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8장 1-26절 어두운 내 눈도 열어주소서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3-19 11:57
Views
803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제일 불편한 것이 눈입니다. 젊은 시절의 맑고 환한 눈이 이제는 사물이나 사람을 보아도 잘 보이지 않고 흐릿하고 점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마가복음 8장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제일 시급한 것이 흐릿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보는 것입니다. 사물을 꿰뚫어보고 예수님의 교훈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고 모든 것을 밝히 보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1.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듣기 위해서 큰 무리가 광야의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까이 나아온지 사흘이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무리를 보시는 우리 예수님의 눈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막 8:2) 긍휼의 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먼저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간절한 필요한 보시는 예수님의 눈은 은혜와 긍휼의 눈이십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막 6:34) 그 긍휼의 눈으로 먹을 것이 없는 자들에게 오병이어 기적에 이어서 떡 일곱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사천명의 무리를 배불리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의 음식을 풍성히 남기십니다. 은혜입니다. 은혜의 예수님께 나아오면 누구든지 그 풍성함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무리와도 같은 우리에게 필요한 넉넉한 은혜가 우리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2. 표적을 구하는 의심의 눈
무리를 보시는 예수님의 긍휼의 눈과는 다른 예수님을 바라보는 바리새인들의 의심과 시험의 눈이 보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막 8:11). 그들도 예수님의 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사람들을 치유하시며 먹이시는 기적의 소식을 듣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보이는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그 메시야가 아닙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표적을 구합니다. 표적을 구하지만 표적을 보고도 여전히 표적을 구합니다. 얼마 만큼의 표적이 주어져야 온전히 예수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의심의 눈으로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을 바라보는 우리 예수님의 마음은 탄식으로 가득합니다.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막 8:12). 먹을 것이 없는 무리에게 넉넉히 먹여주신 예수님은 계속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표적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표적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참된 표적은 계속되는 기적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마 16:4).
3. 책망하시는 예수님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떡 일곱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명을 먹이는 기적을 눈으로 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막 8:15)로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누룩은 조용히 그러나 누룩처럼 번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 (마 13:33)이 아니라 그들의 악한 영향력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악한 영향력은 겉으로 보이기는 그럴 듯한 종교인이지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눅 12:1) 말씀하시는 종교적 외식입니다. 반면에 헤롯의 누룩은 사두개인들의 누룩과 함께 세상에서 예수님의 은혜 없이 추구하는 물질적 성공, 정치적인 권력의 추구를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세상에서의 부귀와 명예와 성공을 추구하는 악한 영향력입니다.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제자들의 추구는 바리새인들의 종교적인 외식도 사두개인과 헤룻의 물질적인 성공과 명예와 정치적인 권력도 아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영적인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안되기에 예수님은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니 너희가 들어도 듣지 못하느냐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막 8:17-18) 책망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로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깨달고 살아가는지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가르침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4. 맹인 같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
벳세다에서 사람들이 데리고 온 맹인을 치유하신 사건은 지금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걸어가는 사람들이 나무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밝히 보는 영적인 시각이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막 8:25).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이땅에 임하시면 일어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뭇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 35:5-6).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셨습니다. 우리의 어두운 눈이 밝아지고, 우리의 듣는데 둔한 귀가 활짝 열리며 우리의 절고 있는 다리가 사슴같이 뛸 것이며, 우리의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혀가 노래하는 진정한 치유와 회복과 은혜의 역사가 간절히 필요합니다.
5. 오늘의 기도와 새찬송가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진리를 보게 하소서 진리의 열쇠 내게 주사 참 빛을 찾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눈을 뜨게 하소서 성령이여
막혀진 내 귀 여시사 주님의 귀한 음성을 이 귀로 밝히 들을 때에 내 기쁨 한량 없겠네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귀를 열어 주소서 성령이여
봉해진 내 입 여시사 복음을 널리 전하고 차가운 내 맘 녹여주사 사랑을 하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입을 열어주소서 성령이여!
1.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듣기 위해서 큰 무리가 광야의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까이 나아온지 사흘이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무리를 보시는 우리 예수님의 눈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막 8:2) 긍휼의 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먼저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간절한 필요한 보시는 예수님의 눈은 은혜와 긍휼의 눈이십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막 6:34) 그 긍휼의 눈으로 먹을 것이 없는 자들에게 오병이어 기적에 이어서 떡 일곱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사천명의 무리를 배불리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의 음식을 풍성히 남기십니다. 은혜입니다. 은혜의 예수님께 나아오면 누구든지 그 풍성함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무리와도 같은 우리에게 필요한 넉넉한 은혜가 우리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2. 표적을 구하는 의심의 눈
무리를 보시는 예수님의 긍휼의 눈과는 다른 예수님을 바라보는 바리새인들의 의심과 시험의 눈이 보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막 8:11). 그들도 예수님의 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사람들을 치유하시며 먹이시는 기적의 소식을 듣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보이는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그 메시야가 아닙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표적을 구합니다. 표적을 구하지만 표적을 보고도 여전히 표적을 구합니다. 얼마 만큼의 표적이 주어져야 온전히 예수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의심의 눈으로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을 바라보는 우리 예수님의 마음은 탄식으로 가득합니다.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막 8:12). 먹을 것이 없는 무리에게 넉넉히 먹여주신 예수님은 계속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표적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표적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참된 표적은 계속되는 기적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마 16:4).
3. 책망하시는 예수님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떡 일곱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명을 먹이는 기적을 눈으로 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막 8:15)로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누룩은 조용히 그러나 누룩처럼 번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 (마 13:33)이 아니라 그들의 악한 영향력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악한 영향력은 겉으로 보이기는 그럴 듯한 종교인이지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눅 12:1) 말씀하시는 종교적 외식입니다. 반면에 헤롯의 누룩은 사두개인들의 누룩과 함께 세상에서 예수님의 은혜 없이 추구하는 물질적 성공, 정치적인 권력의 추구를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세상에서의 부귀와 명예와 성공을 추구하는 악한 영향력입니다.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제자들의 추구는 바리새인들의 종교적인 외식도 사두개인과 헤룻의 물질적인 성공과 명예와 정치적인 권력도 아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영적인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안되기에 예수님은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니 너희가 들어도 듣지 못하느냐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막 8:17-18) 책망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로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깨달고 살아가는지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가르침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4. 맹인 같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
벳세다에서 사람들이 데리고 온 맹인을 치유하신 사건은 지금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걸어가는 사람들이 나무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밝히 보는 영적인 시각이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막 8:25).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이땅에 임하시면 일어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뭇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 35:5-6).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셨습니다. 우리의 어두운 눈이 밝아지고, 우리의 듣는데 둔한 귀가 활짝 열리며 우리의 절고 있는 다리가 사슴같이 뛸 것이며, 우리의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혀가 노래하는 진정한 치유와 회복과 은혜의 역사가 간절히 필요합니다.
5. 오늘의 기도와 새찬송가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진리를 보게 하소서 진리의 열쇠 내게 주사 참 빛을 찾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눈을 뜨게 하소서 성령이여
막혀진 내 귀 여시사 주님의 귀한 음성을 이 귀로 밝히 들을 때에 내 기쁨 한량 없겠네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귀를 열어 주소서 성령이여
봉해진 내 입 여시사 복음을 널리 전하고 차가운 내 맘 녹여주사 사랑을 하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입을 열어주소서 성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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