절하고, 어떤 사람들은 듣고 믿어 열매를 맺는 것입니까?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복음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려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에게도 하나님에게도 동시에 달려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이 질문에 대해서 기독교 역사를 보면 아주 중요한 네 가지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중립되어 있어서 자기가 좋을 대로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견해입니다.
둘째는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병들었으나, 그래도 복음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입니다.
세번째는 비록 인간은 부분적으로 부패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충분한 은혜를 주셔서 누구든지 복음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충분한 은혜와 협력하여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네번째는 우리는 본성상 전적으로 죄 가운데 영적으로 죽어있어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은혜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영적으로 다시 살려주시기 전까지는 복음의 부르심에 대해서 응답할 수 없다는 견해입니다.
첫번째 견해는 펠라기우스의 견해이고, 두번째는 세미펠라기우스 견해, 세번째는 아르미니우스 견해, 그리고 네번째는 칼빈을 비롯한 Reformed 개혁주의 전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견해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저는 네번째 견해를 받아들입니다. 네번째 견해는 다음 시간에 살펴볼 우리의 구원의 부르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거듭남의 중생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6. 물에 빠진 사람이 수영을 못할 때 어떻게 살아나는가?
제가 수영을 할 줄 모르는데 물에 들어갔다가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저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마침 물 밖에는 수영을 잘하는 제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 친구가 생각하기를 저는 비록 수영은 할줄 몰라도 인격적으로 훌륭한 친구이니 그냥 가만히 두어도 알아서 살아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괜찮은 생각인지요? 펠라기우스의 생각입니다. 제 친구가 이번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친구가 비록 수영은 할줄 모르지만 그래도 혼자서 열심히 노력하면 물가로는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펠라기우스의 생각과 비슷한 세미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제 친구가 밖에서 열심히 외칩니다. 빨리 물 밖으로 나오라고 외치기만 합니다. 그러면 그 소리를 듣고 비록 제가 수영은 못하지만 물 밖으로 스스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덜란드 신학자 아르미니우스, 알미니안의 생각입니다. 수영을 못하는 저는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습니까? 저에게는 수영을 할 줄 아는 제 친구가 수영을 할 수 없는 저를 위해서 물 속으로 들어와서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저를 물 밖으로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Reformed 칼빈의 영향을 받은 개혁주의자들의 생각입니다.
7.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의 유효한 부르심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에서 중요한 1647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0항 효력 있는 부르심의 항목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한 모든 사람을 또 그들만을 그의 정한 그리고 받는 때에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효력있게 부르되, 그들이 본질상 처해있는 죄와 죽음의 상태에서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에로 부르기를 기뻐하셨다. 그때 그는 그들의 마음을 영적으로 그리고 구원에 이르도록 밝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돌 같은 마음을 제하며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그들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며,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들을 결심시켜 선한 일을 위하게 하시며,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효력있게 이끄신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원하는 자가 되어 지극히 지유롭게 온다. 이 효력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값없는 그리고 특별한 은혜에서만 나온 것이요 결코 사람 속에 예견된 그 어떤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은 이 부르심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이어서, 성령으로 살림과 새롭게 됨을 받은 후에야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제공되고 전달되는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어린이 버전인 소요리문답 31항의 효력있는 부르심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효력 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성령이 하시는 일이니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또 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권하사 능히 복음 중에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시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같은 개혁주의 전통에 서 있는 네덜란드의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를 정죄하고 성경적인 구원의 교리를 밝힌 도르트신조의 제3과 4항의 10번째 가르침은 복음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강조합니다. “복음의 사역을 통하여 오고 회개한 사람들의 변화를 사람들의 노력으로, 마치 신앙과 회개를 선택하기 위한 동일하거나 충분한 은혜를 사람들이 부여받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따라 그것을 선택한 것처럼 사람의 노력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펠라기우스의 자만한 오류이다. 그 변화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영원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것으로 예정하시고, 시간이 이르러 그들을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신앙과 회개를 부여하시고,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셔서, 그의 아들의 나라로 불러들이시고, 구원받은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어두움에서 밝은 빛으로 부르신 주님을 찬양하도록, 자신들 스스로 자긍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높이도록 하신다. 이것이 성경에서 사도들이 가르치는 것이다.”
8. 유효한 부르심의 목적은 무엇인가? 교제, 거룩, 선포하는 광고 모델로 살기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지하시고 예정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신다면, 우리가 그 부르심에 반응했다면,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신 부르심은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이 없이 그냥 부르셔서 우리 마음대로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부르심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습니다. 부르심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고린도전서 1장 9절 “너희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시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부르심이 있는데 그리스도와 교제가 전혀 없다. 부르심을 받은 것일까요? 부르심의 은혜를 입었으면 부르신 자를 알고 싶은 소원이 생깁니다. 부르신 자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니 더욱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부르신 분을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어하고 교제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둘째 목적도 있습니다. 살전 4:7-8절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우리의 부르심의 목적은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는 방종이 아니라, 우리의 거룩입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삶이 변합니다. 삶의 목적도 변하고, 삶의 방향도 변합니다. 점점 부르신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부르심의 목적대로 예수님과 교제하다면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예수님처럼 온유와 겸손의 사람, 예수님처럼 부족하여 연약한 이웃을 사랑하는 거룩한 삶으로 나아갑니다. 점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마지막, 벧전 2:9 말씀을 기억하며 말씀을 맺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소명에는 목적 없는 부르심이 아닌 목적이있는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부르신 소명하신 이유는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부르심을 입은 우리가 우리를 부르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 선전하는, 찬양하는 광고모델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우리의 부르심의 목적입니다.
9. 찬송과 기도
새찬송가 526장 목마른 자들아 함께 찬송합니다.
이 시간 함께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목마른 영적인 기갈의 상태를 해갈할 수 있는 참된 샘물이 필요합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성령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안에는 영원히 솟아 오르는 생수같은 샘물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 복음의 샘물을 마실 수 있는 은혜로운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이사야 55:1-3). 이 시간 우리를 말씀으로 부르시는 하나님께 응답합니다. 주님, 부족하고 연약하고 소망없는 죄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부르심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살려주옵소서. 우리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의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부르심에 참여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심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우리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을 받아주옵소서. 창세전에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신 그 은혜를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었을 때 우리를 말씀으로 부르신 그 소명의 구원의 말씀을 이 시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다해서 찬양하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이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영적으로 죽어있는 삶을 살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의 아름다운 구원의 은혜를 마음껏 찬양하며, 감사하며, 부르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교제하며, 닮아가며, 세상에서 선포하는 아름다운 광고 모델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 11:28-30).
1. First Class로 부르는 은혜
지난 주 목요일 알버커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밤 늦게 미시간에 잘 도착했습니다. 알버커키 공항에서 달라스 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Passenger Minsoon Kim, please come to the desk. 처음에는 잘 못 들었는데 몇 번이고 계속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부르는 소리를 확실히 듣고 데스크를 가 보니, 저에게 변경된 비행기 티켓을 주었습니다. Group 1, Priority Firs Class, 넘버 1A 자리 티켓이었습니다. 제 생에에 처음으로 first class 1번 자리에 앉아서 편안하게 몇 시간 기분좋고 감사하게 비행기를 탔습니다. 지금도 왜 제 이름을 불렀는지, 왜 비행기 티켓이 first class로 업그레이드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제 이름이 불려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부르심은 아주 중요합니다. 지난 주일부터 살펴보고 있는 로마서 8장 29-30절 다시 한번 천천히 읽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장의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묵상을 하면, 그 깊으신 구원의 은혜에 압도됩니다. 다섯 가지 구원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미리 아심 – 예지, 미리 정하심 – 예정, 부르시고 – 소명, 의롭다 하시고 – 칭의,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영화입니다. 예지, 예정, 소명, 칭의, 영화의 구원의 다섯가지 교리가 마치 하나의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17세기 청교도 신학자이며 설교자인 윌리엄 퍼킨스는 이 말씀을 구원의 황금사슬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원의 황금사슬 얼마나 우리의 구원을 탁월하게 설명하는지요! 이 다섯 가지의 구원의 고리는 따로 따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 예지가 예정으로, 예정이 부르심으로, 부르심이 의롭다하심으로, 의롭다하심이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경우에만 해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지와 예정부터 부르심과 칭의는 궁극적인 영화까지 함께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이 있습니다. 미리 아신 그들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셨습니다.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셨습니다.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2. 구원의 황금사슬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 그리고 연합)
구원의 황금사슬 가운데 오늘은 구원의 부르심, 소명을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창세 전에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셨습니다.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신 구원의 예지와 예정의 은혜를 우리에게 첫번째로 적용하시는 은혜는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적용되기 시작되는 구원의 첫번째 단계는 부르심입니다. 로마서 본문에는 5가지 구원의 황금사슬이 있지만,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구원의 황금사슬은 5개가 아니라 10개입니다. 소중회, 신칭수, 성견영 –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 그리고 한가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야기 할 때 한가지로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너무 포괄적이고 커다란 개념이고, 이 구원이라는 커다란 은혜 속에는 부르심인 소명의 은혜, 거듭남인 중생의 은혜, 돌이킴의 회심의 은혜, 돌이킨 자들에게 주시는 믿음의 신앙의 은혜, 믿음이 있는 자에게 주시는 의롭다 하심의 칭의의 은혜, 의롭다 하신 자를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시는 성화의 은혜, 성화된 자를 구원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까지 이끌어가시는 견인의 은혜, 마지막 구원의 최종 완성인 성화의 은혜이며, 아홉가지 구원의 근간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있습니다. 소중회, 신칭수, 성견영 그리고 연합은 우리의 놀라운 구원을 설명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 하나 다 기억하고, 정확히 알고, 우리의 구원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첫번째가 부르심, 소명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부르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누구를 부르십니까? 성경의 부르심에 관한 수많은 말씀 가운데 몇 구절을 함께 살펴봅니다.
1) 딤후 1:9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소명으로 부르십니다. 우리를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영원 전인 창세전에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2)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들을 다 내게로 오라 부르시며, 내게로 오는 자들을 쉬게 하신다고 부르십니다.
3) 계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령님도 오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도, 목마른 인생을 살아가는 가도 다 오라고 부르십니다. 여기서 신부는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인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의 사명도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함께 오라 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부르심의 초청을 세상을 향해서 말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부르심의 체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어떻게 반응해서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습니까? 저에게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수원에서 중학교를 너무 힘들게 다녔습니다. 집에서 20분 걸어서, 버스를 타고 한시간 거리를 가는데 버스가 늘 만원버스여서 중학교를 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집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고등학교를 가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집에서 걸어서 20분만 가면 되는 수원 유신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유신고등학교는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군 생활을 같이 한 육군 대령 출신의 이사장이 계셨던 학교였지만 유신: 넉넉할 유, 믿음 신의 넉넉한 믿음의 학생을 배출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미션 스쿨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두 가지 첫째는 세례를 받고, 둘째는 교회를 다녀야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4월에 학교에서 합동 세례를 받았습니다. 수업시간에 성경과목이 있었습니다. 성경과목 내신 성적을 위해서 교회 출석 확인을 위한 주보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친한 친구에게 교회 주보를 부탁했는데, 2주간 주보를 받지 못해서 더럽고 치사해서 교회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학교를 걸어가던 동네 친구가 "우리 교회 갈래?" 라고 합니다. 교회 갈래? 친구를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친구와 함께 교회 간 첫날 아침 7시 30분에 만나 교회를 갔습니다. 교회 간 첫날 친구가 노래 좋아하니? 하며 노래 연습하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한 시간 노래 연습하고, 가운을 입고 고등부 예배당에 들어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께서 오늘 교회 처음 온 친구 일어나라고 해서 찬양대 가운을 입고 일어나 인사를 했습니다. 예배후에 성경공부를 하고, 점심으로 맛있는 국수를 먹고, 친구들과 농구 시합을 하고, 다시 교회로 와서 찬양대 연습을 2시간 하고, 또 저녁을 먹고, 저녁 예배를 드리고, 저녁 예배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기도회를 했습니다. 첫날 교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10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즐거운 교회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즐거운 교회 생활이었지만, 목사님의 설교 말씀과 성경공부 시간의 하나님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 하루에 성경을 10장씩 읽으라고 해서 성경을 열심이 읽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 기도제목은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면, 믿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1년을 매주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열심히 교회를 다니니, 고등부 300명 학생회 임원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목사님께서 임원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갔습니다. 수련회를 참여하면서 제 기도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면, 이제는 믿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갑자기 저의 과거를 돌아보니 저는 지금 죽으면 그동안 제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갈 것이 확실하는 생각이 들어 괴로워 눈물이 났습니다. 제 생애에 그렇게 울어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었는데 그동안 그토록 많이 들었던 예수님의 십자가가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와같은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방법임이 한 순간 깨달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의 안개같은 구름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믿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으로 부르시는 부르심이 확실해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삶이 달라졌습니다. 의무적으로 읽는 성경이 아닌, 저를 사랑하고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을 알고 싶어서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궁금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수업을 시작하는 자율학습시간에 성경을 읽기 시작해서 창세기, 출애굽기, 어려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말씀을 읽었고, 신약의 마지막 요한계시록 말씀까지 다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저를 사랑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을 친구들에게 전하기 시작했고,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같은 반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서 더 성경을 읽었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성경을 읽던 저를 보시고 고 2 담임선생님이 하루는 부르시더니 왜 성경을 그렇게 읽느냐고 물어보시더니 매주 토요일 학교 수업이 끝나고 일대일로 성경공부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저를 부르신 하나님을 더욱 알게되고,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유신고등학교 1학년 동기가 960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몇 명이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을까요? 960명 모두 외적으로는 세례도 받고, 교회도 다녀야했고,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정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반응하여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훨씬 적습니다. 하나님의 외적인 부르심 가운데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내적인 소명을 받은 effective calling 효과적인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1장 7절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창세전에 예지하시고, 예정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반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이 유효한 부르심입니다.
4.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왜 하나님 말씀을 받고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똑같이 들었는데,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3장 3-9절 말씀의 비유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사람의 마음이 마치 길가 같은 사람, 흙이 얇은 돌밭 같은 사람, 가시떨기 같은 사람, 좋은 땅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뿌려집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마태복음 13장 9절은 이 길가에 떨어진 씨를 해석하면서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외적인 부르심이 있었는데, 그 부르심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유효한 부르심이 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백배, 육십배, 삼심배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분명한 열매를 맺습니다.
5. 펠라기우스, 세미-펠라기우스, 아르미니우스 그리고 개혁주의의 유효한 부르심
똑같은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거절하고, 어떤 사람들은 듣고 믿어 열매를 맺는 것입니까?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복음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려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에게도 하나님에게도 동시에 달려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이 질문에 대해서 기독교 역사를 보면 아주 중요한 네 가지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중립되어 있어서 자기가 좋을 대로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견해입니다.
둘째는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병들었으나, 그래도 복음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입니다.
세번째는 비록 인간은 부분적으로 부패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충분한 은혜를 주셔서 누구든지 복음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충분한 은혜와 협력하여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네번째는 우리는 본성상 전적으로 죄 가운데 영적으로 죽어있어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은혜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영적으로 다시 살려주시기 전까지는 복음의 부르심에 대해서 응답할 수 없다는 견해입니다.
첫번째 견해는 펠라기우스의 견해이고, 두번째는 세미펠라기우스 견해, 세번째는 아르미니우스 견해, 그리고 네번째는 칼빈을 비롯한 Reformed 개혁주의 전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견해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저는 네번째 견해를 받아들입니다. 네번째 견해는 다음 시간에 살펴볼 우리의 구원의 부르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거듭남의 중생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6. 물에 빠진 사람이 수영을 못할 때 어떻게 살아나는가?
제가 수영을 할 줄 모르는데 물에 들어갔다가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저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마침 물 밖에는 수영을 잘하는 제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 친구가 생각하기를 저는 비록 수영은 할줄 몰라도 인격적으로 훌륭한 친구이니 그냥 가만히 두어도 알아서 살아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괜찮은 생각인지요? 펠라기우스의 생각입니다. 제 친구가 이번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친구가 비록 수영은 할줄 모르지만 그래도 혼자서 열심히 노력하면 물가로는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펠라기우스의 생각과 비슷한 세미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제 친구가 밖에서 열심히 외칩니다. 빨리 물 밖으로 나오라고 외치기만 합니다. 그러면 그 소리를 듣고 비록 제가 수영은 못하지만 물 밖으로 스스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덜란드 신학자 아르미니우스, 알미니안의 생각입니다. 수영을 못하는 저는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습니까? 저에게는 수영을 할 줄 아는 제 친구가 수영을 할 수 없는 저를 위해서 물 속으로 들어와서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저를 물 밖으로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Reformed 칼빈의 영향을 받은 개혁주의자들의 생각입니다.
7.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의 유효한 부르심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에서 중요한 1647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0항 효력 있는 부르심의 항목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한 모든 사람을 또 그들만을 그의 정한 그리고 받는 때에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효력있게 부르되, 그들이 본질상 처해있는 죄와 죽음의 상태에서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에로 부르기를 기뻐하셨다. 그때 그는 그들의 마음을 영적으로 그리고 구원에 이르도록 밝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돌 같은 마음을 제하며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그들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며,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들을 결심시켜 선한 일을 위하게 하시며,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효력있게 이끄신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원하는 자가 되어 지극히 지유롭게 온다. 이 효력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값없는 그리고 특별한 은혜에서만 나온 것이요 결코 사람 속에 예견된 그 어떤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은 이 부르심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이어서, 성령으로 살림과 새롭게 됨을 받은 후에야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제공되고 전달되는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어린이 버전인 소요리문답 31항의 효력있는 부르심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효력 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성령이 하시는 일이니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또 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권하사 능히 복음 중에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시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같은 개혁주의 전통에 서 있는 네덜란드의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를 정죄하고 성경적인 구원의 교리를 밝힌 도르트신조의 제3과 4항의 10번째 가르침은 복음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강조합니다. “복음의 사역을 통하여 오고 회개한 사람들의 변화를 사람들의 노력으로, 마치 신앙과 회개를 선택하기 위한 동일하거나 충분한 은혜를 사람들이 부여받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따라 그것을 선택한 것처럼 사람의 노력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펠라기우스의 자만한 오류이다. 그 변화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영원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것으로 예정하시고, 시간이 이르러 그들을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신앙과 회개를 부여하시고,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셔서, 그의 아들의 나라로 불러들이시고, 구원받은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어두움에서 밝은 빛으로 부르신 주님을 찬양하도록, 자신들 스스로 자긍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높이도록 하신다. 이것이 성경에서 사도들이 가르치는 것이다.”
8. 유효한 부르심의 목적은 무엇인가? 교제, 거룩, 선포하는 광고 모델로 살기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지하시고 예정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신다면, 우리가 그 부르심에 반응했다면,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신 부르심은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이 없이 그냥 부르셔서 우리 마음대로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부르심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습니다. 부르심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고린도전서 1장 9절 “너희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시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부르심이 있는데 그리스도와 교제가 전혀 없다. 부르심을 받은 것일까요? 부르심의 은혜를 입었으면 부르신 자를 알고 싶은 소원이 생깁니다. 부르신 자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니 더욱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부르신 분을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어하고 교제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둘째 목적도 있습니다. 살전 4:7-8절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우리의 부르심의 목적은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는 방종이 아니라, 우리의 거룩입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삶이 변합니다. 삶의 목적도 변하고, 삶의 방향도 변합니다. 점점 부르신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부르심의 목적대로 예수님과 교제하다면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예수님처럼 온유와 겸손의 사람, 예수님처럼 부족하여 연약한 이웃을 사랑하는 거룩한 삶으로 나아갑니다. 점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마지막, 벧전 2:9 말씀을 기억하며 말씀을 맺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소명에는 목적 없는 부르심이 아닌 목적이있는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부르신 소명하신 이유는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부르심을 입은 우리가 우리를 부르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 선전하는, 찬양하는 광고모델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우리의 부르심의 목적입니다.
9. 찬송과 기도
새찬송가 526장 목마른 자들아 함께 찬송합니다.
이 시간 함께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목마른 영적인 기갈의 상태를 해갈할 수 있는 참된 샘물이 필요합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성령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안에는 영원히 솟아 오르는 생수같은 샘물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 복음의 샘물을 마실 수 있는 은혜로운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이사야 55:1-3). 이 시간 우리를 말씀으로 부르시는 하나님께 응답합니다. 주님, 부족하고 연약하고 소망없는 죄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부르심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살려주옵소서. 우리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의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부르심에 참여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심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우리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을 받아주옵소서. 창세전에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신 그 은혜를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었을 때 우리를 말씀으로 부르신 그 소명의 구원의 말씀을 이 시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다해서 찬양하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이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영적으로 죽어있는 삶을 살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의 아름다운 구원의 은혜를 마음껏 찬양하며, 감사하며, 부르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교제하며, 닮아가며, 세상에서 선포하는 아름다운 광고 모델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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