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2장 35-44절 우리의 신앙고백과 그 중심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3-3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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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에 답변하신 예수님의 질문: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인가?
마가복음 12장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예수님은 성전의 핵심 세력들에게 계속 질문 공세를 받았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의 질문이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막 12:14).
두번째 질문은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입니다.“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막 12:23)
세번째 질문은 한 서기관의 질문입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막 12:28).
이 모든 질문에 명답을 하신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반대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3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막 12:35). 예수님의 이 질문은 마태복음 22장 41-42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에게 물으신 질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질문하셨고, 바리새인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예수님의 질문입니다.“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를 드러내십니다.
2.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 잘못된 그리스도관의 문제
첫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는 잘못된 그리스도관입니다. 35절을 다시 보면,“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마태복음 22장 42절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대답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대답은 한면으로는 맞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다윗의 자손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고향인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다윗의 자손이며,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은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자손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36-37절입니다.“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이 말씀은 구약 시편 110:1절의 다윗의 시를 인용한 구절입니다. 시편 110:1절 다윗의 찬양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이 찬양은 성령에 감동된 찬양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씀하십니다.“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마가복음의 주께서는 시편에서는 여호와이시며, 마가복음의 내 주께는 시편에서는 내 주에게 입니다. 이 말씀에서 다윗은 성령에 감동되어 메시야를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메시야가 주님이라면 어떻게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육신으로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는 동시에, 다윗 이전에 계신 다윗의 주님이십니다. 다윗의 자손이며, 동시에 다윗의 주님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구원의 모든 사역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성전에서의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들었습니다. 바라새인들과 서기관들과 함께 예수님의 제자들도 동시에 들었습니다. 비록 지금 성전에서 제자들이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나중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가르치심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깨닫고 사도행전에서 히브리에서 이 구절을 정확하게 다시 인용합니다.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29-36절 중요한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의 설교는 다윗이 고백한 그의 후손인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주시는 주와 그리스도라는 놀라운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말씀하신 이 말씀이 히브리서 1장 13-14절에서 다시 인용이 됩니다.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예수님은 단순한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천사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문제는 메시야인 그리스도를 단순한 다윗의 자손으로만 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절반만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며, 동시에 다윗의 주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비록 다윗의 후손으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예수님은 온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며, 동시에 온 세상을 심파하실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구원은 오직 이 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3.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 외식의 문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두번째 문제는 외식의 문제입니다. 38절부터 40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그들은 스스로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을 외적으로 드러내길 좋아합니다. 일부러 긴 옷을 입고 다닙니다. 시장에서 문안 받으며,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 자리를 원하면, 가장 경건한 행위인 기도도 일부러 길게 하는 외식의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옷을 길에 입는 배경은 구약 민수기에 근거합니다. 민수기 15장 38-39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옷의 끝 부분에 단 술은 여호와의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며 마음의 방종와 눈의 욕심을 제어하라는 일종의 경계의 표시인데, 이제는 이 옷의 술을 길게 만들면 만들수록 더 경건하게 보이는 외식으로 발전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은 어디에서 근거하는 것입니까? 외식은 그 방향이 사람에게 있고,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외식하는 삶에 빠진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1-12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외식을 보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믿음의 햇수가 길어지면 질수록 높임받는 위치에 서기 쉽고, 섬김 받는 자리에 서는 것이 쉽습니다. 나도 모르게 외식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외식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외식이 아니라 더 낮아지고 더 겸손해져서 더욱 섬기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보시며, 예수님은 마태복음을 보면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시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23:27-28).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참된 경건을 잃어버리고 외식된 모습이 가득합니다.
4. 한 가난한 과부의 헌신과 중심
그런데, 바로 그 성전의 바리새인들과 서시관들의 외식함이 가득한 곳에 너무나 귀한 참된 믿음의 모습이 있습니다. 42-44절에 나오는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어떻게 가난한 과부가 자기의 소유의 전부인 두 렙돈을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렙돈은 당시 헬라의 가장 작은 액수의 동전이었습니다. 고드란트는 로마의 가장 작은 액수의 동전입니다. 렙돈은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이었던 한 데나리온의 1/64밖에 되지 않는 아주 적은 돈입니다. 이 여인은 그 당시 가장 극빈자에 속한 여인이며, 그녀의 옷은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의 옷과는 다른 아주 비천한 여인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렙돈이라도 하나님께 드리려는 그 여인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오늘도 우리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외식도 보시고 우리의 중심도 보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모습은 외식입니까? 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있습니까?
5. 오늘의 기도와 새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첫째는 우리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영생의 문제이며, 구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지만, 다윗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냥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다윗의 주님이며, 우리 주님이며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시간 우리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우리 중심으로 흘러나오길 기도합니다.
두번째, 믿음 생활이 길어지고 익숙해지면 우리도 어느덧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의 함정에 빠집니다. 더 높은 자리, 더 경건을 가장하고 사람들을 의식하는 외식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외식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두 렙돈을 아낌없이 드린 이 여인의 참된 헌신과 사랑이 우리의 믿음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우리의 믿음의 모습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우리 주님이며, 그리스도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고백이 우리의 중심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중심에서 고백할 뿐 아니라 그 고백이 믿음의 삶으로 나타나게 하시되 외식으로, 교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섬김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님처럼 더욱 낮아져서 섬길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앞에 가장 귀중한 것을 드릴 수 있는 이 여인의 헌신과 사랑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우리의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문안 받는 자로 살지 않게 하시며, 문안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마가복음 12장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예수님은 성전의 핵심 세력들에게 계속 질문 공세를 받았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의 질문이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막 12:14).
두번째 질문은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입니다.“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막 12:23)
세번째 질문은 한 서기관의 질문입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막 12:28).
이 모든 질문에 명답을 하신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반대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3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막 12:35). 예수님의 이 질문은 마태복음 22장 41-42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에게 물으신 질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질문하셨고, 바리새인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예수님의 질문입니다.“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를 드러내십니다.
2.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 잘못된 그리스도관의 문제
첫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는 잘못된 그리스도관입니다. 35절을 다시 보면,“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마태복음 22장 42절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대답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대답은 한면으로는 맞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다윗의 자손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고향인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다윗의 자손이며,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은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자손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36-37절입니다.“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이 말씀은 구약 시편 110:1절의 다윗의 시를 인용한 구절입니다. 시편 110:1절 다윗의 찬양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이 찬양은 성령에 감동된 찬양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씀하십니다.“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마가복음의 주께서는 시편에서는 여호와이시며, 마가복음의 내 주께는 시편에서는 내 주에게 입니다. 이 말씀에서 다윗은 성령에 감동되어 메시야를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메시야가 주님이라면 어떻게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육신으로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는 동시에, 다윗 이전에 계신 다윗의 주님이십니다. 다윗의 자손이며, 동시에 다윗의 주님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구원의 모든 사역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성전에서의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들었습니다. 바라새인들과 서기관들과 함께 예수님의 제자들도 동시에 들었습니다. 비록 지금 성전에서 제자들이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나중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가르치심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깨닫고 사도행전에서 히브리에서 이 구절을 정확하게 다시 인용합니다.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29-36절 중요한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의 설교는 다윗이 고백한 그의 후손인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주시는 주와 그리스도라는 놀라운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말씀하신 이 말씀이 히브리서 1장 13-14절에서 다시 인용이 됩니다.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예수님은 단순한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천사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문제는 메시야인 그리스도를 단순한 다윗의 자손으로만 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절반만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며, 동시에 다윗의 주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비록 다윗의 후손으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예수님은 온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며, 동시에 온 세상을 심파하실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구원은 오직 이 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3.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 외식의 문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두번째 문제는 외식의 문제입니다. 38절부터 40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그들은 스스로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을 외적으로 드러내길 좋아합니다. 일부러 긴 옷을 입고 다닙니다. 시장에서 문안 받으며,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 자리를 원하면, 가장 경건한 행위인 기도도 일부러 길게 하는 외식의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옷을 길에 입는 배경은 구약 민수기에 근거합니다. 민수기 15장 38-39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옷의 끝 부분에 단 술은 여호와의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며 마음의 방종와 눈의 욕심을 제어하라는 일종의 경계의 표시인데, 이제는 이 옷의 술을 길게 만들면 만들수록 더 경건하게 보이는 외식으로 발전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은 어디에서 근거하는 것입니까? 외식은 그 방향이 사람에게 있고,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외식하는 삶에 빠진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1-12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외식을 보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믿음의 햇수가 길어지면 질수록 높임받는 위치에 서기 쉽고, 섬김 받는 자리에 서는 것이 쉽습니다. 나도 모르게 외식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외식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외식이 아니라 더 낮아지고 더 겸손해져서 더욱 섬기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보시며, 예수님은 마태복음을 보면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시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23:27-28).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참된 경건을 잃어버리고 외식된 모습이 가득합니다.
4. 한 가난한 과부의 헌신과 중심
그런데, 바로 그 성전의 바리새인들과 서시관들의 외식함이 가득한 곳에 너무나 귀한 참된 믿음의 모습이 있습니다. 42-44절에 나오는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어떻게 가난한 과부가 자기의 소유의 전부인 두 렙돈을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렙돈은 당시 헬라의 가장 작은 액수의 동전이었습니다. 고드란트는 로마의 가장 작은 액수의 동전입니다. 렙돈은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이었던 한 데나리온의 1/64밖에 되지 않는 아주 적은 돈입니다. 이 여인은 그 당시 가장 극빈자에 속한 여인이며, 그녀의 옷은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의 옷과는 다른 아주 비천한 여인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렙돈이라도 하나님께 드리려는 그 여인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오늘도 우리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외식도 보시고 우리의 중심도 보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모습은 외식입니까? 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있습니까?
5. 오늘의 기도와 새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첫째는 우리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영생의 문제이며, 구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지만, 다윗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냥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다윗의 주님이며, 우리 주님이며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시간 우리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우리 중심으로 흘러나오길 기도합니다.
두번째, 믿음 생활이 길어지고 익숙해지면 우리도 어느덧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의 함정에 빠집니다. 더 높은 자리, 더 경건을 가장하고 사람들을 의식하는 외식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외식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두 렙돈을 아낌없이 드린 이 여인의 참된 헌신과 사랑이 우리의 믿음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우리의 믿음의 모습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우리 주님이며, 그리스도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고백이 우리의 중심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중심에서 고백할 뿐 아니라 그 고백이 믿음의 삶으로 나타나게 하시되 외식으로, 교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섬김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님처럼 더욱 낮아져서 섬길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앞에 가장 귀중한 것을 드릴 수 있는 이 여인의 헌신과 사랑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우리의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문안 받는 자로 살지 않게 하시며, 문안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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